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재조사는 역사적 지상명령
5.18 재조사는 역사적 지상명령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19.02.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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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정쟁과 이권 대상이 아니라 진실규명과 교훈 찾기 대상일 뿐

집권여당과 친여·야 3당 그리고 5.18관련 단체 및 개인들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2018.3.13) 제3조 6에 따라서 지난 8일 개최된 북한군개입조사 국회공청회에서 북한군개입사실을 주장한 발제자와 이와 관련 된 일부 발언을 트집 잡아 5.18 신성모독, 유공자 명예훼손, 위헌적 역사 왜곡 등 대역죄로 몰아가려는 분위기다.

물론 사건으로서 5.18은 관련자 보상 및 명예회복 조치와 함께 5.18묘지를 조성하여 국립묘지로 승격시키고 5.18관련 기록들을 유네스코 기록물로 등록하는 등 사후조치 및 정리가 일단락돼 가는 마당에 북한 특수군 개입 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인정된다면 5.18의 성격 규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등 일시적 혼란이 생길 것이 뻔하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 자체를 은폐해서는 안 된다.

뿐만아니라 역사로서 5.18에 대한 의혹을 제대로 규명해 보지도 않고 이해당사자나 특정 정파 및 단체의 주장과 시각에 따라 학문적 조사나 역사적 진실규명 노력 없이 묻어 버린다는 것은 후세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미완의 역사를 진실로 강요한다는 것이야말로 역사왜곡이요, 국민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며, 역사문제를 법정에 세운다는 것 자체가 지동설을 종교재판에 넘겼던 중세 암흑시대와 다를 게 없는 정략적 흑색 코미디가 아닐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기록과 사건 관련자료 분석, 탈북자 증언, 김일성이 만든‘남조선혁명에서 사망한 자들의 묘지 사진 및 묘비내용 분석 등을 근거로 5.18 북괴군 개입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측과, 5.18 당시 현지 취재기자, 계엄사 실무자 등이 못 보고 못들은 사실이며 더구나 600명이라는 대규모 침투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허구라고 치부하려는 상반된 입장이 정치 및 정략적 이해까지 결부시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양측 주장에 관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비춰 북한 특수군 개입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부정하는 측에 동조하는 일방과 5.18 유공자 명단과 심사자료를 공개, 재심의를 통해서 유공자 결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여부를 따지고 희생자와 유공자 가운데 무기고 습격탈취, 교도소 습격, 장갑차 운전, 도청지하 폭약설치 전문가가 있는가 여부와 북한군 600명설 주장의 한 가지 근거가 된 서울서 내려왔다는 연.고대생 600명 중에 단 60명 또는 6명이라도 유공자 명단에 포함돼 있느냐를 가려내자는 얘기라고 본다.

남파된 북한군이 600명이 됐건 60명이 됐건 그 규모도 중요하지만 북한군이 은밀히 침투하여 5.18에 개입했다고 가정할 때에 남파 북한군의 정체와 침투 및 습격 파괴 납치 암살 등(유격)활동 후 북으로 귀환에 이르기 까지 활동 전 단계별 특성에 따라 김일성의 대남적화통일노선과 북한 특수군의 침투 및 공작전술에 얼마나 부합되는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대남적화통일 야욕에 불타던 김일성이 6.25와 4.19 두 차례 적화통일 기회를 놓친 데 한을 품고(소련의 평양주재 대사였던 알렉산더 푸자노프 증언)있다가 대남공작지도원들에게 “4·19는 남조선 혁명 정세가 무르익은 징조이다.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언제든지 이런 기회가 오면 즉각 대처해야 한다고 교시(1974.4월) 했다는 사실은 5.18과 관련해서 시사해 주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또한 5.18에 개입(?)한 북한군이 어떤 군대였을까를 짚어 본다면, 5.18에 남파 된 북한군은 김신조의 124군부대 후신으로 교도지도국을 거쳐서 특수 8군단으로 개칭된 군단 예하 우레(우뢰)라는 별칭을 가진 해상/공중육전여단(침투부대)이라는 설이 있는바, 특수8군단 예하 1개 여단은 6개 대대(1개 대대 600~700명)로 구성 돼 있으며, 북한 특수부대 가운데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부대로서 남파 가능성이 높았다고 볼 수도 있다.

남파된 북한 특수군의 병력 규모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5.18을 전후하여 조선인민군 630군부대 82여단(현 폭풍군단 우뢰 여단)예하 대대에서 수백 명이 남파됐다가 대부분 사망 실종 부상 등 손실을 입고 북으로 생환한 인원은 불과 소수였다는 일부 첩보에 비춰 볼 때에 몇 개 중대~대대 규모 침투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대규모 침투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5.18 당시 전남광주 향토사단, 해안경계 전경, 진압 및 평정작전을 총괄 지휘한 계엄사령부와 상무대 계엄분소 그리고 현지 출동 진압부대와 현지 취재 언론사 기자들 눈에 띄거나 군.경.검 방첩수사 망에 걸리지 않고 감쪽같이 특수작전을 수행 할 수 있었을까? 김일성이 남파한 특수부대가 남파침투에서 귀환에 이르기까지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면 그 요인과 배경은 어디에 있었을까?

먼저 5.18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김대중이 소위 서울의 봄에 맞춰 ‘80.3.26 YMCA연설을 시작으로 한신대 동국대 등 학생을 상대로“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등 학생시위를 선동하여 5월 14일 대규모 서울역 폭력시위가 벌어지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80.4.21~24에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광부들의 파업으로 사북사태라 이르는 폭동이 발생하는 등 국내치안이 극도로 취약해진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혼란상을 배경으로 북한 특수군이 남파 침투했다면, 최고도의 기밀 유지와 보안대책 수립은 필수이며,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라는 말이 있듯이 온갖 위장 은폐 및 가장수단 등 속임수를 총 동원, 외견상 피아구분이 어렵게 하였을 것이며, 모든 행동은 아군이 예상치 못한 시간, 장소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 설령 아군이 알아챘다 할지라도 손쓰기에는 너무 늦어버리게 하는 기습(奇襲, Surprise)작전으로 아군을 기만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예컨대, 지상관측이나 항공정찰로부터 철저히 은폐하고 아군지역 침투 및 통과 시엔 아무런 낌새도 못 채고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는 치밀한 작전을 구사했을 것이며, 아군의 원거리 관찰 또는 근접 조우 시 아군 복장과 아군 장비로 무장, 외모를 완벽하게 꾸며서 아군 신분에 아군행동을 하는 등 수상한 점을 들키지 않도록 철저한 가장을 했을 것이며, 야간 은밀침투로 해안 및 전방 경계지대를 돌파 후방지역을 유유히 통과 집결지에 모였을 것이다.

침투에서 목표지 공작활동, 철수 귀환 전 과정에서 고도의 기도비닉(企圖秘匿)과 침투 및 집결 숙영 이동 및 작전활동 전 관정에 철저한 흔적인멸(痕迹湮滅)로 아군의 수색이나 추적을 따 돌렸을 것이며, 만에 하나 발각이 되어 추격 체포가 불가피 할 시에는 조직보호와 임무비밀 수호를 위해서 자폭이나 자살을 하도록 교육 받고 또 이를 실천함으로서 피해를 최소화 했을 것이다.

5.18 당시 전남과 광주시 향토방위 임무는 31향토사단(사단장 정웅) 이었지만, 해당부대지휘관 뿐만 아니라 예하부대 및 관계기관 역시 광주시 시위대 및 시민동향에 온 신경이 꽂혀 있는 상황에서 전투경찰이 주로 담당했던 해안경계 역시 상대적으로 이완, 쉽게 뚫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향토사단이 광주지역 시위진압 및 평정 임무도 실패한 터에 영광에서 광양에 이르는 길고도 복잡한 해안경계는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했을지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소 7년에서 10년 이상 고도로 훈련된 5.18 남파 북한 특수군은 아군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자동차와 기관차, 탱크 등을 운전할 수 있는 기술은 물론 인간에 비해 10,000배나 발달했다는 후각을 가진 군견을 따돌리는 훈련까지 받고 30m~40m간격으로 조밀하게 배치 된 잠복초소도 바람같이 통과 할 능력을 갖췄다고 할 때에 비바람 몰아치는 해안가에 북한군이 상륙침투를 했다면, 경계병은 있으나 마나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당시 상황, 북한 특수군의 침투전술 및 작전능력에 대한 엄밀한 고찰과 검증 없이 “내가 못 봤으니까, 못 들었으니까. 보고 된 바 없었으니까, 신성한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을 리가 만무하니까, 북한군 개입은 (절대로)없었다.”고 단정한다는 것은 아무리 통찰력이 뛰어고 분석력이 특출한 천재라 할지라도 너무나 무책임하고 안일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5.18 역사와 관련해서 결정적 한마디는 문재인이 “5.18 민주화운동을 폭도으로 부르거나 북한군이 남파됐다고 주장하면서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은 민주화 역사와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대역죄로 단정하면서 친문 친여 세력에게 강력투쟁을 촉구(?)하는 한 마디가 아닌가 한다.

여기에서 퍼뜩 스치는 역사 관련 일화 몇 도막을 보면 신라 48대 경문왕 귀가 당나귀 귀처럼 자라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복두장(임금 헤어디자이너)을 닥치는 족족 죽이다가 어느 한 사람을 살려줬더니 대나무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한 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퍼져 복두장을 죽여도 소문은 못 막았다는 고사가 있다.

또 다른 예로는 1977년 김재규가 중정부장이 되면서 사육신 중 유일한 무인인 기계 유씨 유응부 대신 유응부의 상관이었던 금릉 김씨 김문기를 넣자고 하여 일대 논란 끝에 노량진 사육신 묘소에 김문기 허묘를 써 사육신(死六臣)의 역사가 사칠신(死七臣)의 역사로 변질 된 사례를 들 수 있다. 중알보부정부장이라는 나는 새도 떨구는 권세로 역사를 바꾸려 한 김재규, 말 한마디로 역사를 살렸다 죽였다 한 김일성, 그리고 역사문제에 대해 섣부르게 단정적 언급을 한 문재인, 내 조국 대한민국 하늘은 언제쯤 맑게 갤 것인가? 5.18 재조사는 역사적 지상명령이다. 대통령 권력으로, 집권당 위세로, 유관단체 압력으로 이를 회피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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