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갑자기 조금 전 나 몰라 라고 던졌던 옷을 주섬주섬 줍더니 막무가내로 달렸다. 그리고는 20여 미터 떨어진 나무 밑에서 옷을 대충 걸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왜 그랬을까, 호기심이 발동한 친구 한 녀석이 경찰에게 물었다.
"저 아주머니 왜 파출소 앞에서 홀라당 벗고 난리를 피우는 것입니까."
경찰은 피식 웃더니 "말씀 맙쇼, 저 아주머니는 술만 마시면 누구에게 맞았다며 파출소에 찾아와서 횡설수설 하다가 밖으로 내보내면 갑자기 옷을 벗고 난리법석을 피운답니다. 어찌 보면 불쌍하지요. 술만 마시면 정신이 이상해지나 봐요."
참으로 안됐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마지막 올 누드 장면을 못 본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일행은 2차를 한답시고 근처 막창집에 둥지를 털었다. 막창이 익어가고 소주 한잔씩을 따르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아까 그 아줌마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옆에 앉아서는 소주 한잔만 달라는 것이었다.
술이 어느 정도 깼는지 아까 와는 너무도 다른 사람 같았다. 경찰의 이야기도 들었겠다, 또 파출소 앞에서 하는 행동도 봤겠다, 소주 한잔을 주면 또 난리를 피울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라고 꼬득였다. 그러나 아주머니 엉덩이는 떨어지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잔 정도야 괜찮다고 생각한 친구녀석이 한잔을 건네고는 잘 익은 막창 한 조각을 안주하라고 건냈다.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한잔이 아니라 세 잔을 주었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지 노래 소리를 흥얼흥얼 그렸다.
아 무슨 기구한 사연이 있구나 하고 안스러워 하는 순간 갑자기 아주머니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사연인즉 꽤나 큰 사업을 하던 남편이 IMF때 부도를 내고 회사가 쓰러진 후부터 때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막상 술이 과하면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을 때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옷을 벗는 이상한 버릇까지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극히 정상적인 상태라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과거와 술을 마시고 난 후 행하는 행동까지 아주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도 안타까운 IMF의 피해자였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성의 인생이 저렇게 망조가 드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측은할 수밖에.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기우였다. 술은 반드시 술값을 한다는 철학을 잠시 잊어버린 것이다.
넉잔 째 소주를 마신 후 정확히 5초 후쯤 아주머니의 동공이 풀리더니 갑자기 옆에 앉은 친구녀석을 붙잡고 "왜 허구한날 나를 때리는 거야."라며 소리를 지르는데 손님들의 시선이 일시에 우리 쪽으로 쫙 빨려 들어왔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더 이상 있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아 다 먹지도 못한 술값을 치르고 일단 아주머니를 밖으로 떠밀고 나왔는데 그냥 땅 바닥에 풀썩 주저 않는 것이 아닌가.
모른 척 하고 갔다가는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 줄 모른다는 생각에 모셔다 주기로 하고 교대로 업고 집을 찾아 나섰다. 솔직히 집 찾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생쇼 한번 보려다가 코 낀 날이었다. 아침 신문 운세가 동쪽에서 여자 때문에 큰 코 다친다고 하더니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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