감기를 예찬한다
감기를 예찬한다
  • 배이제 논설위원
  • 승인 2019.04.14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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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지 말고 차라리 즐겨라 어차피 보름 뒤면 떠날 놈이다

밤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콜록콜록 골골거리며 일어났다. 감기가 왔다. 거울 속 웬 노인이 쳐다본다. 백발 내리고 피부 축 처진 후줄근한 인간이다. “헉! 네놈 누구냐?” 기다리던 아내가 혼자 중얼댄다고 야단친다. “병원에 다시 가보소. 제발 정밀검사도 좀 하고..” 또라이 취급이다.

평시 병원을 싫어한다. 쓴 약도, 아픈 주사 바늘도 싫다. 또 있다. “그대가 아무래도 암인 것 같소. 큰 병원 가서 검사를 받으시오. 검사를..” 몸서리 선고가 너무 무섭다. 그래서 병원 안 가는 것을 무슨 큰 명예로 안다.

어제는 뼈골이 다 쑤셔대는 감기땜에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는데 별로다. 콧물은 찔찔거리고 가래는 끝이 없다. 처음에는 누렇더니 지금은 하얗다. 목구멍이 뜨끔거린다. “에이취! 에이치누!” 젖 먹던 힘조차 쏙 들고 빠지는지 기운 한 톨 없다.

내 약점은 내가 안다. 툭 하면 해대는 건강 자랑이 좀 경박하다. '小食하고 많이 걸으면 무조건 장수하더라'고 큰소리 뻥뻥 쳐 왔지만 이번 감기는 "그래에~ 그렇담, 몹쓸 감기맛 한 번 볼래!" 하고 나와의 전투를 벼뤘던 것이리라.

며칠 전 새초롬한 날씨에 신천변을 걷기로 한 친구와 전화했다.

“와 안 나오노? 기다리고 있는데..”

“말도 마라. 요번 감기 지독하네. 걷기고 나발이고 덧정 없다”

“털고 나와 보래. 그딴 감기는 땀 좀 내면 가뿐해질 건데..”

녀석은 한사코 거절했고, 으슬으슬 추웠지만 13,000보를 걸었다.

걷기 이후 내 건강 코스는 늘 똑같다.

*꼭 동네목욕탕으로 직행한다(목욕비 5천원)

*40도이상 욕탕에 몸 담근다(15분 정도)

*냉탕 온탕을 거듭한다(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될 정도)

*사우나실로 들어간다(모래시계 2바퀴면 10분 정도)

*지우개 같은 ‘때’지만 밀기도 한다(10분 정도)

*얼음 짱 샤워도 빠지지 않는다(1분 정도)

*목욕 끝났다(대충 1시간) 그리고 생각한다. ‘목욕값이 가성비 최고’라고.

그런데, 이번 감기는 보통 놈이 아니다. 난생 첨 지독한 놈을 만난 것 같다. 건강 코스 끝나면 이놈은 이 몸에게 십중팔구 ‘빠이빠이’해 왔었는데 말이다. 곰곰 골똘해 보니 집히는 게 있기는 하다. 혹시 ‘입방정’ 때문인가?

“노인이 되거든 절대 건강 자랑 말아야 하느니라” 하시던 할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네 이노옴~ 니 나이 75에 ‘건강자랑’ 한단 말가? 知天名(지천명)이라 했거늘, 나이 50이면 언제든지 하늘이 부르면 하얀 날개 달고 올라가야 할 몸인게야” 살아 생전 툭 하면 병원 가고 종합검사도 해 볼란다.

두어 시간 전, 마지막 감기약을 먹었더니 지금 막 약효가 올라온다, 노곤해지며 잠이 온다. 몽롱하며 구름을 걷는다. 덥힌 침대 생각난다. 마약에 취하면 이 기분일까? 갑자기 감기를 예찬하고 싶다.

-감기 예찬-

감기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자연은 그들 안으로 소리없이 스며 들어가

그들을 서서히 쓰러뜨리고 조용히 뉘어있네.

삶을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도록

미열이 주는 깊은 몽상의 메시지를 받도록.

자연은 그렇게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 주었네.

우리는 사려 깊은 자연이 선사하는 인생의

이 새로운 통찰에 감사를 드려야 하나니

불행을 가장해 날아든 이 작은 행복에

깊이 감사드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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