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해도 부끄럽지 않겠지.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아니, 그래, 난 따라하지 않았어. Oh no, oh no, not me
내가 가야할 길로 갔었던 거야. I did it my way
-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중에서 -
요즘 방영되는 TV 드라마 “황진이 ”는 미색에 대한 속살의 기대심리에 역행하고 있다. 그것은 절개를 지킨 논개나 춘향과 달리 황진이가 뭇 남자를 품었던 기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드라마가 시작될 때 그녀의 노출수준에 관심을 나타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이란 규정 때문인지, 치마를 들치는 외면노출 대신 내면을 여는 수준에서 마칠는지 모른다.
황진이는 오히려 재색(才色)이 출중했던 여자인 것 같다. 즉 무기(舞妓)로서, 악기(樂妓)로서, 또 시기(詩妓)로서 예능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명기(名妓)였다.
일단 장인(匠人)의 반열에 들어서면 그것이 춤이든, 소리든, 글귀든 자기류의 미학(美學)을 창출해야 한다. 앞선 자를 뒤따라가선 기능너머의 별천자로 더 나갈 수 없다. 그녀는 불과 십대에 제 것을 이루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이 시조는 아마 황진이가 이삼십 대의 원숙한 나이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가 에로틱하지만, 여자로서 속내를 드러내는데 아무런 거침이 없다.
세상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다. 이처럼 여자는 크게 엄마와 딸이란 상반된 위상을 가진다. 여자가 엄마일 때, 삶은 자연스럽게 사랑이다. 반면 딸일 때,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이 꼬이고, 겉치레가 자연스럽다. 화장하듯 외면수습을 남발하게 된다.
이것을 좋게 말하면, 메타심리학에서 밝힌 페르소나라는 가면이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별개의 자기모습이다.
황진이는 자기처럼 불행한 여자를 더 이상 물러줄 수 없었을까. 안타깝게도 자신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악기(樂妓)였던 현금(玄琴)의 딸로서 일생을 마쳤다.
황진이는 맹인이었던 현금이가 황진사와 사랑이 아닌 실수(?)로 낳은 딸이었다. 관기(官妓)는 관아(官衙)의 교방(敎坊)에 적을 둔 여자와 천민이 겹친 상태였다. 그리고 천민은 대를 이어 그 신분을 이어가야만 했다.
황진이의 위대성은 이와 같은 최악의 조건을 반전시킨 측면에서 나타난다. 아니, 반전 정도로는 뜻이 약하다. 그래, 그것은 오히려 초월이었다.
종교적 의미로서의 구원이었다. 황진이가 말년에, 그래봐야 삼사십 대 정도였겠지만, 화담학파의 대모(代母) 노릇을 자청한 것도 득도(得道)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가야할 길을 완성하고 싶었겠지. 자유가 충만한 저 세계로.
개성(開城)은 그 지명에서 반전의 뜻이 있다. 성(城)은 울타리치고, 문 닫아걸고, 외침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겠다는 마을이다. 그런데 개(開)는 반대로 열어놓고 손님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명사 성(城)이 동사 개(開)와 어울려 엇갈림의 연산과정을 보이고 있다. 정몽주의 피가 묻힌 선죽교(善竹橋)는 고려 왕조를 닫고, 조선 왕조를 연 역사적 상징물이다.
개성은 고려궁성 옛터가 남아있는 만월대(滿月臺)가 송악산(松嶽山)의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송악 또는 송도라고 불렀다. 북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싼 700미터 급의 산들이 동서로는 양팔로 안은 듯 뻗어내려 남산에서 마무리된 요새였다.
그 동서너머로 예성강과 임진강이 흘러 큰 평야를 이루었고, 서해에 접한 예성강 하류의 벽란도는 세계로 향한 열린 무역항이었다.
사람들은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박연폭포, 화담 서경덕, 명월 황진이 셋을 거론한다. 이들은 서로 풍류에 잘 어울리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황진이는 자신을 바닥에 꿇어앉힌다. “나 때문에 천하의 남자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시체를 동문 밖 모래 터에 그냥 내쳐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먹게 하여, 여인들의 경계로 삼아라.” 유언이라 전한다.
엄마가 못된 여자로서 페르소나를 극복한 딸은 황진이 말고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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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는 할 일을 다 못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로서의 삶이나 남자를 바로 보는 눈을 가지지는 못햇던 것 같습니다.
서양의 여류들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보통의 남자를 천재로 올려 놓는 기지를 발휘했지요.
이것이 동양과 서양 여자의 차이입니다.
부적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사고의 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