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무엇 때문에 쓰는가
스크롤 이동 상태바
소설은 무엇 때문에 쓰는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의 날'에 붙이는 두번째의 글

『무정』은 이광수가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이 신문에 연재되던 시절에는 신문의 보편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이다. 그래서 소도시의 청년들은 몇 십리나 떨어진 곳에 있는 신문보급소를 걸어서 매일 찾아가는 일도 벌어졌다.

주인공 ‘안빈’이 간호사 ‘석순옥’의 손목을 잡고 명사십리 해변 길을 걸었다는 대목을 읽고서, 흥분한 독자들이 어떻게 유부남이 처녀의 손목을 잡고 공공연한 장소에서 산책을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며 돌을 던진 일화가 있었다. 오늘의 소설가들을 부럽게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의 소설가들은 영상매체물이 없었던 과거를 더 그리워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70년대 최인호가 쓴『영자의 전성시대』『별들의 고향』이라는 베스트셀러가 나와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90년대에는『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나와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00년대 IMF때에는 김정현의『아버지』라는 작품이 독자를 달구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처럼 이렇다 할 소설들이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자기가 있겠지만 접하기 쉬운 動映像物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써도 시각적 효과가 주는 재미를 초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들이 소설을 기피하고 잘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 대학생

D대학 미디어 출판학과에서 조사한 통계 자료에서 의하면 대학생들이 한 달에 제대로 된, 책 한권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5개 대학교의 대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학생들의 독서량이 매우 적다.

한 달에 1권미만의 책을 읽고 주로 문학 서적만을 읽는다. 2004년「국민독서 실태조사」자료와 비교할 때, 성인의 독서량 한 달 평균 1.3권보다도 적다는 점이 개탄스럽다. 중고등학생 독서량 4.5권에 비해도 턱없이 책을 읽지 않는다. 독서 시간도 일주일에 3시간 이내이다.

오늘의 대학생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가. 주로 인터넷, 게임. 동영상물에 매달려 있어서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 책 종류도 주로 흥미가 있는 소설이나 에세이만을 읽는다.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관련도서 등을 읽지 않고, 편독경향이 심하다.

책을 고르는 것도 선택기준이 매우 수동적이다. 제목과 겉표지 등 表面的인 것을 보고 고르고 작가의 지명도. 출판사를 보고 고른다. 학생들이 책을 고르는데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에 기인하고 주위의 권유. 광고. 서평 등의 순위로 책을 고른다.

이 조사 자료에 의하면 소설을 어떻게 창작해야 잘 팔리는지를 알게 되지만 매우 한심하다 아무리 좋은 순수소설을 써도 세상시류에 맞추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베스트셀러와 서평

책이 유명해 지는 것과 그 책이 가치가 있다는 것과는 동일한 槪念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 일반 사회의 인기를 얻어 잘 팔렸을 때, 그 이유가 반드시 내용에 높은 價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더러는 人爲的으로 만들어져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와 같은 이유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이 고도로 발달하여, 과장된 광고로 독자를 교묘하게 유혹하는 어떤 전술이나 판매 방법, 선동을 유도하는 유행심리 자극 등이, 그러한 것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독자를 吸引하기 위한 어떤 메스커뮤니케이션의 자극이 없이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성립하게 된다.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를 읽으면 독서가로서의 교양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유행의 洋裝을 쫓고만 있으면 미인이 된다고 믿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쇼펜하우어는 ‘일반사회의 인기를 얻어 유명해진 책은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에머슨은 ‘출간되어 일 년이 되지 않은 신간은 읽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아직 書評을 통해서 整齊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말이 다 맞는 말이라고 볼 수는 없고,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독서를 하는데 있어서 良書를 골라서 하라는 경고성 말로 보면 되는 말이다.

서평 역시 독자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도 쓰지만 저자나 출판사를 위해서도 쓰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좋은 서평은 독자 편에 서서 ‘이 책에 무엇이 쓰여 있는가?’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客觀性 있게 밝힌 것이 되고 適確하게 쓴 것이 된다.

그렇게 보면 독자가 양서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서평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任意性이 있을 경우에는 그 반대의 현상도 생기게 되기 때문에, 자기 판단 기준에 따라서 좋은 양서를 골라서 읽기가 쉽지 않다. 조사 자료처럼 表皮만을, 출판사만을, 유명 작가만을. 선택기준으로 하는 것에서도 그것을 느끼게 한다.

소설을 쓰는 이유

게오르규는『25시』를 썼다. 이 소설에서는 구형 잠수함에 태워진 토끼를 언급하고 있다. 구형 잠수함에서 산소 부족이 오면 질식사를 하지만 승무원들이 그것을 사전에 느끼지 못한다. 사람보다 미약한 토끼가 먼저 죽는 것을 보고 새로운 산소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대처한다. 소설의 역할이 신선한 산소 공급과 비유되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들이 많다.

솔제니친이 쓴『암병동』은 공산주의를 비판한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을 쓴 후에 소련에서 추방되었지만 10년 뒤에 소련은 붕괴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이『성경』이다. 하지만 구약의 대부분이 소설적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혹자들은 문학의 영역으로 파악하려는 사람들까지도 있다. 성경의 말씀은 비유적 기법을 쓰고 있다. 부처님의 전생을 다룬『불경』의 많은 설화들 역시 서사문학이다. 종교의 진실을 소설적 구조를 통해서 일반에게 전달하고 있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는 신라 경문왕 때의 이야기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것을 알게 된 이발사는 자기 목숨을 위해서 발설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기의 병이 위중하게 되어서 마침내 發說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진실은 결코 숨기지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보카치오가 쓴『데카메론』은 초기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남녀 간의 성적 탐닉을 다룬 것으로 성직자들의 타락이 중심내용이다. 신부들이 유부녀를 속이고 劫姦하거나, 수녀들이 남자 하인을 共有하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의『동서고금소총』과 비슷하다. 인간의 성적욕구를 제약해 온 것이 종교중심 사회의 崩壞를 주도한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는 기사 이야기에 빠져서, 자신이 직접 기사가 되어 모험을 떠난다. 주인공은 돌고 있는 풍차마저도 적으로 간주하고 돌진하는 누를 범 한다. 무한정의 충성심. 머리가 빈 용맹심. 출세하려는 기사들을 비웃고 있다. 무지한 백성을 무시해 온 봉건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엉클 톰스 캐빈』은 많은 사람들에게 흑인 노예의 부당성을 알게 만들었다. 흑인도 정상적인 시민으로 대접 받아야 하는 것을 인식시키는데 기여함으로써 링컨의 흑인해방공약이 나오게 만들었다.

고리끼의 소설『어머니』는 러시아의 한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서 열악한 노동조건과 고용주의 횡포를 고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론적, 행동적 지침이 되어서, 공산주의 혁명운동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북한의『피바다』라는 작품은『어머니』의 模作이라는 말을 한다. 북한에서도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하는데 소설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농민이던 아들이 사회주의운동을 위해 떠나고, 그 빈자리에 어머니가 대신한다. 사람들이 가지는 어머니라는 말의 감성을 혁명에 접목시켰다.

『아리비안 나이트』에서도 왕의 권위보다 인간적인 사랑이 더 중요함에 대해서 갈파되었다. 왕비가 검둥이 종을 침대로 끌어들였다. 왕비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선택한 종은 검둥이고 난장이며 꼽추에 가깝다. 성적 즐거움을 만족시켜주는 데는 임금의 권위와 권력도 별게 아니라는 것이다.

동양의 4대 奇書인『삼국지』『수호지』『서유기』『금병매』도 소설 장르 이전의 작품들이지만 사회 변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간교함. 유비의 어짊에 대한 것들이 여러 가지로 비유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조조의 지도력이, 유비의 優柔不斷함이 강조된다. 이러한 차이가 소설 속에서 허구성으로 그냥 노출되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 이유는 民衆들이 소설 쪽을 더 믿기 때문이다.

『수호지』의 이야기는 봉건 국가에서는 드물게 王權에 대한 도전을 인정한 것이다. 양산박 頭領의 세력을 정부가 감당하지 못해서 관리로 타협하고 登用한다. 소설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을 테마로 다루고 있다.
『서유기』는 중국 무협 소설의 원조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드러낸 작품이다. 인간이 하늘을 날고 물속을 잠수하며 땅 속을 두더지처럼 파고 다닌다. 현재의 공상과학소설이나 추리소설과 같은 맥락이다.

『금병매』는 性文學의 꽃이다. 남녀가 벌일 수 있는 성적 관능의 극대화이다. 서문경이라는 관리 출신이 성적 욕구를 어떻게 달성해 가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남의 여자를 겁간하고, 첩으로 삼고, 여자의 남편을 살해하고, 성적 즐거움을 위해서 약품을 사용하고, 기구를 사용다가 파멸한다.

김시습이 30세 중반에 창작한 것이『금오신화』로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인간 행복의 본질이 유교. 불교. 도교에서 보다도, 단군이래의 종교인 風流徒에 더 근접한다고 喝破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기의 사상을 소설로 형상화 시킨 방법론에서도 어느 구구보다도 탁월하다.

허균의『홍길동전』은 嫡庶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줄거리로 한다. 임진왜란 때 고관의 서자들이 신분차별을 없애준다는 왕의 약속을 믿고, 義兵으로 참여하거나 軍資金을 내어놓으며 空名帖을 받았다. 나중에 벼슬에 올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렇게 했지만 왕이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서자 출신인 광해군이 임금이 되자, 그들은 연판장을 돌려서 공명첩 내용을 이행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광해군도 서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신하들이 반대하면서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 서자들이 이에 분개하여 반역을 음모하고, 자금을 만들기 위한 재물을 탈취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진 시기에 창작된 것이『홍길동전』이다. 폐쇄되었던 사회상에 대해서 반기를 든 작품이다.

한국의 근대문학도 마찬가지다. 신채호. 이광수. 김구 같은 인물의 사상들도 같은 맥락에서 소설이 쓰여 졌다. 이광수의 소설들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계승했다. 민족의 독립을 테러와 같은 武力에 의하기 보다는 교육 쪽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원효대사』『흙』『사랑』 같은 작품에서도 종교적 지도자상을, 啓蒙家를, 봉사자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소설의 역할과 창작

소설의 지향성은 당대의 사상과 규범. 도덕적 德目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전체성이나 사회성이 옳지 않으면 그것을 거부하고 소설을 통해서 民草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기존의 질서를 뛰어 넘는 새로운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도전하고 개혁하는데 공헌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컴퓨터 매체나 텔레비전에 매달려 있다.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영상물이 소설의 영역을 침범하고, 영상게임의 재미가 소설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신문마다 소설 같은 흥미위주의 사건 기사도 많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벼움을 추구하고, 진실의 무거움을 회피하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매사를 편하게 접근하고 진부한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며, 싫은 것은 회피하는 경향이 큰 사회로 변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자 한다. 그래서 소설 속에 담겨져 있는 인생의 진실이나, 세계의 진면목 같은 것을 思索해 볼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소설을 통해서 사회적 개혁과 변화에 영향을 준 것이 많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들마저도 知的인 것보다는 動的인 것에 더 치우쳐 있다. 올림픽. 월드컵. 각종 이벤트 같은 것에 더 무게를 두어온 것도 사실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실제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동영상물에 재미와 물욕이 가미되면서 ‘바다 이야기’ 같은 도박 게임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재미가 다소 떨어지는 소설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인간의 삶속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神的 요소와 인간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兩面의 칼날이 있다. 소설 속에는 세계화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전쟁이나 테러방지. 평화 공존에 관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소설의 주제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행복의 조건. 서로를 사랑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열린 마음. 전쟁을 위한 핵물질이나 무기 확충. 자연파괴와 환경문제 등 共存共榮을 위한 것들이 된다.

고대로부터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을 썼다. 그래서 소설 속에는 삶이 녹아 있고 흥미가 있다. 선각자들은 그래서 책을 쓰고 읽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그저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 경제적 부와 삶을 즐기는 것에 안주한다. 그러나 소설가들은 자신이 태어난 참다운 가치를 다른 데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늘 던지며,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 渴望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