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참혹했던 대구 폭동사건^^^ | ||
그는 이번에 발생한 영남 소요사건을 기화로 경찰관을 무려 30명이나 살해한 살인범으로 그 죄가 두려워 38선을 넘어 이북으로 도주하다가 10월 29일 경기도 포천 경찰서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대구 폭동 또는 영남 소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갔지만 가해자가 누구라고 지적하기는 힘들었다.
우리는 대구 폭동의 교훈을 되새길 때마다 새삼 솟구쳐 오는 민족 수난의 비극을 달랠 길이 없다.
하여튼 대구 일대를 중심으로 파생한 좌익계 책동의 폭동이 삼남 전역을 유행병처럼 휩쓸면서 수도에 상경하기 까지는 불과 3주일이 걸렸을 뿐이다. 사전에 발각은 되었으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빚어냈다.
10월 초순부터 대구를 중심으로 영남일대를 휩쓴 소요사건은 갈수록 악화되어 계속 기호지방 가운데 광주, 개성, 연안, 연백, 홍성 등지를 소란케 하더니 마침내 서울로 파급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10월 22일 정오를 기하여 군정청, 서울역, 시내 각 경찰서 등 주요 기관을 습격, 파괴하려던 계획이 수도 경찰청의 활동으로 미연에 발각되었다.
이날 주모자로 민청원 18명을 검거하였는데 이들은 21일 밤부터 서울시 일원에 펴고 있는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22일 정오 사이렌을 신호로 데모를 감행하다가 종로 거리에서 무장경관의 제지를 받아 오후 2시 30분경 진압 되고 대구의 폭동은 수도 서울로의 확대 직전에 막을 내렸다.
<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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