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제주도민들... | ||
사건이 발생하기 전만 해도 제주도에는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봄이면 집집마다 수 십마리씩의 가축을 산으로 올려 보낸다. 방목지대에는 소와 말이 한가하게 풀을 뜯는다. 험준한 한라산 중턱엔 헝클어진 가시밭 사이로 윤기 흐르는 초원지대가 있다.
이 풀밭에는 소와 말이 자라나기에 알맞은 천연 목장이 여러군데 즐비하다. 봄이되면 이 목장으로 소와 말을 몰아 올렸다가 가을철이면 붙들어 오는 풍습이 제주도에는 남아있다.
그런데 이제 소와 말들은 대부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고야 말았다. 4.3폭동이 터지자 살인방화를 자행한 폭도들은 대부분 한라산 깊숙이 숨어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배고픈 그들은 가릴게 없이 닥치는대로 짐승을 잡아 먹었고 이들에게 잡혀 먹힌 소와 말은 그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제주도 주민들은 그런줄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두려워서 자기네 소와 말을 찾으러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해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다 가도록 포기하는 사태를 빚어냈던 것이다. 폭도들은 식량이 떨어지자 주로 말고기에 맛 들였다는 비화가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쇠고기보다는 말고기를 먹는데 맛을 들인 이유라면 쇠고기는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오랫동안 먹을 수 없었지만 말고기는 그렇지 않았다는 애기다.
그레서 산속에 방목하던 가축들은 폭도들에게 거의 잡혀 먹히고 나머지는 총소리에 놀라 험난한 고산준령까지 달아나 야생마가 되어 사람만 보면 달아나게 되었다. 또한 무차별 습격을 받은 짐승들은 패잔병들의 급식대상으로 죽어 가야했다.
그런 이유로 한라산 속을 뒤지게 되면 군데군데 흰 뼈다귀가 발견되곤 하였다. 그 당시의 비극을 말해주는 백골들이다.
그러나 폭도들에게도 최후의 날은 왔다. 소탕전이 계속될 때 마다 폭도의 잔당들은수 없이 잡혔다. 제주도를 수라장으로 만들었으며 피투성이의 비극을 아로새긴 폭도들은 군경의 치밀한 작전으로 마침내 그 그림자를 감추고 말았다.
한편 이 가혹한 비극은 제주도에 그치지 않고 전남 여수 순천 지구의 반란과 폭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도 4.3사건 이후 폭도들의 만행을 진압. 소탕하기 위하여 1948년 그해 제주도로 향하던 국군부대가 여수에 머물고있는 동안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제주도 폭동을 완전 진압하려고 출동한 군인 일부가 여수 순천 일대의 반란을 책동했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영원히 잊지 못할 참변이요 비극이었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매년 4월 3일이면 평화제를 지내오고 있다.<종회>
<이어 기획특집은 ‘여순 사건 진단’편을 연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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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폭동은 48년 4월에 발생되는데 당시의 폭도들에게는 경찰의 계급에 따르는 사살 현상금이 삐라로 살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남공작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에도 일부 확인이 되었지요. 그런데 요즘, 각종 데모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있습니까? 여기에는 필히 많은 자금이 소요될 텐데, 동일 목적의 데모대가 홍콩까지 미국 워싱턴까지 가는 것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