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그 이상의 정치개혁은 없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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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그 이상의 정치개혁은 없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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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가들은 민주주의의 파워부터 배워야 산다

^^^▲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근자에 이르러 정치판세가 또 한번의 요동치기로 들끓고 있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신주 모시듯 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그것이 아니면 죽기라도 하는 것인 양 호들갑 떨기에 뒤질세라 하고 있다. 실로 가관이다. 정당정치의 요체가 정권잡기(창출)에 있다 함은 삼척동자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마치 '개혁' 깃발이 그것의 텃밭임을 강변하는 풍조에는 신물이 나다 못해 눈살이 찌푸려 지기까지 한다.

제 생각에 맞는 코드 맞추기를 중심 삼는 것이야 결코 나쁠 것이 없을 것이다. 주는 것이 없이도 미운 사람과는 얼굴도 보기가 싫은 것이 상정인 만큼, 그것이 정치세계라고 해서 통용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라서다. 그래서 목소리 크고 힘깨나 쓰는 사람이 앞장서면 눈치 불구하고 보따리 싸들고 줄서기 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에 다름 아니리라. 이전투구를 구경하는 국민의 눈을 즐겁게 해 주면 그것으로 본령을 지킴에 차질이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 그래도 내노라 하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독일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기본적인 정당정치 속에서 생존경쟁의 한 장르를 세우기까지 그들이 벌인 '개혁'의 단막극은 수단이고 방법이었지 그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정당의 이름이 아니었다. 까딱하면 간판을 내리고 판세를 새로 짜는 소위 보스정치에 길들여져 온 우리네 근성과는 상이한 것이었다. 선량이랍시고 보따리 싸들고 의회정치사를 연구한다며 북치고 장구 맨 채 다녀 온 곳, 바로 그곳의 예에 다름 아니다.

언제부터 입씨름 벌려 온 풀뿌리 민주주의를 한다며, 줄서기 돈 대기에 눈 도장 찍기를 반복해 온 정당이며, 붕당이며, 사당이며, 무슨 동파의 시대를 가슴에 안고 하는 일이라니, 그래서 '개혁'은 줄서기 말고 무엇이 있는가? 그 속에 '민주'를 생각하고 '이념'을 천착한 흔적을 우리는 구경한 적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대들을 뽑아 불가피 동 시대를 살고는 있으나 단순한 수직적 사고의 코드가 아니라 수평적 인식의 업그레이드된 코드의 소유자들이기를 바라오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개혁改革'이란, [1] 새롭게 뜯어고침. 혁개革改 [2] Reform 합법적 절차를 밟아 정치상, 사회상의 묵은 체제를 고치고 새 체제로 바꿈을 이른다(이희승 국어대사전 128쪽 참조).

이 용어 속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 하나가 있다. '기본'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존재하는 본체를 전제하고 그 안에서의 '개혁'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이고 어느 조직이고를 막론하고 그것의 존재근거인 '이름'을 들먹이지 않고 있다는 이 사실은 그 이름 속에서의 '개혁'을 상징적으로 메시지화 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혁이란 이름을 부리려거든 조직원은 그가 속하고 가진 불변의 '이름'이란 성역을 내 걸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뜻의 함축이란 말에 다름 아니다. 이름을 고쳐가며 국민을 현혹하고자 했던 그 작태야 말로 왕년의 정치풍토에서 싹튼, 절로 사라져 가는 개혁대상 1 호인 낡고 썩은 구태인 것을 어찌, 누가 모른다 하겠는가? 그것을 호령했던 시대에 빌 붙어 생존의 나팔 수로 자임해 온 정치패거리들이 있어 여전히 득세의 양지에서 호시탐탐탐 정권의 단맛을 그리는 향수병을 달래기라니.

이거야 말로 지나가던 소가 냉소를 보낼 일에 진배 없다. 가가대소의 비아냥 공소空笑이긴 할 지 몰라도 '민주천성 民主天聲'의 가치는 아니란 말이다. 언제 만든 정당인가? 1 백년 2 백년의 전통 속에서 끊임없이 출발하고 바꾸고 멈췄다 다시 출발해 온 서구의 민주주의 정치를 현하 한국의 정치가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보따리 싸들고 시찰이니, 견학이니 구경해 온 전력이 있지 아니한가?

본 것은 무엇이며, 느낀 것은 무엇인가? 입만 열면 내 새우던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치며 국회의원들은 비서관 두고 비서두고 떵떵기리는 치외법권을 누리면서, 지방의회는 제대로 된 도우미 한 분 없이공무원의 손에 쥐어놓고 조례하나 제대로 만들 수 없는 반푼이 '민주'를 생성시킨 채, 나몰라라 하는 것이 어찌 정도正道 민주주의 정치며, 그것을 논할 자격을 지녔다고 언감생심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민주'의 본령을 말하려거든, 오늘 날 정치인이 그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정치가'의 금도를 공부 좀 많이 하고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제법 시정의 참새들에게서 훤효되고 인정되는 소리소문임을 알 때가 되지는 않았단 말인가? 아니다. 표 구걸이라는 절대적 존재가치를 알려면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정치가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단상에서 춤추고 노래하라고 권고하고 싶은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어떻다, 손자가 무엇이라 했다는 수단과 방법의 세계에서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세계와 함께 가는 천하의 민주주의 국가다.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행세나 '고려공사 3 일'의 하다 만 생색에 영일이 없을 것이 아니라 보다 장구한 집에서 태평세월을 구가할 집을 어여쁘게 짓는 장인 '가家'의 모습을 보여달라.

근자의 정치적 짝짓기 구경꺼리가 그래도 옛날 보다는 훨씬 재미있어 보인다는 국민이 대다수 이게 하라. 주인에게 봉사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기에 좋구나 ! 무르팍을 탁 치게 하라. 얼씨구 춤추게 하라!

이제 그것을 위해 박 기자가 이제 하나의 장전章典을 드날린다.

'민주. 그 이상의 정치개혁은 없다'라는 박 기자의 이 메시지 열 마디 어디 들어보라! '민주 그 이상의 정치개혁'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림의 떡'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파워란 무엇인가?' 읽고 또 읽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가슴에 불이 당겨질 것이다. 행간의 철리를 누구라 모른다 하리. 누구라 아니라 하리.

민주, 그 이상의 정치개혁은 없다[1]

1. 서론

(1) 민주주의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것이 강력한 까닭은, 민주주의가 각자 자신의 통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또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자치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을 터득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믿으며 이러한 소망을 인정한다는 것이, 현대인의 가장 깊고도 가장 넓은 포부를 그대로 말해 준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분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신성함과 인류동포애를 전제로 하는 종교에서 부터 그의 많은 힘을 얻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이념입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각 개인에 대한 책임이 어느정도 전체의 책임과 관련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이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도덕적인 의무를 책임지는 동시에 그런 의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이념입니다.

오늘날의 세계각국이 당면한 거대하고도 '절박한 문제(Pressing problem)'들을 단호하고 용감하게 처리하는데는, 앞으로 닥아 올 여러 년대에 걸쳐, 이 도덕적인 의무로 해서 생기는 모든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지닌 항구적인 힘의 참다운 근원 ~ 즉,민주국가 시민의 자주성과 성실성 ~ 을 희생하지 않고서 그러한 일을 해 내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항상, 가능한 한, 오래동안 정녕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지난 3 세기 동안의 역사는 주로 민주주의를 추진한 역삽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더욱 더 커가는 힘을 가지고 전 세계에 퍼졌으며, 누구든지 일단 민주주의에 젖어 든 것을 느낀 사람이라면 그 후로 결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가장한 민주주의가 참다운 민주주의인 것처럼 잘못 생각된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민주주의의 이상의 힘은 참으로 크기 때문에, 심지어 가장 호전적인 민주주의의 원수들 까지도 자신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자기들이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용어를 써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이렇듯 불안하고 떠들썩한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민주주의 이상의 매력을 세계 도처에서 느끼게 된 사실에 있습니다. 오늘 날 세계를 내내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즉, 민주주의라는 꿈입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마음 속으로 동경해 온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민주주의를 실지로 달성해 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적인 사회제도는, 일반 남녀에게 스스로 자신을 가르치고 좋은 생활을 즐기고,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인류문명이라는 큰 사업에 참가할 수 있는, 일찌기 가져 본 일이 없던 기회를 주면서 착실하게 확장돼 왔습니다.

현대사회에 있어 가장 오랫동안 형태상 변화하지 않고 존속해 온 정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정부들입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도 경험했으며, 그 역사에는 뚜렷한 성과와 아울러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민주국가들은, 그 속에 정신적인 장래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가 제 구실을 하는데 필요한 교육과 습관과 용기를 국민들이 가진다면 다른 사회제도 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입증해 왔습니다.

(2) 민주주의의 이상

모든 사회는 일상 그 사회를 둘러 싸고 있는 도덕적인 분위기를 자연히 나타내게 마련입니다.
각 사회를 구성하는 남녀들의 태도가 어떻다는 것은, 그들의 거동에,부모와 자녀와 피차 남에 대한 행동에, 그들이 다니는 학교와 교회와 공중이 모이는 광장의 분위기에, 그들의 놀이와 농담등에 나타 날 것입니다.

한 사회의 성원들이 삶에 대해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무엇이 옳고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느냐하는 것은 그들이 분명히 표시하는 말 속에 드러 날 뿐만 아니라 굳이 말을 하지 않는 일에도 나타 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진립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에게 많은 자유를 주고, 많은 일을 개인의 판단력과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다른 거의 모든 정부형태 보다도 더 말로써 표시되지 않은 분위기와 시민 대다수가 일정한 도덕원칙을 자진해서 준수하는 일에 의존합니다.

민주주의 정체는 이러한 분위기와 도덕율이 박약하거나 아직 발전도상에 있는 사회에 존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정치가 상당히 안전하게 실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라면 어디든지, 국민간에 일정한 태도가 속속드리 믈들어 있고, 일정한 이상을 사람들이 널리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적인 도덕관의 특색을 이루는 근본적인 이상이란 무엇입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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