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곡이이^^^ | ||
(然而人者天地之心也 人之心正則天地之心亦正 人之氣順則天地之氣亦順矣)
- 율곡이 문과 장원급제할 때의 답안 “천도책(天道策)” 중에서 -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84)는 사임당(師任堂 1504-51)이 혈친(血親)을 넘어 삶의 스승이었다. 그에게 투영된 사임당은 천/지/인(天地人)의 심/기(心氣)가 통일된 구원(久遠)의 모델이었다. 사임딩은 율곡에게 하나의 성소(聖所)로서 효/경/성(孝敬誠)의 대상이었다. 16세 때 모친상을 당한 율곡이 삼년상을 마치고 불승으로 입산했다. 아래는 1년 반 후 환속하며 쓴 시다.
魚躍鳶飛上下同 위로 뛴 물고기와 아래로 난 솔개가 만난다.
這般非色亦非空 이것은 그렇다고 색도 공도 아니지 않는가.
等閒一笑看身世 피식 한번 웃고 나니 내 처지만 처량하구나.
獨立斜陽萬木中 울창한 숲 속에 스민 볕 따라 홀로 서있네.
풍악산에서 떠날 때 한 작은 암자의 노승과 대담하고 남긴 칠언절구이다.
율곡은 현룡(見龍)이란 탄생설화부터 심상찮디. 그는 자궁에서 이미 도통(道通)했을지 모른다. 하나가 통하면 이에 따라 열 가지가 통할까? 간간이 부침도 따라다녔지만, 20년 동안 역임한 보직이 전방위 무지개 색이었다. 관직을 떠나서도, 전문가로서 각 방면으로 보인 그의 면모 또한 다양했다. 그러나 율곡은 무엇보다 이기론(理氣論)의 철학자요, 탁월한 경세가이었다.
그 당시 세상을 주도한 성리학은 우주론이며 인성학(人性學)이었다. 여기서 理와 氣는 천지인(天地人) 삼위(三位)의 구조와 관계를 밝히는 해석원리이다. 성급하지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율곡은 理와 氣를 자유도(自由度)를 가진 다른 차원(次元)으로 파악한 듯하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수학적 좌표의 복소수 평면처럼 理는 허수, 氣는 실수로 각각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소수 좌표에서 理의 축과 氣의 축이 직교하므로 理氣는 서로 섞이지 않지만, 그 관계는 이기지묘(理氣之妙)하다. 이렇게 보면, 理氣는 이원(二元)으로 나뉜다. 그러나 모든 수는 복소수 평면에서 한 점으로 나타나므로 理氣는 일원(一元)으로 실재한다. 이통기국(理通氣局)이랄까. 보통 율곡의 理氣論을 기발리승(氣發理乘)의 일도설(一途說)이라 일컬음은 이런 까닭이다.
사유체계가 이와 같이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율곡은 평소 생각이 투명하고, 판단이 단순했다. 따라서 어떤 사건이나 난제에 부딪쳐도 최적의 실천방안이 머리 속에서 바로 도출되었다. 이러한 율곡의 시야에 잡힌 조선은 전면적 개혁이 시급한 사회였다. 내부로는 무너지고, 외부로는 허약한 조국이었다. 율곡은 과격하지 않았지만 비판만큼은 서릿발 같았다.
임진강 나루 언덕에 있는 파주의 화석정(花石亭)은 율곡이 어려서부터 꿈을 키우던 곳이었다. 긍정에 이르기 위하여 부정은 꼭 거쳐야 했다. 보수적 양반들의 거부로 뜻한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구국애민(救國愛民)의 심정이 충만한 대동법(大同法)이 그 좋은 예다. 뿐만 아니라 역시 실현되지 못했지만, 외란(外亂)을 예상하고 10만양병설을 주장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지금 한반도는 심각하다. 북은 중장거리 미사일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마쳤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정부는 영해(領海)를 북에 내주고, 도발된 남북해운합의서 위반에 대하여 말도 못하고 있다. 한마음으로 김정일을 모시자는 공작대 “일심회”는 아예 정치판까지 탈취하자고 덤빈다. 햇볕정책을 평화의 볼모로 잡히고, 거꾸로 대비하자는 쪽을 전쟁세력으로 몰아붙인다.
이때 율곡이 살아있다면, 우리에게 생존의 대비책을 가르쳐줄 것이다.
1. 북(北)의 핵실험은 남(南)의 몰살과 인질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2. 개성공단 직원과 금강산 관광객은 한순간 북쪽의 볼모로 잡힌다.
3. 북에 정변이 발생하면, 중국군은 즉각 변경 넘어 북을 장악한다.
4. 미국은 사전에 북을 선제하여 중국의 변방화 음모를 막을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언제까지 지구상에 남아 있을까. 지금 남과 북을 통치하는 자는 눈물을 흘려야한다. 심기(心氣)가 천지(天地)에 역행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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