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침구의(鍼灸醫) 허임" 학술 세미나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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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침구의(鍼灸醫) 허임" 학술 세미나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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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부전동(우성면 내산리 일대)서 "침구경험방" 집필 및 후진 양성...

충청남도역사문화원과 허임기념사업회는 지난 1일 국립공주박물관 강당에서『침구의(鍼灸醫) 허임의 활동과 공주문화』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조선시대 최고의 침구의원 이었던 허임이 공주에 정착한 역사적인 인물임에도 개인적 사료가 부족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 조선 최고의 침구의원인 허임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경인교육대학교 김호 교수는「침구경험방의 의료사적 위치」라는 주제발표에서 조선 최고의 침의인 허임이 치종교수직을 역임하였고, 그의 후학들도 대부분 치종의로 활약 하였음을 주목 하였다.

허임이 편찬한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은 단순히 중국의학을 정리하거나 베끼는데 불과한 것이 아니라, 종기를 째고 피고름을 빼내는 과정에서 침자(針刺)와 방혈(放血)을 위한 항구(缸灸)와 같은 독특한 기술들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고 보았다.

또한, 허임 의학은 침구술 뿐만 아니라 항구(缸灸)를 이용한 치종(治腫) 전통을 고려한 조선 침구의학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종합적으로 고찰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임선빈 충남역사문화원 충청학연구부장은「허임의 공주정착과 공주문화」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허임은 임진왜란의 전란속에서 당시 왕세자였던 광해군을 수행하면서 공주와 깊은 연고를 지니게 되었고, 후에 위성공신 3등에 책봉되면서 공주지역에 사패지를 하사받아 공주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또한, 허임의 후손과 제자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공주 부전동(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일대)이 그가 말년에 정착하여「침구경험방」을 집필하고, 후진을 양성한 곳으로 밝혀졌다.

나아가 공주의 역사인물로 발굴ㆍ연구된 허임을 빼어난 자연경관과 수백년의 문화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공주 부전동과 연계하여 활용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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