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 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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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성란 소설집 “웨하스”출간

^^^▲ 하성란 작가^^^
작가 하성란이 네번째 소설집 “웨하스”가 출간했다. 올해로 등단한 지 꼭 십 년이 되는 이 작가는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이후 4년 만이다. 2004년 이수문학상 수상작 「강의 백일몽」을 비롯해 2002년부터 발표한 열한 편의 작품을 모았다. 일찍이 ‘마이크로 묘사’(김윤식)라는 찬상을 받으며 문체 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인 저자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주변적 현실과 일상의 깊은 환부를 원숙하고 세련된 솜씨로 짚어내는 한편 단편 형식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를 보여준다.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웨하스로 만든 집」을 비롯해 이번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과거의 특정한 시간과 맞닿아 있다.

이혼한 뒤 십 년 만에 귀국해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폐허가 된 동네의 옛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무너진 집더미에 깔린 채 처음 새 집에 이사온 날 자매들과 이층 마루를 디디며 깔깔거리던 풍경을 아스라이 떠올리고 (“웨하스로 만든 집”), 이십 년 전 자동차에 치인 개에게 팔뚝을 물리고 십 년 전엔 소매치기 남자의 팔뚝을 물었던 여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을 통해 중첩된 과거와 현재의 쓰라린 균열을 인지한다(「강의 백일몽」).

그런가 하면 한 염력자의 숟가락 구부리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주인공은 자신의 소박하고 순조로웠던 삶을 회고할 때마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그해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고(「1984」), 자전적인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는 오랜만에 모인 옛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기억의 진실성을 놓고 다툼을 벌이다 친구들과 함께 과거에 자신들이 벌였던 끔찍한 사건 현장으로 말려들어간다(「자전소설」). 뿐만 아니다. 퇴물 여가수는 십칠 년 전 봄의 기억이 담긴 한 해안가 호텔의 버려진 정원을 쓸쓸히 내려다보고(「극지(極地)호텔」), 아내는 해외 출장중 의문의 죽음을 맞은 남편의 사라진 시간 속의 행적을 좇으며(「낮과 낮」),

남자는 무언가 꼭 쥐고 있었던 것만 같은 자신의 오른손에 대한 기억을 상실한 채 우두커니 요양소에 머물고 있다(「그림자 아이」). 이와 같이 주변적 개인의 부재하거나 왜곡된 과거의 시간과 기억을 통해 현실의 찢어진 틈새에 도사린 일상적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작가의 필치에서 독자는 우리의 삶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삶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는 서글픈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이란 다르게 말하자면 착실히 거두지 못한 시간이 아니겠는가. 「웨하스로 만든 집」이 “우리들의 삶의 가벼움과 허술함, 행복의 부서지기 쉬움”과 웨하스처럼 “가볍고 적막한 무명의 삶, 가볍고 쉬 부서지는 무명의 집”(김화영)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소설집 전체에도 해당된다.

하성란 소설의 특장인 사물에 대한 정치한 묘사는 “웨하스”에서도 여전하다. 일단 시선에 포착된 것은 언어로 다 부려놓고야 말겠다는 듯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것은 “강의 백일몽”을 두고 한 평자가 말한 것처럼 “피사체의 시간과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고립감을 매우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형식화”(최윤)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문단을 나누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숨가쁘게 교차 편집한다든지(“단추” “강의 백일몽”) 등장인물의 실체나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모호한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든지(“그것은 인생” “임종” “낮과 낮” “그림자 아이”),

눈속임을 통한 반전을 시도하는(“무심결”) 등의 다양한 실험에서도 하성란 소설의 영상미는 일관되게 ‘시간과 시간 사이의 근본적 간극’을 형식화하는 데 집중된다. 중요한 사실은 그것을 그저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그려내는 게 아니라 문학적 자극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종종 묘사에 있어서도 서투른 번역문 같은 문장을 구사하는 것 또한 서술자의 시선을 보다 객관화함으로써 간극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도인 셈이다. 문자가 영상의 힘에 턱없이 밀리는 시대, 하성란의 소설이 갖고 있는 미덕 가운데 하나는 영상미를 배반하는 영상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문학이 영상 앞에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문학 고유의 작법과 독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어적으로, “웨하스”는 그것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수록작품은 “강의 백일몽”을 비롯해서 “웨하스로 만든 집” “그림자 아이” “낮과 낮” “그것은 인생” “임종” “무심결” “단추” “극지(極地)호텔” “자전소설”등이다.

하성란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루빈의 술잔”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내 영화의 주인공“ 사진산문집 ”소망, 그 아름다운 힘“(공저)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동네 간/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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