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가 필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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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가 필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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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과 직선 사이에 "영원"이 남아있는 뜻은?

돌연변이가 생긴 DNA도 복제된 DNA로 증식된다. 이와 같이 우발적인 한 사건이 필연의 세계로, 즉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중에서 -

원주율 π는 약 3.14이다. 이 값은 주어진 원에서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이다.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NASA에서는 보통 3.14159 정도의 근사값을 사용한다고 한다. 최근 60세 된 한 일본사람이 16시간 동안 무려 십만 자리를 암송했다고 하여 지구촌의 화제에 올랐다. 2002년에 일본에서 개발한 한 슈퍼컴퓨터로 계산한 파이의 자릿수는 놀랍게도 1조 개를 넘어섰다.

1조가 넘는 그 수열 중에 9가 9번이나 연속되는 우연한 경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잡더라도 그 부분은 전체 길이의 0.1%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파이의 자릿수가 그 끝이 없다”라는 것이다. 0, 1, 2, …, 9 모두 열 개의 숫자로는 도저히 파이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가 없다. 그러나 수의 직선 상으로는 명확하게 파이라는 점이 찍힐 것이다.

파이가 기하(geometry)에 반하여 대수(algebra)에서는 근사값으로만 사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현존을 자신할 수 없다. 만약 파이가 우주창생부터 컴퓨터의 도움 받아 기록되기 시작했다하더라도 지금까지 아직 종결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반지름 1인 원의 넓이 π는 결코 숫자로 표기할 수 없다. 이것은 우주의 종말에 이르도록 인간의 한계를 지적해주는 문제일지 모른다.

수학은 실수와 허수를 사용한다. 실수는 유리수와 무리수가 연속한다. 이때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수를 유리수라 하고, 그렇지 못한 수를 무리수라 부른다. 그렇다면 파이는 무리수 중의 하나이다. 무리수는 다시 다항식의 근이 될 수 있는 대수적 수와 그 밖의 초월수로 나눌 수 있다. 초월수는 실수의 바탕이다. 파이는 초월수로서 사람의 머리에서 구상된 수가 아니다.

유리수나 다른 무리수와 달리 파이는 발견되었다고 표현함이 적당하다. 그 영원히 이어지는 수열은 마치 무한히 긴 광맥을 채취하는 현장과 비슷하다. 열 개의 숫자가 나타나는 빈도가 정확하게 일치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통계에서 응용하는 무작위수(random number)는 객관화를 위하여 수의 빈도를 맞춘다. 간단히 말해서, 파이는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수이다.

그렇다면 파이가 보여주는 수열은 하나의 극한값으로 창세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하나씩 차례대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혹시 어느 자리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확률적으로 존재할는지도 알 수 없다. “우연 같은 필연” 또는 “필연 같은 우연”의 언저리에서 파이의 수열이 맴돌고 있을지 모른다.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는가.

파이의 뒷자락은 흐릿하다. 애초부터 오차가 없는 파이 값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람이 의도적으로 실수 직선 위에 파이를 그려 넣을 수 없다. 원면적과 똑같은 정사각형을 컴파스와 자로 작도할 수 없다. 직선과 원은 같은 1차원에 속하지만 사람은 둘을 똑같은 길이로 재단할 수 없다. 이런 관계를 쌍대(duality)라고 이른다. 쌍대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통계역학은 미시적 세계의 확률에 입각하여 거시적 세계의 통계적 법칙을 이끌어낸다. 프리고진은 그 바탕 위에 자연계의 비평형 상태를 체계화하고 카오스 이론과 통합하였다. 그의 패러다임은 결정론적 단순한 세계관에서 벗어나 확률론적인 입장에서 자연법칙을 이해해야 한다는 복잡계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변화는 한 순간에 다수의 경로를 따라 일어날 수 있다.

한때 “바이블 코드”라는 픽션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것은 특정한 히브리 원전의 토라(모세 오경)를 가로, 세로, 대각선의 퍼즐로 삼아 의미 있는 말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이다. 확률로 예언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웬만큼 맞출 수도 있다. 파이 역시 점치는 코드일 수 있다. 이를테면, 지난주의 로또당첨번호가 파이의 제 몇 번째 수열부터 정확하게 일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사랑은 자유인가, 운명인가? 사건은 확률인가, 인과인가? 세계는 획일적으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양자택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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