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청 뒤의 나무전봇대 ⓒ 이혜민^^^ |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5부제에 걸리는 건 모람. 옆에 앉은 사람이 자기의 비밀 주차장소라면서 다른 곳을 안내한다. 도청의 뒷문과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나왔다.
그런데 고즈넉한 뭔가의 눈이 확 끌렸다. 바로 나무전봇대. 솔직히 나는 나무전봇대를 본 적이 없다. 내가 79년생이니까, 옛날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도 주변의 전봇대들은 온통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나무전봇대를 처음 본 느낌은 콘크리트 전봇대와 달리 왠지 모를 온기기 느껴졌다는 것이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건 콘크리트 전봇대와 너저분히 널려있는 돌 찌끄러기였는데. 처음 접한 나무전봇대는 그런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금방 썩어 없어져서 재료로 적당치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동남아나 미국, 유럽을 둘러본 사람들의 말로는 나무전봇대를 많이들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나무전봇대의 주재료는 낙엽송이다. 낙엽송의 특성상 가장 적당하다는데, 그렇다고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그냥 세워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에 5년을 담가놨다가 음지에서 말린 다음 코르탄(기름찌꺼기)에 삶아내어 말려야지만 쓸 수 있다고 한다. 긴 시간이 걸리지만 나무는 전봇대가 처음 생긴 이후부터 70년대까지만 해도 명실공이 1등 재료였다.
전봇대가 둥근 이유는 위로 올라가 작업하기에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나무가 주재료였던 터라 공정에 있어서 가장 손쉬운 모양이 둥근형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솔직히 말하면 옆에 서 있는 콘크리트 전봇대보다 나무 전봇대가 더 힘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저마저도 콘크리트 전봇대로 바꾸어지겠지. 옆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면 저것이 나무전봇대인지도 몰랐을 뻔 했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테지. 처음의 전봇대가 콘크리트였던 것인양 말이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계속 남아있을 나무전봇대로 또다른 애상에 젖는 나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부디 구닥다리로 찍혀서 순식간에 다 뽑히지나 않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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