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게! 젊은이, 날 좀 살려주게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보게! 젊은이, 날 좀 살려주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주 회화나무 마을

"아니, 여기는 영천이 아닙니까?"
"영천요? 영천은 한참 더 가야 되니더."
"이야, 경주도 보기보다는 엄청 넓네."

어디선가 닭똥 내음 비슷한, 썩 상쾌하지 않은 그런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시골 내음이어서 그런지 숨쉬기가 그리 편하지는 않다. 안강읍 육통리로 가는 들판 곳곳에는 금방 심은 듯한 모가 이마를 물에 담그고 있다.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바닥에는 콩알 만한 올챙이가 떼지어 몰려다닌다.

"올챙이가 기어다니는 걸 보니, 요즈음에는 농약을 치지 않는가 보죠?"
"이곳 경주에서는 농약을 잘 사용하지 않니더."
"그러면 가끔 개구리알도 있겠네요."
"많이 있니더. 옛날 같으모 그 개구알을 건져서 보약으로 먹었을 낀데, 요즈음은 쳐다보지도 않니더."

그랬다. 내가 어릴 적에도 마을 사람들이 못자리에서 개구리알을 건져와 신경통에 좋다며 물에 대충 씻어 그대로 후루룩 먹는 것을 몇 번 보았다. 하지만 개구리알이 당시 마을 사람들 말처럼 신경통에 그렇게 좋은 것인지, 아니면 어디에 좋은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들판 저 쪽에서는 보리가 제법 누릇누릇 익어가고 있다. 그때, 날 잡아봐라, 하듯이 자투리 한마리가 삐쭉삐쭉 솟은 보리수염을 쓰윽 훑으며 보리밭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 저 보리밭. 분명코 저 보리밭을 뒤지면 파아란 색깔을 띤 꿩알 예닐곱 개쯤은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리라.

"이런 이런! 몰지각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여기에다 이렇게 시멘트를 발라놓으면 나무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있겠나?"
"아, 촌 사람들이 뭘 알겠능교? 더우모 이 나무 아래 평상을 깔아놓고 땀이나 식히고, 급하모 음식을 갖다놓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그라모 그만이지."
"그래도 명색이 천연기념물이라고 하는 나무인데... 쯧쯧쯧."

 

 
   
  ^^^▲ 나이가 6백살이 넘었다는 회화나무
ⓒ 경상북도^^^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1428번지. 4백 살이나 먹은, 아니 전설에 의하면 6백 살을 훨씬 넘겼다는 이 회화나무는 오늘도 숨이 가쁜지 헉헉거리고 있다. 이대로 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둘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몸뚱이 곳곳에 외과수술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미 숨을 거둔 가지도 몇 개 보인다.

금방이라도 긴 한숨을 포옥 내쉬며 이보게! 젊은이, 날 좀 살려주게, 하는 것만 같다. 스쳐가는 바람에 잠시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도 애고, 애고, 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래. 이렇게 철저하게 갇혀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는가. 그것도 4~5평 남짓한, 시멘트로 범벅이 된 공간에 갇힌 데다가 하늘을 향해 넓게 벌린 가지는 민가가 겹겹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이라고? 아니, 천연기념물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있어? 높이가 17m에 이르고, 가슴둘레가 자그만치 6m에 이른다는 이 회화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숨이 컥컥 막힌다. 가지 또한 남북으로 20m에 이르고, 동서로는 19m에 이르지만 민가가 가로막고 있으니 이 또한 어찌하랴.

이 회화나무는 밑둥치에서 높이 2m 정도 되는 곳에서 나무 줄기가 할맘, 영감, 하면서 사이좋게 둘로 갈라진다. 언뜻 바라보면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밀애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웬지 답답하기만 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툭 트인 들판으로 달려가 산들바람이라도 쐬고 싶다.

바로 이 노거수가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된 안강읍 육통리 회화나무다. 이 나무는 예로부터 이 마을을 지켜오는 서낭목이라고 한다. 서낭목이면 뭘 해? 요즈음 사람들은 서낭목이 시름시름 아파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는 것을.

그래. 그토록 오랜 세월을 여태 이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서 있는 이 회화나무에 얽힌 전설 하나쯤 없다면 말이 되겠는가. 육통리 회화나무의 역사는 고려 공민왕 때까지 까마득하게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 마을에 사는 김영동이라는 사람이 나이 19세 때, 홍건적과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출전을 결심하고,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만약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나무를 저로 여기고 잘 보살펴 주십시오."

그렇게 회화나무를 심어놓고 전장에 나간 김영동은 홍건적과 왜구와의 여러 번에 걸친 싸움에서 큰 무공을 세웠단다. 그러나 또 한 차례의 왜구와의 싸움에서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영동의 부모는 이 회화나무를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며, 날마다 정성스레 가꾸었단다.

"요즈음에도 이 나무에서 무슨 행사를 하나요?"
"그렇니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모 제주를 정해가꼬 우리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풍년을 비는 그런 제사를 지내니더."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 나면 소원이 이루어지던가요?"
"무슨 소원을 이룰라꼬 그라는 기 아이니더. 그저 대대로 그렇게 해 왔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는 기니더. 아,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꺼?"

 

 
   
  ^^^▲ 경상북도
ⓒ 천연기념물 318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우와! 2003-06-11 01:47:39
나무 한번 지긴다....

질렸다.



좋은 그림 잘 봤습니다. ^^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