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또한 마찬가지로 당시 학교에 갈 생강을 하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무엇때문에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학교생활이 마냥 즐거웠던 이유는 그만큼 학교수업이 좋아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와 말벗이 되어준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들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아버지가 보던 신문을 이따금씩 펼쳐보기도 했기에 항상 시사적이 이야기로 선생님들의 입을 벌기게도 했다.훌륭한 시사평론가가 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뇌리의 남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소풍때도 또래 학생들보다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 늘 동참하곤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세대차이를 느꼈을 만도 했을터인데 왠지 선생님들과 말이 통했는지라 선생님들과 어울리는 것이 쑥스럽지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내 마음 한 구석은 허전했다.도래 친구들가 어울리고픈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다.그보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점심시간때였다.
중학생때까지는 그런데로 가정경제가 00하던 시절이어서 당시 인기있던 도시락 하나에 야채쏘세지가 단골메뉴였다.치즈쏘세지도 있었는데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시대였는지라 어머니께서 쏘세지라면 사죽을 못쓰던 나에게 쏘세지속에 완두콩,당근등이 함유된 쏘세지를 반찬으로 담아주셨다.어떻게 보면 나의 논조가 고정 칼럼니스트셨던 김모씨의 백발00라는 코너와 흡사한 것으로 판단한다.(최근에는 책으로도 내셨다드만...) 따라서 임의로 출간한 칼럼집 <동북공정과 신냉전 시대>가 망하면 검토할 예정이다.
내가 싸온 도시락반찬을 빼앗기는 사례가 다반사여서 어느날은 책상밑에 숨겼지만 짝궁녀석이 눈치채고 내 도시락반찬을 꺼내는 것이었다.어떤날은 맛이 환상적인(그 반대로 생각하길)고추를 내 입속에 골인시키기도 했다.한 입 깨물어보았지만 그 즉시 눈물과 함께 바닥에 토해버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벌건 채소류는 냄새도 맡지않은 체질이었는데다 주로 동원참치, 오양맛살,야채쏘세지,덴뿌라 등 육류나 햄을 즐겨먹었지만 지금은 반 거지가 된 상황이어서 고기는 구경도 하지 못하는 형편으로 전환되었다.
당시 필자의 집안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아니 전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는지라 그시대가 그립다.
세상이 뭐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동방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라의 속담처럼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기복주의에 세뇌되어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고 느껴졌다.뭘 믿고 인생 그따위로 사는지 말이다.
그래서인지 어느날부터는 밥도 먹기 싫어졌다. 억지로라도 넘기려 해도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달려들어 단백질과 칼로리가 풍부한 기름진 음식물을 자신의 입속에 처박아 버릴것 같은 우려속에 항상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때문이다. 내 체격이 이모양 이꼴인 것도 다 그 이유였다.
어느날은 내가 너무 고급반찬만 싸와서 친구들이 탐을 내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들어 며칠동안은 김치만 싸달라고 말씀드렸다.고추장에 매콤할 정도만큼만 버무린 깍두기는 그런데로 먹을만 했다.
아마도 눈물젖은 빵이 아닌 눈물젖은 깍두기를 먹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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