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의 가정 환경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비 주당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간섭이 많은 편이고, 잘못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모르는 척 은근 슬쩍 넘어 갈 수 있는 것도 사사건건 간섭이다. 진짜 눈밖에 벗어나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용서나 화해도 없이 곧바로 보따리를 싸야한다는 것이다.
가끔 술판에서 사람 죽일 일도 한 두잔 술 힘만 빌리면 금방 용서가 되는 그런 광경이 그에게는 영화 속 이야기 같이만 들린다고 한다.
남들처럼 어두컴컴한 호프집 한쪽 구석에 부부가 마주 않아 시원한 호프 한잔 놓고 속에 없는 얘기라도 듣고 싶고, 술 한잔하고 들어와 말도 안 되는 자랑을 늘어놓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마누라는 항상 긴장 속에 산다고 말한다. 어디 갔다가도 땡 하면 집에 들어와 밥을 해 놓고 기다려야 하며, 매사 책잡히지 않으려고 행동 또한 조심 조심이다.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어도 마누라 책임이요, TV위에 먼지가 쌓여도 자신과는 무관하듯 말을 내뱉는다.
말을 듣고 보니 참 한심하기도 하고, 그의 마누라가 주당 남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부부간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으면 자연히 잔소리가 늘어나게 마련인가 보다.
그런데 주당들이야 어디 그런가. 너무 무관심해서 욕을 들어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술 마시는 것도 꼴 보기 싫은데 거기에다 귀가 시간까지 늦으니 열 받을 수밖에. 참 살다보니 별 것을 다 부러워하는 여자들이 있구나 생각하니 그래도 주당이 되기를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예나 지금이나 술을 사랑하고 예찬하지 않은 영웅호걸, 시인, 묵객이 어디 있겠는가. 당대에 내로라 하는 대인들의 대부분은 말술들이었다.
답답한 나머지 나는 친구 마누라에게 두보의 음중팔선가 중에 이백을 두고 노래한 주중선(酒中仙)을 친필로 써 주고 방에 붙여 놓으라고 했다.
'李白一斗時百篇(이백일두시백편)/長安市上酒家眠(장안시상주가면)/天者呼來不上船(천자호래불상선)/自靜臣是酒中仙(자정신시주중선).
이는 이태백은 한말 술에 시 백 편을 지으며/장안거리 술집에서 취해 잔다/ 임금이 불러도 배탈 생각 않고/스스로 자기는 술 취한 신선이라 자처한다.'
그런데 일주일 후 전화가 걸려 왔는데 친구 마누라가 술을 마시기로 했다며, 소주 한잔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주당의 예의 때문이 아니라 부적절한 관계가 될 까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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