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의 현장을 찾아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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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의 현장을 찾아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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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가 나타났다! 헬기가..

 
   
     
 

브리핑 자료에는 미 국무부와 웨스트 모오렌 주월사령관 그리고 군사 고문관에게 보내는 "보급물자 국산화 조변"의 제안으로 "귀국에서 보급되는 "전투식량 c레이숀"은 동양인의 체질에 맞질않아 한국군 병사들은 끼니를 굶은체 작전 수행을 함으로서,향후 보급품은 "김치 통조림"으로 보급해 줄것을 요망 합니다.

얼마후 하와이에서 만들어진 김치 통조림이 캄란만의 미군 보급기지에 도착했으나 국산으로 바꾸려던 2차 조변작전에 장교들은 "미제 고기 통조림을 먹고 사병들은 식초 김치를 준다"는 사병들의 불평이 곳곳에서 터진다. 비밀취급 인가자라는 참모의 엄명으로 전우들의 빗발치는 원성에도 입을 꼭 다물어야 만 했다.

초창기에 지급되었던 미군 씨 레이션은 한끼 분이 1 달러(한화270원)를 웃돌아 1인 한달 급식비가 90불로서 우리가 받던 전투 수당의 두 배가 되는 5십만 달러의 거액을 정글속 전선에서 특별식인 씨 레이션을 내 던지고 식초가 된 김치 통조림 과 돼지털이 든 햄까지 먹어가며 고국의 부모형제들을 위해 국산 조변화 꿈을 이뤄 냈다.

월남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정소령이 냉수 한 컵을 건네 준다. 48 시간을 뜬눈으로 밤 을 세우고 .21일 새벽 을 알리는 동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 한줌의 쌀이 절실하다. 식량 보급 지원 을 위해 수 차례 무전 교신을 했지만 응답이 없다.

시민군의 무장 차량은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데도 사단에서는 나주가 광주로 향하는 전초 기지가 된 것을 몰라서 일까? 아니면 서북부 장성. 담양. 화순 지역과 동부쪽 여수. 순천 고흥 보성 쪽의 진압이 더 급박해서 일까.?

무전 교신이 두절된 터라 더욱 불안하다. 대대를 찾아온 이틀째 오전 8시 대대장 실 일반 전화 가 처음으로 울렸다. 잽싸게 수화기를 든 나는 깜짝 놀랐다. 나주 군청 내무과장의 전화다 .

"대대장님 내무과장 이요 군청 직원들은 모두 철수하고 읍내는 이미 치안 부재 상태요"라며 자신도 숙직실 인근에 숨어서 전화를 한다고 한다.

고향 선배인 0과장께 신분을 밝히자 그 역시 크게 놀랜다 .대대장을 바꿔줄 사이도 없이 식량 지원을 부탁했다. 긴박한 사정을 들은 내무과장 은 보내줄 인편이 없음을 걱정하며 최선을 다 하겠다며 통화를 끝냈다.

오늘 점심때까지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60여명의 장병들은 꼬박 하루를 굶는 셈이다. 내무 과장의 식량 지원 여부 에 따라 부대 사수와 철수를 결정해야 하는 절박한 상태에 놓였다. 대대장도 오늘 새벽 철조망 경계를 하던 예비군 과 방위병들의 불평에 이들의 동요 와 부대 이탈을 걱정한다. 빈총을 움켜쥐고 세끼식사도 못한 병사들과 부대를 사수한다는 게 무모한 일 같다.

이때 정문 경계를 하던 현역병이 대대장 실로 달려와 희소식을 알린다. 정문 언덕길로 수레를 끌고 오는 농부를 발견 했다는 낭보와 함께 부대 쪽을 향해 신호를 보내 온다 한다..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내무과장이 보내준 식량이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예비군 서너 명을 데리고 수레 쪽을 향해 뛰어갔다.

우리는 구세주를 만나듯 수레 에 실린 혼합 곡 포대를 끌어안고 환호성을 치며 곧바로 취사장으로 달려갔다.오랜만에 식사 준비를 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대대장 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다. 초여름의 문턱에 선 5월의 계절 탓인지 이틀만에 시래기국에 식사를 하고 나니 조름이 찾아온다.

이때 고함을 치며 무전 병이 취사장 쪽으로 뛰어온다. "대대장님 대대장님 무전이 잡혔습니다! "무전기를 건네받은 대대장은 "여기는 갈매기 여기는 갈매기" 갈매기 0호다. 긴급 식량 지원 바란다". 급한 나머지 수신 버턴을 누른 체 수없이 되풀이한다. 수 차례나 반복되는 식량지원 요청에 "알았다 오버"라는 한 마디로 교신은 성공 한 셈이다.

군청 내무과장이 보내준 혼합곡 여섯 가마와 연대의 무전 교신이 이뤄지자 부대 분위기는 크게 변했다 철조망 경계를 하던 예비군들이 내 고향 내 고장은 우리 손으로.. .향토 예비군 노래 가락을 힘차게 부른다. 21일 오후 4시 갑자기 부대 앞 폭도들의 진지에서 총성이 요란하더니 부대 상공에서 헬기 한대가 부대 쪽을 향해 날아온다.

폭도들이 쏘아 대는 총알을 피하느라 높이 고공 비행으로 부대 쪽을 향해 접근해 온다. 연병장 상공 에 이르더니 더 높이 고공을 선회하며 부대 앞에서 쏘아 대는 총격으로 착륙을 못한 체 선회를 반복하고 있다.

내무반으로 달려가 하얀 이불시트를 헬기를 향해 마구 흔들어 주었다. 착륙 안전지대의 표시다.수분의 시간이 흐르자 헬기는 서서히 연병장을 향해 내려온다. 연병장은 5백여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헬기에 탑승 한 두 명의 병사가 실어온 보급품을 내리는 사이 대대장과 나는 헬기 쪽으로 다가서자 소령이 조정간을 잡고있다.

헬기는 M60 기관총과 실탄 상자가 내려지고 이륙을 서두는 요란한 엔진음을 내면서 주변이 흙먼지에 시야를 가린다. 나는 대뜸 이륙준비를 서두는 조정 석의 소령에게 이륙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조종사는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이륙을 서둔다.

조정간을 잡고있던 소령을 향해 칼 빈 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식량을 내려 놓아라"칼 빈 소총을 들이대며 고함을 질렀다.기다렸던 식량대신 기관총과 실탄 상자만 가져온 헬기 조종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본인은 육군 항공대 소속으로 나주대대에 중화기 수송명령만 받았을 따름이라며" 총구를 의식하고 낮은 자세를 취한다. 그는 계급장도 없는 군복차림의 내 모습을 보고 특수부대나 자신보다 상급자로 비춰졌는지도 모른다.

식량 대신 중화기 만 내려진 체 이륙 을 서두는 항공대 소속 조종사에게 잠시 화풀이했던 나는 사과 의 뜻으로 그의 안전 이륙을 위해 양팔 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헬기를 보내고 대대장 실에 들어서니 벽시계 가 오후 5시를 알린다. 나는 정 소령에게 떠도는 유언비어들을 신중하게 정리해 보자며 의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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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2006-11-10 15:13:39
5.18을 이해할수없는 30대의 직장인 입니다. 기껏해야 들리는 구설이나 문헌의 자료에서 민중의 봉기나 민주화운동으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알고 있었고요,
최근 뉴스타운이란 인터넷신문을 직장동료가 알려줘, 지금까지 알수없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기자님의 체험수기가 2.30대 젊은이 들에게 광주의 일들을 바르게 인식 하도록 책자가 보급 되기를 감히 제언 합니다.

구독자 2006-11-10 16:36:09
5.18은 개대쭝이 해방구 전라민국 아그들만의 찬치였다.

동지회 2006-11-10 16:47:20
5·18 50대 피해자, 집회중 분신자살 시도

10일 오후 3시20분께 서울 여의도 국가보훈처 앞에서 열린 ‘사단법인 5.18 기타 희생자 동지회’ 주최 집회에 참석했던 문모(56)씨가 시너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서에 따르면 문씨는 이날 집회에서 삭발식이 진행되는 도중 생수통에 담겨 있던 시너를 뿌리고 분신 자살을 기도했으며 현장에서 대기하던 경찰 등이 급히 불을 꺼 손과 얼굴 등에 화상을 입었다.

5.18 기타희생자 동지회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구속, 구금된 이들 중 14등급 이하인 1천200여명으로 구성된 단체로 이들은 집회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구속 수배된 연행자들은 유공자로서 의료와 교육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집회에 참가한 이들 중 44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연행해 조사 중이다.



애독자 2006-11-11 02:27:57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시위에 등장하는 화염병 폭력집회는 한마디로 5.18사태가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란걸것 인정하는게 아닌가요?

불구경 2006-11-13 01:14:38
아래 애독자님.
단순히 표면적인 저들의 지금 행실을 가지고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공감 합니다. 언넘은 돈 받고 나는 왜 보상 안해주냐...?

저도 5.18에 대한 관심이 2년 조금 넘었는데요...그동안 보아 온 내용을 종합해보면, 결과적으로는 계엄군의 거친 진압행태가 광주시민을 더욱 분노하게 하였지만 본질은 폭동이 진실이고..그 바탕에는 김대중의 쿠데타 음모(이종찬 전 안기부총무이 관여)와 북한 김일성의 수십년의 노하우가 실린...적화통일 전략이 깔려있었다고,,,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북으로 부터 특수부대투입은 사실로 보이고 그들이 공수부대 옷으로 위장하여 시민들이 보는데서 시민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고요. 북의 적화와 DJ세력의 정권탈취가 한꺼번에 버무러져...유언비어가 극에 달하여 광주시민을 더욱 흥분 시켰고요.

박정희의 갑짝스러운 죽음으로 권력공백이 생기자...
당시 김대중쪽 정치세력들은 대통령출마경력이 있는 DJ를 대통령만들기 위해 최규하정권 전복을 꾀하며 학생권과 노동계를 이용했고
북의 김일성은 남침을 시도하여 적화통일을 하려 했습니다.(중국이 남침기도를 일본에 알리게 되어,,,미국이 한반도에 항공모함 2대를 급파)
아래 블로그 참조.
http://blog.naver.com/qkr4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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