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하랴, 말로 하랴
스크롤 이동 상태바
칼로 하랴, 말로 하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리론과 주기론의 좌우 엇갈린 결합구조

평소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제군들과 더불어 가르친 것, 이것조차 쉽지 않았다네(平時以謬見 與諸君講論 是亦不易事也).

- 퇴계가 임종할 때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 -

조선이 건국(1392)하고 500여년의 종묘사직이 이어지는 동안 초기 150년간은 왕권이 확립되고 국책이 완비되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권력에는 피 흘림의 대가가 요구되었다. 초대 태조의 역성혁명, 3대 태종의 왕자의 난, 7대 세조의 계유정난, 11대 중종의 반정에는 칼에 따라 훈구파가 형성됐다. 말로 풀자는 사림파는 무오-갑자-기묘-을사 4대 사화 때 그들의 칼에 베였다.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수치를 남겼지만, 임진왜란(1592)은 무능한 훈구파 대신 참신한 사림파가 국정을 잡는 물갈이를 마침내 가져왔다. 이때까지 사림파의 큰 울타리 안에는 대유(大儒)에 따라 여러 학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칼 대신 붓으로” 정치하자는 것이었다. 이성(理性)을 통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성리학이, 마치 합리주의처럼 뒤받쳐졌다.

불교입국의 고려를 타파하고 세운 조선은 당시 중국의 관학(官學)이었던 성리학 말고는 다른 옵션이 없었다. 유일무이하다는 곳에는 반드시 도그마(dogma)가 선다. 그 결과 교조주의의 유교와 소중화(小中華)의 사대(事大)로 굳어지면서, 성리학은 오늘날 먼지 쌓인 칙칙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성리학 자체는 도(道)를 축으로 우주를 꿰뚫고 있는 철학이다.

성리학은 유불선(儒佛仙)을 하나의 체계로 통설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과학처럼 어떤 종교든 미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반면 그 철학 체계가 방대하고 심오하여 오히려 복잡하고 난해한 것도 사실이다. 말로써 말이 많다고나 할까. 그러나 키워드(key-word)는 “理”와 “氣”이며, 이것이 “性”과 “心”과 교차한다. 좌우 엇갈려 연산되면서 그 뜻이 전개된다.

언어는 유동적이고 진화하기 마련이다. 원래 옥을 갈아 무늬를 낸다는 뜻을 가진 理는 다스리다, 바르다, 통하다, 이치, 도리 등으로 발전한다. 생명체의 숨이란 뜻이 있는 氣는 날씨, 기운, 공기. 대기, 힘, 생기 등으로 사용된다. 그런 반면 대체로 性은 본성, 心은 마음을 가리킨다. 한자는 당시(唐詩)와 송시(宋詩)를 거쳐 더욱 모호해져서 그 뜻을 뚜렷이 만들기 어렵다.

일단 理는 이성의 바탕으로, 氣는 감성의 뿌리로 정리해두자.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은 주리론(主理論)을,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1489-1546)은 주기론(主氣論)을 펼친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70)은 이 둘을 절충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종합한다. 理가 나타나면 氣가 따르고(理發而氣隨之), 氣가 나타나면 理가 올라탄다(氣發而理乘之).

서두에 제자들에게 미안해하는 퇴계의 유언을 소개했다. 죽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곧이 곧 대로 그의 말을 받아드린다면, 퇴계는 사이비 학자인가? 그러나 인품이 그 정도로 겸손했다면 그는 불세출의 현자임에 틀림없다. 이 괴리된 두 초점을 어떻게 하나로 맞추어 그려야 하는 것일까. 인간실존의 한계로서 솔직한 고백을 퇴계의 진면목으로 받아드리고 싶다.

퇴계는 중국의 주자학을 한국의 성리학으로 집대성하여 발전시킨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사유는 선조(宣祖)에게 헌상한 성학십도(聖學十圖)에 소개되어 있다. 이 도서는 열 가지 병풍식 그림인데, 그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나타내었다. 그가 파악한 사람의 길은 理와 氣의 두 중심을 가진 타원체이다. 모든 사람은 허용된 오차범위 내에서 적당히 폼 잡고 있다고 할까.

율곡은 理와 氣가 한 평면을 구성하는 두 축으로 일원론(一元論) 같다. 따라서 평면상의 모든 점은 하나의 통일된 좌표로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 퇴계가 어쩔 수 없이 수양을 통해 조금씩 나아가는 점수(漸修)를 주장했다면, 율곡은 한 순간에 진리를 통달하는 돈오(頓悟)를 체험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철학사에서 퇴계가 이전의 종착역이면, 율곡은 이후의 시발역이다.

교산 허균이 택한 언행일치의 심학(心學)이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지향한 실학(實學), 경학(經學)이란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철학(氣哲學) 등은 율곡이 깔라놓은 동역학(動力學)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