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토끼라" 삼십육계 줄행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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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토끼라" 삼십육계 줄행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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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술맛(下)

화장실 간 황말통이 30분 정도가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한 녀석이 정탐을 하고 오겠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이 녀석도 돌아오지 않자 분위기가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위기 탈출의 방안을 모색하지 않고는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이 술자리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통 사용하는 전술이 삼십육계줄행랑이다.

허름한 빈 가방 하나를 만들어 자리에 놓고 한 놈 한 놈 빠져나가다가 몽땅 도망을 가는 것이다. 주인이 보기에는 가방이 있으니 돌아 올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극히 순진한 전법이다.

방법이 없었다. 차비를 다 털어도 술값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단 가장 달리기 잘 하는 녀석을 마지막 주자로 정하고 행동을 감행하기로 중지를 모았다. 바로 이때 어디를 갔다 왔는지 전자시계 황말통이 돌아왔다. 근 한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 온 것이다.

한숨을 돌리며 그 동안의 행적을 캐물으니 더 한심한 일이 벌어졌다. 화장실을 가던 중에 발을 잘못 디뎌 비틀거린 순간 시계가 벽에 부딪히면서 액정이 깨어져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계방을 찾아가 수리를 하려니 맡겨 놓고 가야 한다기에 그대로 차고 왔다는 이실직고였다. 고치면 새것이요. 고장난 채로 주면 아주머니께 욕 바가지로 얻어먹을 판이었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일러주는 척 하면서 탁자 위에 떨어뜨려 고장 난 것처럼 상황을 반전시킨 후 비싼 것이니 내일 찾으러 온다는 사탕발림을 해 시계를 맡긴다는 방법을 채택했다.

술자리가 파장 될 무렵 전자시계 황말통이 먼저 나가 있으라며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느낌상 전자시계를 풀며 사정을 하는 것으로 감지됐다. 그런데 채 10여 미터도 가기 전에 갑자기 문소리가 나더니 황말통의 목소리가 요동쳤다. "야 토끼라(경상도 사투리로 도망가라는 말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우리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장면처럼 죽자살자 앞으로 뛰었다(사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안 뛰어도 아주머니가 따라올 수 없었는데). 남들이 보면 마치 미친 놈 뛰어가듯이 앞만 보고 달렸다. 적어도 5분 이상은 뛴 것 같다. 골목길 두 세 군데를 돌아 멈춰 섰다.

술 마신데다 죽기 살기로 달렸으니 호흡은 하늘을 찌르듯 가슴을 압박해 왔다. 그런데 왜 뛰라고 했는지 궁금했다. 예기인즉슨 아주머니가 시계를 받아 줄 수 없다고 하기에 친구에게 돈을 걷어와서 주겠다면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삽십육계 줄행랑이 갑자기 생각나더란 것이다.

시계도 아깝고 해서 치졸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그 황말통이 요즘 들어 무척 보고 싶은 것은 아직도 그 녀석과의 술판추억이 새록새록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친구야 막걸리 마실 때는 항상 그 아주머니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마시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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