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진공업국을 향하여 (13)
스크롤 이동 상태바
[특집] 중진공업국을 향하여 (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9장. 기계공업의 태동(자동차) - ②

 
   
  ^^^▲ 일생을 받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하신 故 박정희 대통령
ⓒ 뉴스타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경제기획원의 기계공업 육성 방안 - 4대 핵공장

기계공업을 관장하는 부서는 의당 상공부이다.

그러나 김학렬 부총리는 경제기획원에서 직접 다루기로 결심을 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金 부총리는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총책임을 지고 부임했다. 종합제철이란 기계공업에 대한 소재를 공급하는 공장인데 기계공업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합제철부터 먼저 착수했으니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 된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일본측 조사단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래서 金 부총리는 불안감을 느끼고 기계공업 육성도 종합제철의 일환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金 부총리가 기계공업 육성문제를 상공부에게 맡기지 않고 행정질서를 무시하면서까지 직접 다루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다만, 金 부총리가 공식석상에서 특유의 독설로 "상공부 ×들이 기계공업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그래"라고 하는 것을 보고 짐작할 따름이다.

金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과거부터 친분관계에 있던 해리 崔 박사(Harry Choi, 기계공학 전공으로 당시 미국의 Battele Memorial Institute의 수석연구원)를 초청했다. 바텔연구소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연구협력계약을 체결한 기관이었다. 金 부총리는 해리 崔 박사에게 우리나라의 「기계공업 육성방안」에 대한 용역을 맡겼는데 이 조사에 KIST도 참여토록 했다. 해리 崔 박사는 바텔연구소에서 연구방향을 설정, 1970년 1월 귀국했는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가지고 왔다.

(1) 한국의 기계공업은 기반이 전혀 없으므로 기존 상황은 감안하지 않는다.

(2) 유망업종 중 한가지를 주도업종(Lead Industry)으로 선정해서 집중 육성함으로써 타 산업의 발전을 유발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3) 노동집약 업종이 한국의 가장 큰 이점이다.

(4) 주력 공장의 세부계획을 설정한다.

이상과 같은 기본방향 아래서 KIST와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는데, 70년 4월 연구보고서가 완성되었다. 崔 박사팀의 보고서에서는 가장 중요한 공장으로 5개 공장을 선정했다. (1) 종합제철소, (2) 주물선(鑄物銑)공장, (3) 특수강공장, (4) 조선소, (5) 중기계종합공장이었다.

이 중 종합제철소는 이미 포항에서 건설을 시작했으므로 새로 건설해야 하는 것은 4개 공장이 된다. 가장 중추적인 공장이 중기계종합공장과 조선소이다. 이 공장이 崔 박사가 이야기하는 주도업종(Lead Industry)이다. 업종이 아니고 공장이라는 뜻이다. 나머지 주물선공장과 특수강공장은 이들 두 공장에서 필요한 소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된다.

崔 박사는 1970년 6월 초 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했는데 이 자리에는 김학렬 부총리, 남덕우(南悳佑) 재무부 장관, 이낙선(李洛善) 상공부 장관, 송인상(宋仁相) 경제과학 심의의원 등이 참석했다. 崔 박사는 보고 결론 부분에서 "본 사업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우리나라는 방위산업의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고가 끝난 후 朴 대통령은 방위산업의 기반이 구축된다는 대목에 만족했는지 金 부총리에게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註: KIST에서는 이 보고서를 1970년 9월 중공업 발전의 기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상, 하 두 권을 합하여 1,351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보고서이다).

엔지니어링 어프로치가 빠진 기계공업 육성방안

그런데 브리핑이 있은지 2∼3일 후에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제8장에서 설명했지만 북한 함정이 서해 휴전선 부근에서 우리나라 해군 함정에 포격을 가하고 납치해 간 것이다. 朴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긴급 비상조치를 취하고 난 직후, 金 부총리를 청와대로 불러 북한의 각종 도발에 대한 깊은 우려와 자주국방력 강화의 긴급성을 설명하고는 병기생산 공장의 건설을 서두를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이 자리에서 金 부총리는 "해리 崔 박사가 건의한 4개의 기계공장만 건설하면 무기생산은 가능하다. 건설에 필요한 외자는 대일차관으로 충당하겠다"고 답변했다. 종합제철 때의 경험에서 자신을 얻은 金 부총리는 정부 대 정부 교섭으로 강력히 요구하면 일본측도 협조하리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는 이코노크라트와 테크노크라트의 관점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는 예들 중의 하나이다. 金 부총리는 당시까지만 해도 종합제철건설을 KISA 안에서 「일본청구권 자금을 사용하는 방안」으로 전환하면서, 충분한 「엔지니어링 어프로치」를 통해 계획을 경제성있게 대폭 수정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金 부총리는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차관확보의 성공은 ―완벽한 엔지니어링 어프로치에 의해 경제성이 있는 계획으로 대폭 수정했기 때문이라는 점보다는― 정부 대 정부의 교섭의 성과라고만 판단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장건설 사업은 얼마나 경제성이 있으며 국제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가를 우선 따진 후 자금조달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金 부총리는 자금조달 문제만 해결되면 만사가 성취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더욱이 기계공업육성은 기계시설만 도입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기술인력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은 염두에도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4대 핵(核)공장」건설계획, 일본측 반대에 부딪쳐

金 부총리는 기획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시 경제협력 차관보이던 황병태 씨를 長으로 하여, 경제기획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엘리트로 작업반을 편성토록 지시하고는 즉시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무기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정부 방침에 비추어, 무기를 제작하기 위하여 차관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일본에 알려지면 차관교섭에 지장을 줄 염려가 있으므로 극비에 붙이기로 했다. 金 부총리는 예의 날카로운 언사로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오늘 회의는 절대 비밀이다. 일절 함구해라. 앞으로 5개의 공장건설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 주물선공장, 특수강공장, 중기계종합공장, 조선소 및 신동(伸銅) 공장의 5개 공장이다(註: 아마도 누군가가 탄약류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동공장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던 것 같다). 신동공장의 사업계획서는 상공부, 나머지는 KIST에서 작성해라. 기간은 일주일이다. 기한을 엄수해라. 절대로 기한을 넘길 수 없다. 모두 밤샘할 각오를 하라. 장소는 KIST에서 합숙해서 실시해라. 이상 끝"하고는 나가버렸다. 이렇게 돼서 철야 돌관작업이 시작됐다.

7월 중순께 각 프로젝트별로 타자용지 100페이지 정도의 개략적인 사업계획서가 마련되었다. 이 때는 어떻게 된 일인지 신동공장은 빠지고 4개 공장이 됐다. 金 부총리는 이 4개 공장이 무기생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또한 기계공업 육성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4대 핵공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黃 차관보는 완성된 4대 핵공장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즉시 일본측에 전달했다. 7월 21일부터 23일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4차 한일경제각료회의에서 이들 공장에 대한 차관을 일본측에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4대 핵공장 건설안을 미리 일본측에 교부해야 했던 것이다. 이들 공장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느라고 긴급명령이 떨어지고 밤샘을 하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4대 핵공장 건설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접수한 일본 정부는 이번에도 포항종합제철 건설사업 조사단장이었던 통산성의 아카사와(赤澤璋一) 중공업국장을 단장으로 해서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했다. 부문별로 회의도 하고 공장입지도 점검하면서 조사활동을 벌인 조사단은 귀국 후 조선공업에 대한 협력은 불가하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특수강공장과 중기계종합공장만이 협의대상이 된다고 했다. 4대 핵공장이란 바로 국가지상 과제로 등장한 「방위산업」으로, 朴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사항이었으니 金 부총리로서는 아주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註: 상공부에서 추진하는 「금오공고(工高) 건설안」「4대 핵공장 건설안」과 동시에 다루어졌으나 이 안건은 이미 설명한대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4대 핵공장 건설계획의 문제점

해리 崔 박사의 4대 핵공장 건설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1) 포항 종합제철 생산량 중 6,400톤을 중기계종합공장에서, 13만 톤을 조선소에서 소비한다는 계획이다. 종합제철 생산량인 103만 톤에 비하면 13%밖에 되지 않는 양이다.

(2) 주물선(鑄物銑) 공장 : 주물선은 선철(銑鐵)이라고도 한다. 조형성(造形性)이 우수하기 때문에 주물로 만들어서 기계부품으로 사용한다. 주물선이라는 것은 선철의 규격품을 말하는 것인데 주물선 대신 값이 싼 고철(古銑鐵)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철만 구할 수 있다면 주물을 생산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주물선공장을 건설할 때에는 고철보다 값싸게 선철을 생산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崔 박사 案에 나와 있는 20만 톤 공장은 국제규모 미달이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미 설명했듯이 선철은 종합제철에서도 생산된다. 다만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에 포항제철에서는 선철을 강철로 만든 후 압연과정을 거쳐 판매하는 것이다. 선철의 수요가 늘어 주물선공장을 별도로 건설할 때에도, 원료로는 철광석과 코크스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종합제철 부지 내에 부수 공장으로 건설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일본 조사단으로서는 찬성할 리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 포항제철공장에서는 그 후 공장규모를 확장할 때 50만 톤 규모의 주물선공장을 부수 공장으로 건설했다. 결론적으로 방위산업과는 큰 연관성이 없는 사업이다.

(3) 특수강공장 : 특수강은 재질에 따라 수천 가지 종류가 있다. 모양과 굵기에 따라 그 종류가 얼마가 되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간단한 특수강은 전기로(電氣爐)만 있으면 생산 가능하기 때문에 기계공장들은 자체 생산해서 쓰기도 한다. 따라서 특수강공장이라는 것은 고급 합금강(특수강)만 제조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소량 다품종 생산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특수강공장은 기계공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업종인데, 그렇다고 어떤 특수강공장이나 다 모든 종류의 특수강을 생산하지는 못한다. 우리나라로서는 우선 기계공업을 발전시켜 놓은 후에 착수해야 할 업종이다. 그때까지는 수입해서 쓰면 된다.

(4) 20만 톤급 조선소 : 일본 조사단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대규모 조선소 건설계획은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은 현재 1∼2만 톤급의 선박을 건조할 계획이라지만 아직까지는 실적이 없으므로 우선은 계획중인 1∼2만 톤급을 건조하고 난 후 5만 톤급, 그리고 10만 톤급으로 차차 경험을 쌓은 다음 20만 톤급 이상을 건조해야지, 처음부터 대형선박을 건조한다는 것은 무모하다"라고 지적했다. 엔지니어링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옳은 판단이다. 우리나라에도 당시 부산에 대한조선공사(株)가 있었는데 시설면에서는 5만 톤급 선박까지는 건조 가능했다. 그리고 기술만 있다면 이 조선소에서 3∼4천 톤급의 구축함도 건조할 수 있다. 문제는 기술부족인데, 우선은 기술을 축적하고 실적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5) 중기계종합공장 : 중(重)기계라면 대형기계 및 시설물을 제작하는 공장이라는 뜻이고, 종합공장이라면 주물부터 시작해서 제품까지 전부를 한 공장에서 만들겠다는 뜻이 된다. 제품 종류도 다양해서 완성기계를 3,980대, 그리고 중간제품, 종합제철에 필요한 압연롤(壓延 Roll), 조선소용 보기(補器) 및 의장품, 철구조물 등 모두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공장 하나만으로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주요 기계제품을 모두 생산해서 공급하겠다는 것이니 문제점이 많다. 첫째, 전문성이 없다. 어떤 공장이든 간에 생산된 제품의 품질이 우수하고 값이 싸야 판매할 수 있다. 그래서 전문공장이 생기게 되고 대량생산 시설을 하게 되며 품질향상을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이다. 둘째, 기계공장이라는 것은 여러 전문생산업체로부터 소재나 부품을 공급받아 최종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생산공장이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하청업체 중에는 중소 기계공장이 많다. 기계공업이라는 것은 중소 기계공장이 발달돼야 비로소 건전해지는 것이다. 공장 몇 개를 건설한다고 해서 기계공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기계공업은 그 특성상 기계공업의 전 분야가 집단적으로 발전해야 한다(註: 후에 조성된 창원기계공업기지에는 수백 개의 기계공장이 건설되었는데,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입증이 된다. 방위산업을 생각해보아도 소총 만드는 공장이 따로 있고, 화포 만드는 공장, 대공포 만드는 공장, 탱크 만드는 공장 등 전문공장별로 나뉘어져 있다. 한 공장에서 모든 병기를 다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판단하면 설사 계획대로 4대 핵공장이 건설됐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기계공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또한 경제성 있는 공장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당장 병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