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전두환” 스티커를 뿌리자
“영웅 전두환” 스티커를 뿌리자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8.12.07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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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마음을 가진 모든 국민들,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 물어보기 바란다. 이 순간, 나라를 살릴 근본 대책이 무엇인가”를. “문재인을 때려잡고, 흡혈귀 보다 더 징그러운 주사파들을 때려잡는 것”이, 이 순간 우리의 소망이라고 생각들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각자의 관심은 어디에 주어져 있는가? 박근혜를 꺼내오자? 빨갱이 주사파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고 무슨 수로 꺼내 오는가? “박근혜를 석방하라~~~?” 누구에게 명령하는 것인가? 박근혜를 꺼내 오려면 문재인정권을 붕괴시켜야 하지 않던가? 문재인을 무너트리려면 5.18을 사기극이라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 방법 말고 또 무슨 방법 있는가? 박정희가 또 나와야 한다고? 이런 한심한 사람들 때문에 힘이 빠진다.

빨갱이를 뿌리부터 거세하려면 빨갱이들이 제1의 주적으로 삼고 있는 전두환과 지만원을 살려야 한다. 전두환은 무자비한 학살자이고, 지만원은 뿔이 난 극우 또라이라는 말, 저들의 흑색선전 결과라는 사실을 이제부터라도 널리 알려야 한다. 전두환이 위대한 영웅이었다는 사실은 10.26과 12.12.에 매우 잘 나타나 있다. 빨갱이들은 10.26을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선전하고 12.12를 전두환의 마구잡이 쿠데타라고 선전해 왔다.

하지만 아래의 짧은 요약 글만 보아도 전두환은 위대한 영웅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상-하를 읽고 “현대사 책들 중 이 이상의 책은 없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전두환을 미워했었다. 1980년, 내가 중앙정보부 지휘부에 있었으면서도 전두환을 미워했다. 박정희와 비교해서였다. 하지만 수사기록들을 놓고 객관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완성된 책은 내가 알고 있었던 생각과 정반대로 나타났다. 상권에는 전두환이 영웅으로 솟아 있고, 하권에는 검사와 판사들이 잡놈들로 거꾸러져 있다.

10.26

1979년 10월 26일, 오후 4시,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마치고 헬기로 돌아오는 도중 차지철은 김재규에게 전화를 걸어 궁정동 안가에서 각하 저녁식사를 준비하라 연락했고, 이때 김재규는 평소 마음먹었던 혁명을 하기 위해 정승화를 궁정동에 불러 대기케 했다. 자기는 각하를 시해할 권총을 준비하고 두 대령들에게는 권총소리가 나면 경호원들을 사살하라고 지시한다.

차지철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비서실장 김계원은 이 계획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만찬시간 1시간 40분 만에 김재규는 차지철과 각하를 살해했다. 김계원은 각하의 시신을 국군병원에 옮겨놓고 군의관으로부터 각하가 확실하게 사망했음을 확인한 후 청와대로 들어가 비상소집을 한다. 8시 40분, 최규하 총리는 김계원으로부터 은밀히 김재규가 차지철과 각하를 살해했다는 정보를 듣고도 각료들에게 일체 알리지 않고 김재규가 원하는 대로 비상국무회의를 국방부에 가서 열고 익일 아침 4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과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할 것을 결정하고 회의장 밖에 있는 김재규에게 이 사실을 귀띔까지 해주었다. 총리가 이러했으니 다른 국무위원들이야 오죽 눈치를 보았겠는가? 그 많은 국무위원들 가운데 범인이 누구냐를 따지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쥐죽은 듯 눈치들만 보았다. 위기에서 국가를 생각하여 나서는 자가 일체 없었던 것이다.

한편 김재규는 시해 후에 피범벅이 돼 가지고 정승화에게 맨발과 와이셔츠 바람으로 달려와 그를 김재규 차에 태우고 육군 B-2 벙커로 갔고, 가는 도중 정승화는 김재규의 말과 표정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벙커에 도착한 정승화는 국방장관을 제치고 장관의 소관사항인 병력을 동원하는 명령을 내리고 차지철의 부하인 경호실 차장을 지휘하여 경호병력을 현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동결하는 명령을 내렸고, 현장 접근을 확실히 저지하기 위해 역시 차지철의 부하인 수경사령관을 지휘하여 청와대를 포위하라 지시했다. 경호실과 수경사는 오로지 차지철만 지휘할 수 있는 부대였다. 차지철이 대통령과 함께 죽었다고 생각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벙커에 온 김계원은 김재규에게 동조세력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후 노재현과 정승화가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행에 사용했던 권총을 내놓으면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약삭빠른 배신이었다. 정승화는 국방장관 노재현으로부터 김재규를 체포하라는 명을 받고서도 그를 비호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달랐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곧바로 서빙고 분실로 연행시켰고, 거기에서 김재규는 자기가 범인이고 정승화와 함께 행동했다는 것을 털어놨다.

이학봉은 즉시 체포하자 했지만 불과 두 시간 정도의 시차로 정승화는 이미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돼 있었다. 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는 김재규를 비호하고 자신의 개입 사실을 축소하려 갖가지 시도를 했다. 이학봉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정승화의 구속을 건의했지만 전두환은 12월 6일에야 구속을 결심했고 D일을 12.12로 결정했다. 판결문에는 전두환이 동경사로 발령 날 것을 눈치 채고 정승화 체포를 결심했다고 하지만 전두환에 대한 인사이야기는 12월 9일 골프장에서 노재현과 정승화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말이다. 체포하라 결재한 날은 12월 6일, 인사발령 이야기는 12월 9일이었다. 판결문이 너무 황당한 것이다.

12.12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전두환은 수사국장 이학봉을 대동하고 국무총리 공관에서 집무하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에 가서 정승화 연행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다. 당시는 정승화에 대한 의혹이 사회적으로 확산돼 있었고, 이러한 것은 극비사항이기 때문에 중간의 아무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가져갔다. 전두환은 재가가 쉽게 나리라 생각하고 무조건 7시에 정승화를 체포하라는 사전각본을 짰다. 그런데 의외에도 최규하는 국방장관을 앉힌 자리에서만 재가할 것임을 고집했다.

정승화를 체포하는 일은 원체 큰일이라 전두환은 평소 군에서 여론을 이끌 수 있는 9명의 장군을 보안사 정문 맞은편에 있는 수경사 30단으로 초청하여 재가가 끝나는 대로 체포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승화와 가까운 장태완, 정병주(특전사령관), 김진기(헌병감)에게도 따로 설명해줄 요량으로 신촌만찬을 준비했다.

한편 허삼수 대령과 우경윤 대령은 4명의 보안사 서빙고 수사관들을 태우고 7시 05분에 정승화총장 공관으로 갔다. 서빙고로 가자는 대령들의 권고를 받은 정승화는 순순히 응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고, 이로 인해 그의 부하들과 수사관들 사이에 총격전이 유발됐고 그의 부하들과 범수대 우경윤 대령이 하반신이 불구가 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 자신이 한 때 보안사 사령관을 했으면 저항해야 피해만 발생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터인데도 불필요한 저항을 하다가 여러 부하들을 다치게 한 것이다. 결국 박 수사관이 응접실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M-16소총으로 위협하고서야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한편 국방장관 노재현은 대통령이 빨리 오라는 호출명령을 받고도 이리 저리 피해 다녔고, 피해 다니는 동안 군에는 지휘공백이 발생하여 정승화 군벌과 30단에 대기 중이던 군벌 사이에 불필요한 긴장이 유발됐다. 긴장이 일자 불길한 생각이 든 5명의 장군은 밤 9시 반에 대통령에 가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면서 재가를 빨리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대통령은 ‘장관 오면 해줄게’ 하고 담소들을 나누었다.

3군사령관 이건영,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총장 권한 대행인 윤성민 참모차장 등 수도권 실세들이 나서서 30단에 모인 장군들을 무조건 반란군이라 규정하면서 병력을 동원하고, 30단과 청와대 지역을 전차포와 야포로 융단공격하려 하고, 상대방 장교들을 체포 구금함은 물론 장교들의 이름을 지정하여 사살명령까지 내리고, 대통령을 납치하여 정승화를 구하고, 무장헬기로 정승화를 구출하자는 막다른 단계에까지 이르다가 전두환에 의해 진압되고 체포되기에 이른다.

이리저리 숨어만 다니면서 대통령의 호출에 불응한 노재현은 새벽 1시, 제1공수여단과 국방부 옥상에 배치됐던 수경사 병력 사이에 발생한 총소리에 겁을 먹고 부관과 함께 국방부 건물 지하 1층 어두운 계단에 숨어 있었다. 대통령과 함께 하루 밤을 새운 신현확 총리는 참다못해 자기가 나서서 노재현을 찾아오겠다며 국방부로 향했고, 이에 공수대원들이 국방부 건물을 샅샅이 뒤지다가 새벽 3시 50분에 계단 밑에 숨은 장관을 발견한다. 총구를 겨눴던 병사들은 “나 장관이다”하는 말에 경례를 한 후 장관실로 모셔온다. 신현확은 노재현 장관과 이희성 중정부장 서리, 김용휴 국방차관을 태우고 총리공관으로 갔다. 노재현은 보안사에 들려 재가문서에 스스로 결재를 한 후 대통령에 가서 꾸중을 듣고 재가를 받았다. 4시 30분에서 05시 10분 사이였다. 최규하는 서명란에 05:10분이라 쓰고 서명을 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1996-97년에 진행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는 전두환이 죄 없는 정승화를 체포하고 정식 지휘계통에 있던 윤성민-장태완이 정승화를 풀어주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이에 불복하면서 5명의 장군을 보내 대통령을 협박하고, 공관 주변을 경계하는 병사들에 의해 대통령에 겁을 주면서 새벽 5시에 재가를 강요했고, 무단으로 병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군사반란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1996.7.1. 제18회 재판정에 나온 신현확 전 총리는 장군들은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고 정중하게 건의를 한 후 돌아갔으며, 대통령과 하루 밤을 새우는 동안 공관 경비병을 의식한 적은 전혀 없다고 증언했다. 1심 김경일-2심 권성-3심 윤관에 이르는 판사들이 모두 저급한 빨갱이들이었다. 12.12가 없었다면 시국은 정승화-김재규가 주도한 쿠데타 세상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결 론

여기까지를 읽고도, 더 나아가 “12.12와 5.18 압축본”을 읽고서도 전두환을 10.26의 영웅이요 12.12의 영웅이라 아니 할 사람 없을 것이다. 최규하, 고건 등을 위시하여 눈치만 보던 당시 인간들과 비교해 보라. 여기에 찬동한다면 빨갱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영웅 전두환“이라는 스티커를 만들어 널리 선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웅 전두환을 광주로 구인해 가려 하는 날 연희동에서는 분노의 황산벌 결전이 발생할 것이다. 우익들은 작은 소리들만 산발적으로 낼 줄 알았지 싸우는 방법을 모른다. 내 이 말에도 얼마나 공감들을 할지? 한 숨은 좌를 보고 나오 것만이 아니라 우를 봐도 나온다. 전두환을 영웅으로 선전하는 것은 빨갱이들의 급소를 찌르는 것이다. 제발 이 전략을 이해하고 이행해 주기 바란다. 사기극으로 가득 찬 5.18을 성역화하기 위해 빨갱이들은 전두환과 지만원을 죽이려 하고 있다. 전두환과 지만원은 김대중 이상으로 영웅이 돼야 한다. 전두환의 회고록과 지만원의 '뚝섬 무지개'는 오로지 진실만을 담았다. 하지만 김대중에 관한 모든 것들은 숨 쉬는 것 말고 모두가 다 거짓말 아니던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좌우 대결의 주인공들이고, 전두환과 지만원은 5.18 즉 빨갱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주인공들이다. 시간이 급한 전쟁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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