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의 현장을 찾아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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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의 현장을 찾아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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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위원들이 부대 방문을 하던날..

 
   
  ▲ (자료사진) 광주사태  
 

23일 아침해가 떠오른다.
부대를 찾아 온지 4일째 되는 날이다. 새벽부터 부대 병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어제 흘려준 진압군 3백명 공수 설로 읍내가 술렁거리고 시민군의 집결소식과 함께 주민대표들이 협상 안 을 의논하려고 오늘부대 방문을 약속한 날이다.

대대장을 비롯과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3백명의 진압군이 부대에 공수된 사실을 믿도록 하는 위장하자는 작전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두 장교가 중화기인 엠60 기관총을 정문에 배치하고 현역병과 방위, 예비군들로 담장 철조망사이를 1미터 간격으로 거총 자세의 상체만 보이도록 에워싸게 했다.

오후 2시 방문시간 이전 모든 준비를 마쳐야했다.
방위병과 예비군들은 처음 겪어보는 위장술에 모두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여 주었다. 대대장은 위기 상황에서 민첩하게 대처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부대 절대 사수"라는 자신감을 보인다.

오늘 점심은 4.5명씩 교대로 취사장을 오가며 식사를 하도록 했다.
60명을 300명의 병력으로 위장 하다보니 경계지역의 순찰을 강화했다. 약속시간 10분전인 낮1시50분쯤 주민대표 일행 다섯명<내무과장포함>이 부락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대대장의 두 손을 꼭 쥐고 주민대표들에게 부대주변 경계모습만 보인 후 시민 군들이 탈취한 무기들을 자진 반납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아무런 처벌도 없다는 책임자의 확인으로 끝내라는 당부와 함께 내무반으로 피하려고 하자 그는 함께 주민대표들을 만나자고 한다.

나는 방문객들이 고향사람들 이기에 내 모습이 알려진다면 3백명 진압군 공수설이 거짓으로 드러날 것 같아 내무반으로 몸을 숨겼다. 텅 빈 내무반 침상에 걸터앉아 깊은 상념에 빠졌다. 제발 수습을 위해 찾아온 주민대표들이 대대에 3백명 지원설 을 믿고 총기 회수에 앞장 서 주기만 간절히 기원했다

설령 협상대표들 가운데 진압군의 현장투입 여부를 확인하려는 염탐꾼이 있다 하드래도 저들이 시민군을 자칭 무기고를 털고 나주를 치안부재 상태로 만든 폭도임을 인식했기에 총기류들을 회수하는데 우선해야했고 철통같은 부대로 보여 속아 주기만을 신에게 기원했다. 10여분이 흐르고 당번병이 주민대표 들이 떠났다는 연락이 왔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대대장의 밝은 모습에서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된 느낌이 들었다. 부대 정문 앞에서 이뤄진 수습 대책 회의는 "시위대가 탈취한 총기류를 주민들에게 자진반환하고 고향으로 가도록 했고 그들이 귀향 할 퇴로를 나주_목포간 도로로 제한하며 나주_영산포간 도로는 진압군이 차단한다는 조건과 함께 24시간 시한부로 24일 오전 10시 이후 시위대 가 철수하지 않을 경우 진압군은 불가피 읍내로 투입한다, 진입 도중 저항하는 자는 구금 체포되며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5분간의 협의한 조건을 구두로 체결한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300명으로 위장한 병력을 믿고 무기 회수에 적극 나서겠다는 약속을 한 후 부대를 떠났다고 한다.주민들이 돌아간 후 대대장은 비애를 느낀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넋두리를 한다. 아무리 계엄령하에 혼란의 정국이지만 저들도 우리의 형제들인데 위장술까지 보였던 잠시전의 일들을 못내 아쉬워한다.

주민대표들이 부대를 떠난 지 한 시간쯤 지나고 또 불길한 소식들이 들어온다.진압군의 읍내 진입 설이 알려지자 시민군의 차량들이 읍내로 집결,진압군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며 특공대까지 조직한다는 급보가 유선을 타고 전달된다,

놀라운 소식은 나주에서 4킬로 떨어진 금천면 삼거리 과수원 야산에서 사격훈련까지 한다는 놀라운 소식과 특공대조직하고 사격훈련을 한다는 소식에 나는 당황했다. 월남전을 경험한 이유로 3백 명 진압군공수의 위장술을 내무과장 에게 흘린 것이 불씨가 되자 후회가 앞선다.

이때 읍내 예비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영산포 삼거리 구진포 쪽에서 수 십대의 무장 차량들이 인접 군 과 합류 나주 진입을 위해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진압군 출동엄포로 무기 회수를 꾀하려던 계획이 오히려 불씨를 당긴 듯 싶다. 영산포 삼거리에 집결한 차량들은 대부분 영암 부대 표지판 을 부착하고 간간이 해남. 진도 차량까지 눈에 띄며 나주에서 탈취된 총기류가 서남부 전 지역으로 운반된 모양이다.

읍내로 집결하는 무장 차량들을 차단하는 길만이 마지막 선택이 되었다. 대대장과 함께 읍내 도로망 지도를 펼쳐 들었다. 신의주 1호선 국도가 부대 정문 쪽 1킬로 지점이고 도로 변에 나주 전신 전화국 4층 건물과 읍내 방향 200미터 지점이 호남 비료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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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세상 2006-11-14 12:16:36
아마 1980년 5.18 광주 사건이 터지고 2년쯤 지났을 즈음으로 생각되는군요. 예비군 훈련장에서 5.18 광주사건에 대한 얘기를 여기저기서 잡다하게 쑥덕거리던 중 한 사람이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그리고 5.18 광주사건 당시 그 현장에서 모든 것을 체험했지만 여러분들이 알고있는 대부분의 유언비어는 사실이 아니다." 하면서 자기의 체험담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이 궁금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앉아있던 키 크고 힘이 세게 보이는 한 사람이
" 그렇게 말하는 놈이 어떤새끼야? 너 아디 사람이냐? 너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모든사람이 다 인정하는 사실을 왜 너만 아니라고 하는냐.어디 맛 좀 봐라" 하고 몰아치면서 주위에 있던 전라도 사람들이 분위기를 잡으니 다른사람들도 다같이 동조하여 대어들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되고 보니 처음에 진실을 말할려고 했던 (지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유약해 보였던 )그 사람은 꽁무니가 빠질정도로 도망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전라도 사람들중에도 5.18 광주사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진실된 사람이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런사람들이 진실된 말을 했다가는 자기들이 피해볼수 있다는 현실이 그들의 입을 막아 버린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실세로 있는이상 5.18 광주사태의 진실을 밝히기는 어려울것입니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하는 길만이 유일한 방법일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뉴스타운에서 진실규명의 최후 언론사로 남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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