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왠만하면 나는 무뚝뚝한 면이 있다. 장난의 장자도 모르던 필자였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당시 왠만한 서민들도 (우리가정의 계층은 서민이 아니었지만) 등따시고 배부르게 살던 시절이었으니까 단군이래 최대 호황기라 불기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전화통화를 할때마다 서럽게 우시는 어머니를 볼때마다 나의 마음은 암에 걸린것보다 더 아팠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어머니의 그늘밑에서 순조롭게 성장했다는 생각을 한다면 나는 분명 죽어서 지옥갈 것이다.장남으로 여태까지 어머니께 마음편하게 해드린것이 없다는 걸 보면 그야말로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절대 효자라고 할 수 없다.인생의 중반이 되도록 변변한 직장하나 구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셔서 번 돈으로 입에 풀칠하는 천하에 불효막심한자가 또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손은 예전의 손이 아니었다.
아우토반같았던 손은 이제 울퉁불퉁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초라하게 변해버렸다.손이었다.
어머니는 학창시절 문학소녀로 명성을 날리셨다고 한다.고등학교때는 교장선생님의 자서전을 집필해줄것을 권유받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부담감때문에 거절하기 일수였으나 선생님들로부터 "우리학교에서 너처럼 글을 잘쓰는 학생이 없어"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받았다고 말씀하신걸로 기억된다.
지금은 다른여자의 남편이 되었을 코리안타임즈 대표와의 만남도 이것이 인연이 되었던 것 같다.
모델활동을 그만두고 잠시 문인협회에 가입하면서 이것으로 가정을 꾸리기 직전 어머니의 결사반대로 결혼식 전날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아픈기억도 지니고 있었다.
어차피 강산이 여러번 지난 과거이지만 유난히도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지금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나이기에 시도해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고백해보고 싶다.
“어머니. 참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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