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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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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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파키스탄을 지나 인도에

'라흘'을 뒤로했다. 자동차는 넓게 펼쳐진 전원지대를 꿰뚫고 GT로드를 따라 인도를 향해 쾌조로 항진했다. 파밀산 속, 중국국경의 군제라브 고개에서 간다라에, 그리하여 아프카니스탄의 국경 툴크햄으로 부터의 필자의 여정은 인도의 국경 와가Waga까지 이르른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 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래, 캐시밀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되풀이 해 왔다. 같은 인종이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종교나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인 것이다. 멀리 서방으로 부터 온 알렉산더 대왕이 통과한 길, 불교의 진수를 찾아 법현이, 현장이 고난의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길도, 지금은 완전히 포장 돼 있다.

오래 전, 실크로드에서 번영했던 나라들도, 시대가 바뀌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담당했을 손 마디, 발자취들도 교대되었다.

국경을 지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줄은 미쳐 몰랐다. 파키스탄의 '라흘'까지는 파키스탄인이 지프차를 운전하여 왔으나, 국경을 넘자니 상황이 달라졌다.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일단 파키스탄에 입국하여, 스스로 지프차를 운전하여 국경을 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도리없이 필자가 스스로 핸들을 잡지 않으면 안되었다.

서울을 나설 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받아 둔 국제면허증이 효력을 본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운전 석에 앉아 보았다. 클러치와 액셀의 구별이 한 순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럭저럭 파키스탄의 출국수속은 생각보다 간단히 끝났다. 세관원이 필자에게 차 서비스까지 해 줄 정도였다.

5 백미터 남짓한 파키스탄, 인도국경의 완충지대를 슬금슬금 차를 몰아, 신중하게 국경선을 지났다. 인도 쪽 세관에 들어서니 이것저것 세밀하게 체크했다. 필자 앞에 있는 미국인은 카르테(자동차 일시 옮김 서류)에 싸인이 한개 누락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인도에 들아가는 것이 불가능, 연 두 시간이나 세관원과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다행히도 필자의 지프차는 세관을 무사히 통과하였으나, 갖고 가던 자동차 부품이 걸리고 말았다. 부품은 큰 상자로 세개, 발전기 두 대가 지프차의 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터번을 둘러 쓴 직원은 먼저 부품 가짓 수에 눈을 휘 둥그레 뜬다. 저 혼자서 통관시켜 좋을지 어떨지 판단이 서지 않는지 서류를 들고 방을 나갔다. 실은 어제 인도에 들 예정이었으나 수속 사정으로 하루가 늦어졌다.

인도 쪽에는 지금 국경을 지나 오는 필자의 장면을 담기 위해 환영 팀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11 시 까지는 국경을 지나겠지.....하고 있는데 벌써 10 시를 넘기고 있었다. 파키스탄~인도사이는 전화교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과 연락이 이뤄질 수가 없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터번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방 바깥으로 나서자, 철책 저쪽에서 환영팀에서 큰 소리로 목청을 돋우는 것이 들려왔다.

'박 선생, 어떻게 된겁니까? 여긴 스탠바이 OK!'

하루를 기다렸던 그들이 오늘도 같은 시각에 스탠바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지만, 통관이 늦어지고 있소. 좀 더 시간이 걸릴 둣 싶소.'
드디어 '터번씨'가 돌아왔다. 상사와 의논한 결과 70 종류의 부품이 전부 실물인지 아닌지를 조회해 본다는 것이다. 포장을 하나하나 부품번호를 확인해 나갔다.

필자는 한국의 어떤 상사 맨의 이야기가 떠 올랐다. 그는 몇번이나 차로 국경을 지나다닌 일이 있는 전형적인 세일스 맨이다.

'어느 곳이든 출국은 간단합니다. 직원들도 출국하는 사람이나 차는 웬만큼 책임을 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문제는 입국하는 사람이나 찹니다. 만일 무엇이든 트러불이 일어나면, 자기에게도 책임이 파급되니까요. 그래서 입국의 세관검사는 어느 나라나 엄중합니다. 인도는 외국 차를 수입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심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우 부품조회를 끝내고 터번씨가 본드 Ok의 도장을 찍어 준 것은 오후 3 시를 지날 무렵이었다. 세관에 들어 간 것이 오전 8 시였으니까, 불과 1 천미터 정도의 파키스탄~인도의 국경을 지나는데 일곱시간이나 걸린 셈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국경에는 높은 벽이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인도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영팀과 합류한 것은 1984년 11월 11일, 그러니까 8 월8 일, 중국 서안을 떠난지 93 일만의 해후였다. 인도의 겨울 하늘은 쾌청, 바로 그것이었다.

인도는 좋거나 싫은 것, 어느 한 쪽

예전에 취재를 다녀왔거나, 관광으로 인도를 둘러 본 사람, 불교연구가등 몇몇 사람과 필자는 서울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들이 인도에 대하여 말할 때, 두 개의 타입으로 확연히 갈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는 인도에 대하여 거부감,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타입이다. 이 종류의 사람들은, 인도가 가지고 있는 전 근대성, 비 능률성, 빈곤, 카스트제도, 혹서酷暑, 맵디 매운 카레 등 백 가지도 더 열거할 수 있을 만큼 험구를 늘어 놓은 다음, 마지막엔 마치 정해 놓은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두번 다시 그 곳엔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도에 관한한 무엇이든 싫은 것이다. 제 2 의 타입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도의 무엇이든 좋다는 사람들이다. 인도에 매력을 느낀 그들은 말한다.
부럽더군요. 가능하면 또 한번 가서 매운 카레와 구운 닭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불가사의한 것으로는, 이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타입의 중간은 없다.

좋거나 나쁘거나 인도란 나라는 찾아 온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놓는 모양이다. 북쪽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록에서 남쪽의 인도양에 돌출한 고모린 갑岬까지 한 반도의 10 배나 되는 면적을 자랑하는 인도는 인구가 7 억에 가깝다.
세계 유수의 부호와 도로에 넘치는 걸식의 무리, 불교를 탄생시켰지만 중세에는 이슬람교가 지배하였고 지금은 국민의 85 퍼센트가 힌두교도이다.

영어와 힌두어 이외에 공용어만도 15개가 있으며, 작은 지역의 언어나 방언을 더하면, 8 백 종류의 언어가 뒤섞여 사용되고 있는 다양성!

두번 다시 가 보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될지 꼭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 될지 어느 쪽으로 판가름 날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떻든 필자의 인도행은 시작되었다.

현장삼장(玄奬三藏)

국경을 지나서 필자는 바로 수도 델리Delhi까지 밤 길을 달렸다. 파키스탄과의 국경거리 앰리투알에서 델리까지는 차로 10 시간이나 걸렸다. 쉬지 않고 달려 델리에 도착했을 때는 동쪽 하늘이 밝아 오고 있었다. 인도는 1 년내내 무더위가 계속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북 인도의 겨울은 생각했던 것보다 추웠다. 델리의 아침은 4~5도 까지 기온이 내려간다.

비행기로 도오꾜오를 경유, 인도까지 직행 편으로 가는데는 14시간의 여정이지만, 5 세기에서 7 세기에 걸쳐 중국에서 천축天竺인도에 불전을 구하러 첮아 온 승려들은 도중에 가로막아 선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파일의 대 산괴大山塊를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

수 많은 구도 승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이 7 세기 초엽, 혼자서 중국으로부터 인도에 찾아 든 현장삼장일 것이다. 현장삼장의 이름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활약하는 중국의 고전소설 '서유기西遊記'에서 익히 알려져 있다. 3 인의 종자從者는 물론 작자의 허구지만, 현장삼장은 실재 인물이다. 당 나라 초기, 중국에서는 불교내부에 많은 유파가 형성되어 오랜 세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불교 교의敎義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차이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불교가 흥했던 인도에 가, 경전을 찾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었다. 이미 수도 장안長安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승려였던 현장은 불교학을 연구하기 위해 인도 행을 조정에 신청하였다. 그러나 현장의 소망은 처음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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