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생을 받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뉴스타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 ||
자동차 공업의 일원화 정책
자동차 공업의 일원화 정책은 1960년대 자동차 공업 육성에 대한 기본정책이었다. 그 골자는
① 승용차는 영업용·자가용을 불문하고 한 종류만 생산한다. 외화절약을 하기 위해 연료가 적게드는 소형차로 하되 국가적으로 표준차를 정한다. 소위 국민차 생산 개념이다. 국민차의 모델은 부분적 개량은 허용하되 모양 전체는 변경하지 않는다.
② 중대형차는 유류(油類)절약을 하기 위해"디젤엔진" 차형은 규모별로 규격화하되 될수록 모델의 수를 적게하고 모델은 자주 바꾸지 않는다. 부속품은 될수록 표준화해서 공용(共用)부품의 수를 많이 한다.
③ 자동차 제조공장은 한 공장만 허가하고 일정한 규모가 될 때까지 보호 육성한다. 즉 일감을 한 곳에 모아 준다는 원칙이다(註: 여기에 관해서는 필자의 회고가 남아 있다. 5.16후 필자가 상공부 화학과에 발령을 받고 얼마 안되었을 때이다.
하루는 정래혁(丁來赫) 당시 상공장관이 불렀다. 5.16 직후라서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더욱이 필자로서는 정 장관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긴장을 하고 장관실에 들어가보니 함인영(咸仁英) 공업국장이 먼저 와 있었다.
정 장관은 군복을 입은 채 가슴을 뒤로 제치고, 무릎을 좀 벌리고, 양손은 의자 손걸이에 얹은 채 앉아 있었다. 정 장관은 얼굴부터 장군다운 데가 있다. 좀처럼 웃지 않고,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위엄이 있었다.
정 장관은 필자에게 "당신이 이 건의서를 썼소? 의장실(최고회의 의장)에서 갖고 왔는데 좋은 안이야" 하면서 백색의 얇은 책자를 건네주었다. 내가 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에서 작성한 "자동차공업의 일원화 방안"이었다.
정 장관은 함 국장에게 "이 안대로 추진하시오"라고 했다. 함 국장은 "예 알겠습니다"하고 장관실에서 나와 필자를 국장실로 데려가더니 "당신이 기계과장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 국장은 내가 시발자동차에 근무할 때, 공장시찰을 와서 내가 자동차공업에 대해 브리핑을 한 적도 있고, 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에서 건의안을 낸 것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보고 기계과장을 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화공과 출신이 기계과장을 할 뻔했다).
자동차 공업 보호법 제정
상공부의 자동차공업 육성 원칙은 "일원화"정책이다.
즉 자동차공장은 한 개로 족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자동차 조립공장(즉 보디공장)은 약 150개나 되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5∼6명의 보디공들이 천막만 쳐놓고 손으로 두들겨 만들고 있었으니 규제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큰 사고가 연발하는 것이었다. 주로 브레이크 고장인데 시골 언덕길에서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켜 차가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져서 큰 인명피해가 나곤 했다. 브레이크 파이프가 터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기본설계도 없이 적당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래혁 장관은 "인명에 관계되는 자동차조립을 이런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우수한 공장 몇 개만 남겨놓고 모두 폐쇄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덮어놓고 실시할 수는 없었다. 우선 이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자동차공업보호법이 만들어지고 1962년 5월 21일 최고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 부칙에는 經過조치가 있다. "法 시행당시 自動車工業을 경영하는 자는 法 시행일부터 6개월내에 제3조 규정에 의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조치로 말미암아 상공부는 기존 자동차 조립업자에 대해 허가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게 되었다.
기존 업자도 새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상공부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기존 업자라도 앞으로는 버스조립을 못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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