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넘어가니 술을 마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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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넘어가니 술을 마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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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대화(下)

"내 일생 술을 벗삼아 지내 왔거늘 내가 아무데서나 술에 취한 채 죽으면, 죽은 자리에 묻어 달라고 이렇게 무덤을 팔 괭이를 준비해 다닌다네."

이 말을 듣고 있던 김삿갓과 이태백이 큰 박수를 보냈다. 김삿갓은 더 이상 싸움이 되지 않는다며 시 한 수를 선물로 날렸다.

'치수녕황지 시주자오신(輜銖寧荒志 詩酒自娛身)' '득월즉대억 유유감몽빈(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나 스스로를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너그러이 옛 생각도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김삿갓다운 행동이었다. 유영도 익히 듣던 대로 대가를 만나 영광이라며 인사를 나눈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까지의 말들은 하늘나라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평생을 술과 친구로 지내면서 술을 위해 한 말씀씩 남겨놓은 것을 꾸며 본 것이다.

그런데 정작 30여 년 가깝게 술을 마셔온 나는 그리 대단한 말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으니 풍류를 모르는 까닭일까. 아니면 미처 남길 시간이 없었을까.

그래도 나보고 한 말씀 남기라면 나는 서슴치 않고 말 할 것이다. "물은 꿀꺽 꿀꺽 넘어가고, 술은 술술 넘어가니 이왕이면 마시기 손쉬운 술을 마실 수밖에."

지금 들으면 별 것 아닌 것 같겠지만 몇 백년이 흘러가면 역시 이 말에 술의 철학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처칠 경은 매일같이 위스키 한 병씩을 마시면서 '2차대전 회고록을 쓰고 그림도 그렸다. 처칠 경이 마신 술이 진실 된 역사를 남기도록 펜을 움직였다면 그 일 또한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런데 모두들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풍류를 모르는 단순한 주당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그러고 보니 사실인 것 같다. 술자리에 앉으면 그저 부어라 마셔라 세상 도마질만 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많이 마시고 잘 마신다, 노래 잘하고 잘 논다, 아무리 마셔도 말똥말똥하다, 실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술 매너 좋다 등등 좋은 소리 많이 들어 봤지만 주신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내일부터는 술잔을 들면서 풍류를 노래하리라. 해학이 있고 멋이 있는 정감 넘치는 말이 오가는 그런 술자리를 만들어 보련다. 그 것이 술을 마시되 이 세상을 맑게 하는 청량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말을 해놓고 보니 또 구미가 땡기는 구만. 갑자기 옆구리가 시큰시큰 해지는 것을 보니 서산에 걸친 해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시간인가 보다.

오늘은 누구와 한잔할까 보다는 어디 가서 한잔할지를 고민해봐야겠다. 역시 풍류도 분위기가 있어야 되니까.

휘황찬란한 불빛아래서 양주잔을 비우면서 '부생이 꿈이어늘 공명이 아랑곳가, 현우귀천도 죽은 후면 다 한가지, 아마도 살아 한잔 술이 즐거운가 하노라'라고 독주가를 읊은들 무슨 풍류가 있겠는가. 조그마한 선술집을 찾아가 늙은 주모와 오늘밤 걸죽한 대화나 한번 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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