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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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거리 1만3천킬로의 비단 길, 그 장대한 여로

04. 또 하나의 파단 족

둘크 햄의 국경에서 폐샤왈로 가기 위해서는 '슐레이먼'산맥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슐레이먼 산맥은 이란평원으로부터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국경에 걸쳐 북으로 뻗어 있으며, 힌두쿠시에 맞닿는 표고 1 천5 백미터 정도의 산등성이다. 둘크 햄의 국경에서 이 산 복판을 아흔 아홉 고갯길이 동쪽으로 내 닫고 있다.

6 백 미터의 고갯마루에 서자 지금 달려 온 길이 아프카니스탄의 황야를 배경으로 선명히 떠오른다. 마치 웅대한 나선형 계단을 보는 듯하다. 저기 바라보이는 고개가 바로 카이발 고개인 것이다. 머언 옛날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랙산더의 군사가, 이윽고는 대 정복자 징기스칸의 군단이 이 고개를 넘었다.

전쟁의 역사만이 아니다. 유목민도 지났다. 서 쪽의 여행자나 동쪽의 물산物産이 여기를 넘었다. 기나 긴 실크로드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주역으로 이어져 온 고개인 셈이다. 교통의 요충지, 카이발 고개의 존재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수화물을 만재한 트럭이, 만원 버스가, 국경을 넘어 오간다. 사족이지만, 카이발 고개는 슐레이먼 산맥을 사이에 두고 두개가 있다. 하나는, 지금 서 있는 아프카니스탄 쪽, 또 하나는 폐샤왈로 내려가는 쪽이다. 경관은 후자 즉, 머얼리 인더스 평원을 내려다보는 고개 쪽이 훨씬 아름답다.

필자는 카이발 고개의 조그만 마을 랜디고달에 이르는 도로 변의 산자락에서, 검은 색 텐트를 발견했다. 몇 갠가의 텐트 주위에는 털이 긴 검정이나 다갈색의 산양이 너댓 마리씩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가난에 찌든 누더기 복장의 여인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까운 웅덩이에서 지저분한 용기容器로 물을 긷는다 든가, 머리에 산만한 봇짐을 이어 나르고 있다.

그 활발한 움직임과는 달리, 여자들의 눈은 어둡고 음산한 인상을 주었다. 낙타를 끌고 남자들이 돌아왔다.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들로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다. 낙타등에 앉은 8~9 세로 보이는 소녀의 얼굴은 비록 때가 묻었기로서니 그렇게도 예쁠 수가 없었다.

그다지 값나간다고 할 수가 없는 은제銀製목걸이, 팔찌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바보들이라구요. 우리들과는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운전기사 아그발 씨의 말에는 되도록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유목민 파단 족으로, 봄에서 가을에는 아프카니스탄의 중앙고지에서 보내고, 가을에서 봄 까지는 파키스탄의 인더스 평원으로 이동한다. 그 수는 15 만명에 이른다는데, 슐레이먼 산맥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다만 가난한 유목민에 지나지 않는 그들이지만, 옛 날에는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대상隊商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낙타를 몰고 있는 흰 수염 노인의 얼굴이, 수 백년을 살아 온 실크로드의 증인인양 다가섰다.

랜디고달

다시금 카이발 고개를 나서자 이내 랜디고달 촌이었다. 흙으로 바른 집들이 둘러 선 광장에 트럭,버스가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조그만 터미널 같은 분위기다.

'바자(시장)를 살펴보시지 않겠습니까? '

지프 차 기사들이 자꾸만 권한다. 바자는 지하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절벽의경사면에 만들어져, 그 위에 흙 지붕이 덮여있기 때문에 위에서 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들어서자 놀랐다. 넓기도 하거니와 상점 수도 많고 진열된 물건의 종류도 풍부하였다. 미국제 비누, 샴푸, 담배, 중국제 유리, 도기陶器, 접는 우산, 유럽 제 스카프, 향수, 화장품, 한국제 지갑, 양말, 일본제의 보온 병, 시계, 태엽을 감게 만든 장난감, 슈퍼마켓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이 갖가지 물건이 수두룩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잘 살펴보세요. 이 안쪽에 있는 것은 전부 한국 제 입니다.'

확실히 옷감 뒤에 한국 섬유회사의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한국 제라 하면 고급품의 대명사인 모양이다. 바자의 모퉁이에는 전자상가도 있다. 20 평정도의 창고에 한국 제 스테레오, 전축 TV, 대형냉장고, 라디오 등이 첩 첩으로 쌓여 있었다.

상점 주인은 한국제의 라디오 카세트로 파키스판과 말레-시아의 하키 시합 중계방송을 듣고 있었다. '후날 와리' 씨 40세, 9 인 가족의 가장이다. 상점을 이곳 근처 '바라'라는 곳에 두 채를 가지고 있으며, 월 6 백만 루피, 한국 돈으로 5억원 정도의 매상고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테레오 전축이 1천 8 백루피(15만원).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가면 같은 물건이 3 언 루피(30만원)나 한다. 대단히 싸다. 실은 여기에 진열되 있는 것은 대부분 밀수품이다. '와리'씨는 3 대의 트럭으로 월 2~3회 카블까지 나가 물품을 사들여 온다. 이들 물건은 한차례 파키스탄의 카라치에 양육揚陸되어, 육로로 카불에 운반된 것들이다.

결국 '와리'씨는, 아프카니스탄에 날라 온 물건을 역수입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 물건은 카라치에서는 카불행 물건으로서 관세를 물지 않으며, 카불에서는 파단족의 특권으로 체크를 받지 않는다. 값싼 이면에는 이런 이유가 숨어 있었다.

'한국 차는 좋습니다. 저는 최신형 새 차를 두대나 가지고 있습니다만, 성능이 매우 훌륭합니다.' 실크로드를 살아가는 상술에 능한 사나이의 웃음 띈 얼굴이었다. 이 바자가 있는 훨씬 아랫 쪽은 색 다른 냄새를 풍기는 정육점 거리였다. 가죽을 벗긴 동글납작한 양고기가 천정天井에서 내려뜨려져 있고, 통로에는 양 머리와 족발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

잠깐 이 이상한 분위기에 물끄러미 서 있는데 안내인 '아그발'이 싱글벌글 하며 가까이 온다.

'아~, 생각지도 않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 쪽 길목에서 앵속櫻粟을 팔고 있더군요. 진짭니다. 진짜!'

파단 족들은 터번 깊숙이 대마大麻를 넣고 다니며 매매한다든가, 앵속들을 담배에 넣어 말아 피운다고 들었다. 얼른 쫓아나가 보았더니 과연 싱싱한 앵속이 조그만 유리 케이스에 담겨 져 팔리고 있는 것이었다.

'앗!' 유리 케이스 속을 들여다보던 '아그 발'이 어처구니없는 듯 소리 질렀다. 앞서 앵속을 찍은 사례로 준 한국 제 스푼이 거기에 진열되어 팔리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파단 족의 자랑

어떠한 분쟁이 발생하면 근대 국가에서는 법률에 비추어 재판소가 조정 혹은 판정한다. 그러나 파단 족에는 이른바 법률이 없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패슈둔위레'라 부르는 규칙 뿐이다. 파단 족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부심과 용기다. 이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무엇이라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에서, 파단 족의 유명한 복수정신이 태어났으며 또한 반대로 철저한 향응정신이 자라났다.

자기에 대한 모욕, 예컨대 본인, 가족에 대한 중상中傷에 대해서는 상대편에게 부끄러움을 줄 때까지 보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멍청이'라고 여겨진다. 당연히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이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한편이 사망할 때까지, 아니- 남아있는 가족 전원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뉴욕에서 일어난 파키스탄인 살인사건의 동기가. 수세대 전에 이 산 속에서 연적戀敵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구할라치면, 그가 비록 적이라 하더라도 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의 요구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도량이 결정되고 때로는 부족 중에서의 지위까지를 규정한다.

향응정도는 주인의 재력, 즉 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모든 손님에 대하여, 호화로운 식사와 주거를 제공하는 습관은 이러한 스스로의 자랑을 지키기 위한 정신으로부터 우러난 것이다. 파단 족의 '규칙'이란 바로 이 자부심과 용기를 지킨다는 데 있다. 이러한 규칙은 불문율로서 파단 족의 정신에 면면히 용해돼 내려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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