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나 구태의연한 이탈리아
- 미국의 분노
현대판 ‘실크로드’로 불리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에 이탈리아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중국은 유럽 지역에 세력 확장을 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이탈리아는 제노바, 팔레르모, 트리에스테, 라벤나 등 4개의 항구를 중국에 제공하기로 한 만큼 유럽에서는 중국 세력의 유럽 확산을 우려를 하고 있다.
이번 4개 항구의 중국 제공과 관련, 21일 로마에 도착, 23일까지 이탈리아에 머물 예정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탈리아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주석은 20일(현지시각) 이탈리아의 언론인 코리에레델라세라에 기고했다. 기고문에서 신 주석은 “이탈리아-중국, 새로운 협력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은 이탈리아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이탈리아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를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서양과 동양의 문명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와 중국은 지리적인 거리를 넘어 역사적, 문화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면서 고대 로마와 중국이 실크로드를 바탕으로 2000년 전부터 교류했다고 강조하고, “이번 이탈리아 방문을 통해 양국의 상호 관계의 지침을 확립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우리는 이탈리아와 협력해 새로운 실크로드인 일대일로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고대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이탈리아까지 뻗어나가는 교역로 네트워크로 상품과 기능, 사상이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돌며 오갔다.
이후 2000년의 세월이 지나 이탈리아는 지금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내놓은 ‘현대판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했다. 물론 국내 경제사정이 어려운 상황으로 중국을 활용해 이를 타개해보려는 생각이 있을 것이지만 ‘실크로드 부활’ 참가에 대해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찬반의 여론이 팽팽히 갈리고 있어, 이탈리아의 정치 지도자에게 상당한 정치적 리스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주세페 콘테 (Giuseppe Conte) 이탈리아 총리는 21일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로마 방문 때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 합의 조인식을 가질 예정이다. 서명과 함께 이탈리아는 중국의 통상망(通商網 : 비즈니스 네트워크) 개선을 노린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 일대일로에 참여하게 된다.
이탈리아가 주요 7개국(G7)과의 함께하는 노선에서 이탈, 야심에 찬 일대일로 참여를 추진하는 것은 미국 정부를 화나게 할 뿐만이 아니라 유럽연합(EU) 본부도 경계심을 보이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이탈리아, 불안정한 미래에 빠지다
유럽에서도 가장 부유한 국가의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항구를 갖춘 이탈리아를 끌어 들이면서 앞으로 중국에 유망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며, 또 격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정부가 ‘일대일로’ 지지대가로 기대하는 것은 수출과 투자의 가속으로 10년간의 경기 후퇴를 잡아보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최근 동유럽 국가들이 중국과 협력을 가속하면서 부진한 경기를 만회해보겠다는 계획들이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이탈리아의 고민을 찾자보기 힘들다.
이탈리아 정부는 또 지정학적 위험을 감안하지 않고 있으며, 서방국가 파트너들과 협의조차 거치지 않아 중국의 글로벌 야심이 더욱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주세페 콘테 총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정치인들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유력 잡지인 ‘리메스’도 “지금까지 ‘일대일로’와 관련, 실질적으로 아무런 효과에 대한 그림도 없으며, 또 너무나 아마추어적인 일을 콘테 총리가 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지정학적인 고려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다시 말하면, “이탈리아가 기존의 서방 세력에서 벗어나 중국과 협력을 함으로써 기존의 서방 세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됨과 동시에 중국으로부터도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실효성 없는 일대일로 참여”라는 비판이다. 또 미국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배제할 수도 없다.
* 너무나 구태의연한 이탈리아
친중(親中) 성향의 정책의 열쇠를 쥔 이른바 포퓰리스트 정당인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의 당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는 경제발전부 내에 중국 담당 태스크포스(Task Force)를 구성해 이탈리아를 일대일로 특별파트너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8개월 동안 중국을 2차례 방문했으며, 현 시점에서 가장 신중함을 요하는 외교 문제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외교부를 힘없는 ‘들러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디 마이오 부총리의 태스크포스를 이끌 지도자는 미셸레 게라치 경제발전부 차관이며, 그는 2018년 입각 이전에 10년간 중국에서 살고 있었다. 게라치 차관, 디 마이오 부총리, 주세페 콘테 총리 모두 지난해 이전에는 국제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들이다.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미셸레 게라치 차관은 중국 정부와 관계 강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라치는 경제발전부 차관으로 임명되기 훨씬 이전에 경제학 교수로서 활동을 했으며, 그는 “이탈리아는 매우 구태의연(旧態依然)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발전하는 국가들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매우 큰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거대 프로젝트(일대일로)에 이탈리아가 참여함으로써 뒤쳐진 경제를 부활시켜보겠다는 의중이다.
그러나 인근의 유럽 국가들은 이탈리아를 다른 시각으로 보기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위원회는 지난 12일 중국을 “체계적인 라이벌”로 규정하고,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지도자들에게 중국의 국영기업에 대한 규제강화 방안을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중국의 시장개방 속도나 유럽연합의 핵심 부문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인수 급증에 대해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시장이 중국에 의해 매우 왜곡되고 있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설령 그러한 우려가 있다고 할지라도 중국과의 관계 강화는 필수적이라면서 헝가리,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을 포함 13의 EU회원국이 이미 중국과의 양해 각서(MOU)에 서명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유럽 최대의 대중 수출국들은 중국과의 MOU를 맺지 않았으며, 이미 MOU를 체결한 국가도 내세울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중국이 약속한 경제 기회가 거의 실현되지 않는 것에 대해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이 이탈리아의 현 정부는 지정학적인 요소를 계산에 넣지 않았고, 또 구체적인 요구를 하지 않고 '일대일로'에 참여해 막연하게 언젠가 뭔가 경제적인 대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일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 미국의 분노
‘일대 일로’ 프로젝트는 중국의 외교 전략의 핵심이 되었으며, 2017년에는 중국 공산당 규약에도 포함됐다. 중국이 글로벌 규모로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시진핑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은 시진핑의 활동이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서방세계의 권익을 감시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확산에 사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고문은 지난 15일 “중국의 국위 선양을 위한 인프라 정비 프로젝트에 이탈리아 정부가 보증 문서를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안정된 동맹국 중 하나를 미국이 공공연히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MOU 철회는 거부하면서, 그 원안을 공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개방을 함은 물론 앞으로도 개방을 후퇴시키지 않겠다는 국가 간 약속인 양허(commitment)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미국 정부가 우려할 만한 종류의 기술이전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으면서 미국을 안심시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 친화적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내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21~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로마 방문을 계기로 50건의 합의문에 대한 조인식이 있을 것이라고 공개하고 있다.
좋은 조건의 계약을 많이 맺으면, 디 마이오 부총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승리'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미국의 비위를 달래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으며, 연립정부 상대인 극우 정당 동맹에 친중 정책을 설득하는 일도 녹록치 않은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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