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추억 속의 그 이름> 어떤 피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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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이름> 어떤 피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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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고? 퍼뜩 집에 온나

 
   
  ^^^▲ 시인과 두 아들 (왼쪽부터 완수, 이선관 시인, 경수)
ⓒ 이종찬^^^
 
 

"혼주 댕기풀이? 그런 것도 있습니까?"

"내 어릴 때만 해도 자식이 결혼하는 전날에 혼주가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놓고 한 턱 내는 풍습이 있었다 아이가. 그기 바로 혼주 댕기풀이라 카는 거 아이가"

"하여튼 술 먹을 핑계를 만드는 방법도 가지 가지네요"

"그라이 월요일에는 월래(원래) 묵고, 화요일에는 화끈하게 묵고, 수요일에는 수시로 묵고, 목요일에는 목구녕이 차도록 묵고, 금요일에는 금시 묵고 또 묵고, 토요일에는 토하도록 묵고, 일요일에는 일찌감치 묵는다 안 카더나"

얼마 전, 마산의 토박이 시인이자 우리 나라 최초의 환경시 '독수대'를 쓴 이선관 시인의 둘째 아들 경수군의 결혼식이 열렸다. 경남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듯이 이선관 시인은 한 살 때 백일해 약을 잘못 먹어 한번 죽었다 살아난, 그래서 그때부터 뇌성마비에 걸려버린 장애시인이기도 하다.

그런 이선관 시인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완수와 경수다. 그런데 큰아들 완수는 아직까지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완수의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마지막 학기를 이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큰아들 완수보다 둘째아들 경수가 먼저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선관 시인의 둘째아들 경수는 올해 스물일곱이다. 경수는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현재 해군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큰아들 완수보다 경수가 더 듬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선관 시인은 큰아들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둘째는 계산이 빠르고 빈틈이 없긴 하지만, 첫째는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고 정이 많다는 것이다.

"우짤끼고? 좀 억울한 생각이 들기는 해도 나머지 한 학기로 더해서 졸업은 시키야 안되것나? 그라고 인자 둘째야 머슨 걱정이 있노?"
"나도 안다. 하지만 당분간은 지 하는 데로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다"
"그래. 인자 고마 하고 혼주 댕기풀이 술이나 묵자. 넘 집안 일에 우리가 콩 놓아라, 밥 놓아라, 하는 것도 그리 좋지 않다."

 

 
   
  ^^^▲ 큰 대포집에서(왼쪽부터 화가 현재호,김호부,이선관)
ⓒ 이종찬^^^
 
 

이선관 시인의 둘째아들 경수의 결혼식이 열리기 하루 전날,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 화가 현재호 선생님을 비롯한 우리 일행들은 '큰대포' 집에 모였다. 주말마다 그 시간이 되면 으레 그 집에서 그렇게 모여 술잔을 기울이곤 하지만 그날은 특히 혼주 댕기풀이라는, 제법 그럴 듯한 핑계거리가 있었다.

"인자 니도 내일이모 시아부지가 된다 아이가. 그라고 내년 이맘 때 쯤 되모 진짜 할배가 안되나"
"그렇찮아도 시인 할배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거하고 이거하고는 틀리다 아이가. 지금까지는 가짜배기 할배였고, 인자부터는 진짜배기 할배가 되는기라"
"자! 마산이 낳은 이선관 시인의 진짜배기 할배 승진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건배! 건배!"

하지만 그날 우리 일행들은 평소보다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왜냐하면 모두들 다음날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부설 해군회관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오전 11시까지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난감했다. 왜? 차가 밀린 관계로 부산에서 뒤늦게 도착한 친구는 불과 30분도 되지 못해서 일어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 오늘 누구 결혼식이지?"
"도대체 누가 신랑이야?"
"어! 저 신랑은 또 누구야?"
"신부는 하나뿐인데, 신랑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거야"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를 맨 이선관 시인의 모습. 그랬다. 그날 식장에 나타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선관 시인의 멋진 정장차림을 보고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계량한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식장에 나타난, 오늘의 주례를 맡은 작곡가 고승하 선생님의 모습도 그럴싸했다.

나도 이선관 시인의 정장차림은 그날 처음 보았다. 참으로 의젓하게 보였다. 과연 혼주는 혼주였다. 그랬다. 그동안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앓으면서도 혼자서 가난을 극복하고, 혼자서 당당하게 키워낸 아들 둘. 그 아들 중 둘째가 해군 중위 계급장을 단 멋진 모습으로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신랑 신부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
"목소리가 잘 안들리 걸 보니 끝까지 갈 자신이 없는 모양이네. 다시. 맹세합니까?"

그날 열린 결혼식은 다른 결혼식에 비해 제법 재미가 있었다. 고승하 선생님의 꽤 익살스런 주례사도 재미가 있었지만, 칼을 마주대고 선 사관생도들의 관문 통과 의식도 배꼽을 잡게 했다. 특히 신랑이 신부를 안고 부모님 사랑합니다, 를 외치는가 하면, 신부가 사탕을 입에 넣어 신랑의 입속에 넣어주는 모습들은 다른 결혼식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가자! 마산에 나가서 우리끼리 한잔 더 해야지"
"이 선생님은?"
"아, 오늘 혼주인데 울매나 바뿌것노. 우리가 자리를 피해주는 기 도와주는 기다. 그라고 손님들 대충 다 가고 나모 청승 맞구로 지 혼자 집에 있을끼거마는. 그때 불러내모 된다"

그날 우리 일행들은 모두 차를 나누어 타고 마산으로 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이른 탓이었는지 큰대포집의 문이 굳게 잠겨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일행들은 할수없이 다른 대포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화가 현재호 선생님의 18번인 '백치 아다다'를 들으며, 대낮부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여보세요? 어! 선생님!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그기 오데고? 퍼뜩 집에 온나"
"일단 남은 술은 다 마시고 갈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은지 불과 2~3분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있겠다던 이선관 시인이 어느새 빙그시 미소를 지으며 주점에 나타난 게 아닌가. 그랬다. 난생 처음으로 아들을 결혼시킨 시인은 잔치가 열린 그날도 역시 혼자였다. 그리고 무척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선관 시인의 집으로 향했다.

두어 평 남짓한 달셋방이 가진 재산의 전부인 이선관 시인의 집에는 예물로 받은 정종과 여러 가지 음식들이 제법 있었다. 그랬다. 그날 시인은 그 음식을 같이 나눠먹을 사람들이 그리웠던 것일게다. 아무리 비좁은 달셋방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아들이 결혼식을 올린, 참으로 기쁜 날이 아닌가 말이다.

그날, 우리 일행들은 이선관 시인의 달셋방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그리고 시인이 난생 처음으로 예물로 받은 그 음식들을 정말 맛있게 나눠먹었다. 어둑하고 비좁은 시인의 방에서는 오랜만에 사람들의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 희미한 형광등 불빛을 더욱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내가 시아부지가 되고 할배가 되모 뭐하노? 저거들끼리 관사에서 그렇게 살 낀데"
"그래도 인자는 명절 때가 되모 나란히 세배라도 하러 올 끼 아이가. 나이가 들모 고마 그런 재미로 사는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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