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그림자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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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그림자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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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기림사"

 
   
  ^^^▲ 한대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리고 있었던 기림사
ⓒ 경상북도^^^
 
 

"가난한 여인이 모든 정성을 다해 등을 켰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설화처럼 우리도 진솔한 마음으로 자신의 불성을 일깨우고 중생의 어둠을 사르는 지혜의 등불을 켜야 한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 '봉축법어' 몇 토막)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의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리고 있었던 기림사. 기림사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철쭉을 비롯한 갖가지 꽃들이 예쁘게 피어나고 있다. 저만치 물이 가득 담긴 들판에서는 모내가 한창이다.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에서는 올챙이들이 수없이 헤엄치고 있다.

기림사? 그래. 이 '기림'(祇林)이란 글자속에도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석가모니가 살아있을 때, 가장 으뜸으로 치던 곳이 죽림정사와 기원정사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기원정사는 석가모니가 20년이 넘게 머무른 곳이다. 또 그때부터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유랑 위주의 수행생활에서 점차 정착 위주의 수행생활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기림사 대적광전
ⓒ 경상북도^^^
 
 

그때, 석가가 머물던 기원정사의 숲을 가리켜 '기림'이라고 불렀단다. 야트막한 함월산을 자신의 둥지로 삼은 기림사의 이름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643년, 선덕여왕 12년에 천축국(天竺國)의 승려 광유가 처음 이 절을 창건할 때의 이름은 임정사(林井寺)였단다.

이후 선덕여왕 20년인 651년에 원효대사가 임정사를 확장, 중수한 뒤 지금의 이름인 기림사로 개칭했다고 한다. 그러나 창건연대도, 절 이름에 대한 것도 모두 정확치는 않다. 하긴,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에 있었던 그런 일들을 어찌 컴퓨터처럼 그리 정확하게 알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삼국유사>의 "신라 31대 신문왕이 동해에서 용으로 화한 선왕으로부터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얻어 가지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림사 서편 시냇가에서 잠시 쉬어갔다"는 기록을 살펴보면, 최소한 통일신라 초기인 신문왕 이전부터 기림사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가 있다.

안동리에서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이내 만날 수 있는 기림사는 긴 역사 속에서 부침을 거듭한다. 1578년 선조 11년에는 축선(竺禪)이 중건하였고, 정조 때에는 경주부윤 김광묵(金光黙)이 사재를 희사하여 크게 중수했다고 한다. 또 1862년 철종 13년에는 큰 불이 나서 본사(本寺)와 요사(寮舍)채 113칸이 소실된다.

하지만 이듬해 봄에 경주 부윤(府尹) 송우화(宋迂和)가 그해 가을에 복원한다. 이후 1878년 고종 15년에는 법당과 여러 건물의 중건, 중수를 거쳐 1905년에는 혜훈이 다시 중수하였단다.

그때부터 기림사는 불국사를 비롯한 경주군 일대를 관장하였으나, 해방 이후부터는 불국사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지금은 스스로 불국사의 말사가 되어 얌전하게 엎드려 있다.

 

 
   
  ^^^▲ 종이에 옻칠을 하여 만들었다는 건칠보살좌상
ⓒ 경상북도^^^
 
 

기림사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약사전, 응진전, 진남루가 사각의 성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보리수 나무와 목탑자리가 남아 있다.

뜰에는 삼층석탑과 더불어 요즈음 새로 만든 석등이 장승처럼 우뚝 우뚝 서 있다. 그 곁으로 명부전과 삼성각, 관음전을 비롯한 16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산신각 뒤쪽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사당도 있다.

기림사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병화를 입지 않은 사찰이어서 그런지 눈에 띄는 것이 모두 보물이요, 문화재다. 특히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와 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 부호장선생안(府戶長先生案) 등 중요한 문적(文籍)과 근세 조선 역대의 어필(御筆) 등도 잘 보관되어 있다.

또 최근 개관한 박물관은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이 박물관에는 기림사를 대표할 만한 건칠보살좌상, 그러니까 옻칠을 한 종이부처가 있다. 옻칠을 한 종이부처? 그래. 높이가 91cm인 이 종이부처는 근래 아주 보기 어려운 부처상이란다. 하지만 최근에 금색을 다시 입혀 본래의 낡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보물 제415호.

1986년 9월에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불상 속에서 발견된 비로자나불 복장전적도 정교한 판각솜씨를 뽐내고 있다. 이 전적들은 모두 54권 71책으로 고려에서 조선, 그러니까 12세기의 목판본과 17세기의 목판본에 이르기까지, 그 간행시기가 6세기에 걸친 것이란다. 보물 제959호. 그 밖에도 지옥과 염라대왕을 묘사한 탱화, 부처님의 진신사리, 와당, 각종 서책 등도 눈여겨 볼 만하다.

기림사는 우리나라 차유적지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왜? 기림사에는 다섯 가지의 독특한 맛을 내는 물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대적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옆의 장군수다. 이 물은 마시면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서 장군이 난다는 물이다. 둘째는 천왕문 안쪽의 오탁수인데, 이 물은 맛이 너무 좋아 까마귀도 쪼았다는 물이다.

셋째는 천왕문 밖에 있는 명안수라는 물인데, 이 물을 마시면 기골이 장대해지고 눈이 맑아지며, 넷째는 후원에 있는 화정수라는 물로서 이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섯째는 북암의 감로수라는 물로서 이 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이라고 한다.
 

 
   
  ^^^▲ 비로자나불 복장전적
ⓒ 경상북도^^^
 
 

"근데 처음 말한 그 장군수는 지금은 나오지 않잖아?"
"그기 다 왜놈들 짓거리 아이가. 왜놈들이 이순신 장군 같은 뛰어난 장군이 우리나라에서 다시 출현할 것을 두려워 해가꼬 이 장군수로 아예 막아뿟다 카더라."
"하여튼 어딜 가나..."

하지만 장군수를 제외한 다른 네 곳, 오탁수와 명안수, 화정수, 감로수는 오늘도 제 각각 독특한 물맛을 뽐내며 퐁퐁퐁 솟고 있다. 그뿐 아니다. 기림사 주위에도 수정 같이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이 계곡을 따라 500m쯤 더 올라가면 두 개의 암벽이 갈라진 틈새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내려친다. 용두연 폭포다.

이 용두연이라는 이름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얽혀 있다. 신라시대 신문왕이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동해의 용에게 받은 옥대고리 하나를 이 계곡물에 담궜단다. 그러자 갑자기 그 옥대고리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단다. 또 용두연과 기림사 중간에 있는 선녀탕도 보는 이로 하여금 금새 나뭇군과 선녀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어! 근데 저게 뭐지?"
"어디?"
"방금 기림사 위를 맴돌던 빛 말이야"
"니 또 헛 기 비는(보이는) 가베?"

"부처님 그림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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