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랄에 매몰되지 않는 윈윈의 애정소설
모랄에 매몰되지 않는 윈윈의 애정소설
  • 김동권
  • 승인 2006.09.17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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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 장편소설 『우리는 사랑했을까』 펴내

^^^▲ 소설가 김영두
ⓒ 뉴스타운 김동권^^^
소설가 김영두가 장편소설<우리는 사랑했을까>를 펴냈다.

이 소설은 모랄문제를 다룬 동서양의 그 어느 작품을 보아도 대단원의 막은 파멸로 종식되는데, 이런 공식적인 형식을 과감하게 파괴하는 모랄소설이다.

로렌스의 소설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이나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이나 김동인의 ‘감자’도 그렇고, 베크의 희곡 ‘파리의 여인’ 역시 그 형식은 거의 일치하는데 이를 거부한다.

김영두는 이 소설에서 파격적인 모랄 형태를 제시한다. 비도덕적인 사랑도 상처받지 않는 행위로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윈윈의 애정소설인 셈이다.

주인공은 소설을 쓰는 40대 초반의 여인이다. 1인칭 자전소설 형식으로 씌어졌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면 아들 학원비, 양복 단추 달기’ 등의 글자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그 여자의 현실이다.

그 여자는 낮에는 애인과 지냈고, 밤에는 가족과 지냈다. 그러나 가족과 지내면서도 뜨거웠던 연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일이 이 여인의 이중현실이다.

어느 날 애인한테서 헤어지자는 편지가 온다. 청어를 굽다가 그 편지를 받았는데, 청어에 눈물이 떨어질까 봐 울음을 참는다. 이것이 이 여자의 비밀한 상처이다.

이토록 현실과 이상이라는 상충지대에서 고민하기 마련인 이 소설의 서두는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다.

주인공에게는 세기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얼굴 부위에 있던 것과 꼭 같은 검은 점이 있다. 그로 인해 자신도 만만찮은 미모를 지닌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관상, 사주의 대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지적을 받는다.

「……그 검은 점으로 인해 부부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겠네요. 없애버리세요! 그 점이 바로 지금 연령에 해당돼요.」
주인공은 애인의 존재가 탄환처럼 검은 점으로 박혀 있었기에 그녀는 더욱 용감하게 검은 점을 제거한다.

「……이 나이에 무슨 평지풍파를 일으킬 연애를 한다고……그래도 안 들은 것만은 못해서 뽑았어요!」
남편에게는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가정을 내팽개쳐야 하는 파멸의 상황이 꿈에서도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주인공의 의지가 내심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눈가의 주름은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의 자국이다. 40대 여인을 눈물나게 하는 ‘늙음’이다. 우연히도 애인은 그 때 절교를 선언해 온 것이다.

절망 자체까지도 잊어가고 있을 때 뜻밖에도 애인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보고 싶어요!」
술이 취했을 때 보고픈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랑에 빠진 것으로 이해한다. 남자는 이쪽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여자는 단정한다.

「나두 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당신을 가슴에 묻었어요. 보고 싶을 때 혼자 꺼내 보려구요!」
주인공은 남자와의 연애 과정에서 작가 나름대로의 연애 의미들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성인 남녀 사이에선 섹스가 없이 사랑이 이뤄지진 않지. 마음보다 몸이 더 그리움을 타거든.

-술 같이 마실 남자 친구는 많아요. 그렇지만 이성으로 끌리지도 않으면서 연애하면 친구관계도 깨져요. 친구로는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거든요.

-연애할 땐 연애소설을 못 써.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를 쓰지만 소설은 사랑이 끝나야 시작되거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많지 않다. 온 세상에 다 퍼진 소문을 정작 우리만 비밀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주인공을 스웨덴 설화에서 탄생한 ‘노바디 노우즈’라는 곡을 들으며 자신의 비밀연애가 숭고한 비밀로 변이 되는 망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스웨덴의 작은 시골 마을에 소년과 소녀가 소꿉친구로 살았는데 철이 들면서 서로 사랑했고 결혼도 약속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소년은 사랑하는 소녀를 남겨둔 채 전장으로 향한다.’

‘혼자 남겨진 소녀에게 어느 날 비보가 날아든다. 소년의 전사통지서이다. 애인을 잃고 통한의 세월을 보내다가 그녀는 자신의 비통을 달래주던 소년의 절친했던 친구와 결혼한다.’

‘죽은 첫사랑을 잊고 현실에 적응할 무렵 소년이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다. 소년은 친구의 아내가 된 사랑하는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다. 바로 그날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살인 용의자로 소년이 지목돼 체포된다.’

‘소년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소녀와의 하룻밤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소년은 입을 다문다.’

‘소년이 죄를 뒤집어 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위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부른 노래가 ’노바디 노우즈‘라는 노래라며 설화는 말하고 있다.’

이 소설 ‘우리는 사랑했을까’의 주인공 역시 애인한테서도 그런 순애보가 발생하기를 요구하는 망상이 있다.

그런데 애인은 ‘나를 못 보았는지, 보고도 못본 척하는지, 카운터의 젊은 여자와 농담도 나누고, 포장지의 하트무늬를 이리저리 불빛에 비춰보다가, 구두코에 먼지나 앉아있지 않은지 세심히 살피고는 가게의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며 가슴 아파한다.

‘그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깨진 애정이 우정이라고 했던가. 누군가가 어록에 그 따위를 명언이랍시고 남겼다면 나는 실컷 비웃어 주겠다. 식은 애정을 나는 우정이라는 명분으로 치장하고는 일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사랑으로 영원하겠다!

헤어졌던 애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LA지사로 발령이 났다는 얘기였다.
찻집에서 만난 애인은 비행기 티켓을 내민다.
「함께 가요.」
「나하구요? 댁의 가족은 어떻게 하구요?」
「아내가 암으로 투병하다가……이제는 혼자가 됐어요.」
여자는 아무 준비도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남자의 일방적인 처사에 절망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당사자들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한다.

「……사랑했기에 필요했던 게 아니라 단지 필요했기에 사랑했을 뿐이라고…….」 토마스 하디는 ‘무분별하지 않은 연인은 전혀 연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무분별하게 어울리기 때문에 연인 사이가 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이 소설은 어떻게 종결되어지고 어떤 파국이 생기는가는 상관없이 하나의 새로운 ‘모랄패튼’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 된다. 때문에 ‘우리는 사랑했을까’를 두고 모랄소설인지, 연애소설인지 그 경계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게 되었다.

작가는 ‘연인들의 맹세는 신들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칼리마쿠스의 경구를 원용만 했을 뿐 자신의 의견을 감쪽같이 감춰버렸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저지르는 ‘도덕적 판단이라는 오만’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작가는 이 소설의 수법을 1인칭 형태로 적고 있다. 작가가 외부세계의 방해 없이 작중인물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환상을 창조해 내는 방법을 성공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점 또한 경이롭다.

작가 김영두는 이화여자대학을 졸업했으며 1988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1990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 동화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미투 Me Too> <오늘 골프 어때?> <아담 숲으로 가다> 등이 있다. 펴낸곳/개미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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