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금반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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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금반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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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배우 故최은희씨가 나오는 영화 장면 ⓒ뉴스타운

나는 기이한 인연으로 어느 독실한 여성 불교인이 살아생전 거의 손가락에 낀 염력(念力)이 각인된 18k 금반지를 전해받는 인연이 있어 받으며, 금반지 주인의 고(故) 한(韓)씨 부인의 사연을 들었다. “불사에 쓰라”는 금반지의 주인의 뜻에 따라 나는 생전 처음 부처님 전에 금반지를 올리며, 그녀의 왕생극락을 기원했다. 따라서 오늘의 이야기는 금반지를 제목으로 하고, 모정(母情)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강원도 원주시 어느 시골에 홀로 살면서 깊어가는 지병을 치료하고 있다가 사람이 그리우면, 걸망을 매고 서울행을 한다. 나는 서울에 가면, 첫째, 헌책방을 순례하듯 하다가 둘째, 낙원악기상가 옆에 모 호텔의 1층에 자리한 공식 명칭 ‘커피 빈’ 별명 ‘콩다방’을 어김없이 방문하여 사계절 시원한 얼음이 있는 아이스 커피를 마시곤 한다. 나는 그곳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때가 되면 동서울을 통해 원주로 돌아간다.

2018년 9월 2일 오후 1시경 커피 빈에 있었다. 서울의 아스팔트에서 행동하는 보수 애국여성인 윤(尹)여사와 그의 중학동창인 조(趙)여사를 만났다. 동갑인 그녀들은 내년이 칠순의 나이였다. 조여사는 서울에서 교육대학을 졸업히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연금을 받는 퇴직한 전직 교사였다. 차를 마시면서 조여사는 97세로 영면한 시어머니의 뜻이라며, “금반지를 부처님게 바칩니다”며 내게 전해주었다. 반지의 주인인 시어머니의 성씨는 한(韓)씨였다.

한씨 처녀는 서울의 제법 부유한 집의 큰 딸이었다. 키가 후리후리한 키에 용모가 뛰어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처녀로 주위에 칭찬을 받았다. 한씨 처녀는 여고를 나온 후 인연있는 친정과 시가인 양가(兩家) 어른의 합의하에 일찍 결혼 하였다. 신랑은 명문대를 나온 서울 지방법원 공무원이었다. 한씨와 신랑은 주위에서 천생연분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주위에서는 연일 행운이 이어지는 전망을 하게 되는 부부였다.

어느날 남편은 남자 하나를 집으로 데려와 아내에게 특별히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겐 둘도 없는 절친이라오. 우리는 생사를 함께하는 믿음이 있지.” 하고 당시 정중히 인사를 하는 K를 소개했다. 남편은 K는 초, 중, 고교 동창이라고 소개했다.

예쁘고 착하고 인생에 행운만 있을 것같은 한씨 부인에게 경악스러운 첫 번째, 위기의 반전(反轉)이 칮아왔다.

한국의 국운이 한씨 부부의 개인 운명을 파탄나게 한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수출로 동북아를 장악하려는 중-러가 지원하는 김일성의 남침전쟁인 6,25 전쟁이 터진 것이다. 남편은 미처 이승만 대통령이 피난한 대전으로 피난하지 못하고, 당시 서울에 머뭇거리다가 서울을 장악한 인민군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다가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 때, 북으로 납치되고 말았다. “미아리 눈물고개”의 노래속의 주인공같았다.

남편이 남치 당할 때, 한씨는 어린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다. 졸지에 남편을 잃는 불행에 처한 한씨는 어린 아들을 부여안고 기구한 운명을 탓하며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한씨는 통곡하며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언제까지 기다리겠다” 외치고, “아들을 휼륭히 키우겠다”고 맹세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느 날, 불쑥 K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전쟁 후에 사업을 시작하여 제법 준 재벌이 되었노라고 자랑했다. K는 한씨의 남편과의 돈독한 우정을 회고하고 강조하면서, 절친의 가족을 도와 부자로 만들어 주어야 “친구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K는 자신이 권하는 투자처에 “투자를 하면 금방 부자가 될 수 있디”고 간절히 권했다. 한씨는 남편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말을 떠올리며 철석같이 믿었다. 마침내 한씨는 K가 원하는 대로 남편이 남긴 가신을 거의 정리하여 큰 돈을 마련하여 K에게 투자를 하였다. K는 친구와의 우정을 거듭거듭 강조하면서 절친의 부인이 내준 투자한 돈보따리를 들고 사라졌다. 그 후, 수개월 K는 소식이 끊기고 전화번호도 바뀌었다. 헌씨는 뒤늦게 사기당한 것을 깨닫고 미친듯이 K를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훗날 남편이 어느 날, 불의에 죽거나 불행하게 되면, 일부 남편의 친구는 사기치려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1년이 지난 그해 봄날,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 어느 여자에게 수작을 걸고 있는 K를 우연히 마주쳤다. “제발 돈을 돌려 주세요” 울면서 애걸하는 한씨에게 K는 “돈을 돌려주겠다” 속이고, “돈을 두고 온 곳에 가자”며 K는 서울의 어느 여관으로 한씨부인을 강제로 끌고 가서는 돈을 갚기는 커녕 강제로 구타하면서 성폭행을 했다. K는 성폭행을 한 후 사라지고 한씨는 임신을 하고 말았다. 절친으로 믿었던 남편 친구의 경악스러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임신한 한씨는 비통한 마음으로 산부인과 병원에 임신중절을 하려 종로거리를 홀로 걷다가 우연히 조계사를 찾았다. 법당에서 울려 나오는 법문을 들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인연에 대한 설법”이 가슴을 쳤다. “뱃속의 아기가 무슨 죄가 있는가?” 그녀는 조계사 법당의 부처님께 울면서 예배를 하고, “아기를 죽이지 않고 휼륭히 키우겠다” 맹세했다. 그 날 한씨는 조계사 입구 상점에서 절만자(字)의 금반지를 사서 손가락에 끼면서 “불교를 신앙하는 여성불자가 되겠다” 맹세했다. 조계사 부처님께 자신의 가족에 가호의 자비를 기도하면서 숨죽여 울었다.

한씨 부인은 두 번째 아들을 낳았다. 모두가 전생에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했다. 그녀의 큰 아들은 재산을 사기 당하고, 아버지 친구의 아들을 얻은 어머니에 대하여 못마땅해했다. 노골적으로 어머니를 비난했다. 시가에서도, 친정에서도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한씨는 아랑곳 하지 않고 부처님께 가호의 기도를 하며 두 아들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억척같이 노동했다.

마침내 한씨의 큰 아들은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명문대에 갈수 있었지만, 가세가 어려워 서울 교육대학에 진학하고, 훗날, 같은 교육자의 길을 걷는 착하고 총명한 아내 조여사를 만난 것이다. 어머니 한씨의 기도와 희망의 노동으로 큰 아들은 학교장을 역임하고 퇴직했고, 둘째 아들은 어머니의 강력한 독려속에 대학을 나오고 사업에 성공했다. 한씨 부인은 한국에 장한 어머니였다.

억척같이 노동으로 두 아들을 휼륭히 키운 대중의 기립박수를 받을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 한씨는 옛말에 “시작이 있으면 꿑이 있듯이“ 2014년 9월 어느 날, , 97세의 나이로 자신의 방에서 침대에 정좌하여 엄주를 돌리며 부처님께 기도하다가 세연을 다하는 ”호흡을 끊어 버렸다“ 나는 조여사로부터 시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듣고 ”일평생 청정히 수행한 고승의 열반과 같다“고 상찬해 마지 않았다.

조여사는 “시어머니의 뜻이라며 불사에 쓰라”는 말과 함께 금반지를 내게 내주었다. 나는 내가 모시고 기도하는 부처님께 전에 촛불을 켜고 향불을 태우며 기이한인연의 금반지를 바치면서 부처님께 “한씨 부인의 영혼이 반드시 아미타(無量壽) 부처님인 상주설법 허신다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소서”의 기도와 세상에 남긴 두 아들과 가족에 행운이 있기를 기도했다.

나는 그날 밤 기도를 마치고 한씨 여성불자의 생월생시를 통해 그녀의 타고난 사주를 감정해보았다. 세 번째, 경악할 반전이 있었다.

부자집 큰 딸로 태어나고 좋은 신랑을 맞은 한씨 부인의 타고 난 숙명이 남편운인 관복(官福)이 없었다. 전생에 지은 숙명(宿命)으로 남편과 백년해로할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산정(山頂)에 지나가는 구름과 같은 관복이었다. 오직 자식인 식신(食神)이 파손되지 않고 제법 왕성할 뿐이었다. 한씨 부인의 고난과 슬픔은 타고난 숙명이었던 것이다. ‘빅톨 위고’의 명작소설 “노틀담의 꼽추”에서 주장하는 숙명이었다. 나는 탄식했다. “ 아아, 모두 숙명의 장난이었던 것인가? 그 숙명을 한씨 부인이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한국에 부지기수의 남녀들이 애간장을 끓이며 인생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도 결국은 숙명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 한씨 부인의 마음의 고통을 자식들이 이해를 할까? 어찌 한씨 부인과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자식을 위해 자직이 잘되는 희망으로 억척같이 노동하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하나뿐일까? 나는 그녀들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한씨 부인의 금반지를 산사의 보탑(寶塔)에 넣어 만세에 전하고, 휼륭하고 장한 어머니의 표상으로 세상에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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