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화곡교회였는데 설립초기에는 단층이었고 유치원과 예배당을 공용으로 사용하다 74년께 2층으로 확충되었다. 그때 목사님을 뵈었던 분은 나를 알아보았다.필자가 유치원시절 당시 전도사였는데 나도 그 목사님을 뵙고는 전도사님이라고 불렀는데 주위에서 '목사님이셔'라고 귓속말을 했을때는 쑥쓰럽기도 했다.그러니까 유치원을 졸업하고 10년만이었다.
유치원을 나오고 맞은편에 있는 화곡초등학교을 5년간 다녔는데(5학년 2학기때 전학을 갔다) 동생의 유치원졸업식을 제외하고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매정하게도!).
나는 학교생활에는 친구한 명 사귀어보지 못했기때문에 교회에 가면 좀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멀고 먼 순 모교회보다 가까운 동네 교회로 정착한 것도 그 이유때문이다.내 짐작은 맞았고 동갑내기였던 고등부 두명이 중학교 동창이었다.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연이 된 것이었다.한 녀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처럼 생긴 친구였는데 애석하게도 교회를 옮겼다고 한다.필자도 대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옮겼는데 화곡동에서 살때까지는 이따금씩 방문(그런데 크리스마스때만)하였다.
교회에서 주는 간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다니던 화곡교회는 그리 넉넉하지 못하던 교회였는지라 그다지 풍성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학대를 다니면서 섬기게 된 방배동 교회는 너무 멀어 성탄예배를 마치면 다소 막차시간이 남아있다 해도 집까지 가는 교통편이 끊기기 때문에 부담없이 동네에서 예배를 드리고 새벽송을 돌았다.지금은 새벽송 제도가 폐지되었다.
일단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회를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종교에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기독교 신앙이 자라났다. 믿음이 잘 자란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특히 목사님의 설교가 인상깊었고 항상 노트를 꺼내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해석하여 적어 나가곤 했다.아쉬운 것은 워낙 규모가 적은 교회였고 유치원을 사용하고 있어 성경공부시간이 따로 없었다는 점이다.
10년만에 상봉(!)한 목사님과는 그해 여름 예상치못했던 인명사고로 인해 그 책임을 지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고1 여름 수련회때 그러니까 87년도였는데 충북 진천으로 수련회를 갔었고 당시 집사 한 분이 물놀이 사고로 순교를 하셨는데 그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며 교회를 떠났다.
세월이 흘러 필자는 부천으로 이사를 하고 인형극공연을 하던 중 오늘의 등촌동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화곡동 교회를 가본다. 화곡교회는 꽤 성장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건축하였지만 옛 교우들은 오간데 없고 낮선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기회가 되면 목사님과 두 동창들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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