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스크롤 이동 상태바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ike the sun; The prayer of flowers of flame’

인사동에 위치한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는 2018. 3. 28~ 4. 2까지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이 열렸다.

▲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뉴스타운

꽃을 위한 제의(祭儀)
심현섭, 미술평론

손유선은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한 상태에 있었다. 그에게 세상은 거기에 속하지 않은 채 무의식으로 응시하는 창밖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손유선은 창 너머의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한다. 아니, 손짓하는 건 창밖으로 보이는 꽃이었는지 모른다. 꽃을 매개로 소원했던 세상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어느 찰나, 웅크렸던 잎을 슬며시 여는 꽃망울처럼 그렇게 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었다.

손유선은 창에 비친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자기 내면이었다. 속절없이 흘러간 젊은 시절의 억압에 대한 회한이 섞인 분출이었으며, 자유를 향한 풀어헤침이었다(작가노트). 이러한 풀어헤침은 그의 드로잉과 유화에서 수없이 반복하는 실타래 같은 선과 색의 중첩에서 확연하다. 거기에는 묶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천연한 몸부림이 있을지언정 통찰이나 구도와 같은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손유선의 그림은 인간 내면의 갈등을 원초적으로 표출한 엥포르멜의 저항의 행위에 가깝다.

▲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뉴스타운

그는 2015년 이후 자신이 그린 꽃에 빠짐없이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체계가 아닌 기호로서 하나의 꽃에 각기 다른 표지를 적용한다. 결과적으로 같은 이름의 꽃이 하나도 없다. 꽃이 그의 내면의 표출이 맞는다면 그만큼 그의 내면은 중층적이고 다면적이다.

억압이나 자유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언어체계로는 그가 가진 내면의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다. 각기 다른 형태의 기호만이 다층적인 손유선의 감정을 감별할 수 있다. 언어 대신 기호로 꽃을 구분하듯 그의 그림에서 꽃은 형태 대신 색으로 추상화한다.

▲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뉴스타운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자신이 창 너머로 본, 아니 자신에게 꽃을 통해 말을 걸어온 세상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한동안 묶여있던 자기내면의 환영으로 일정한 형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정형적인 감정의 세계이다. 안정 대신 불안정, 고정 대신 비고정, 정박 대신 항해하는 손유선의 감정은 무계획한 붓질, 요동치는 꽃의 이미지, 현란한 색, 혼란의 두려움을 가두려는 기호의 표지 등으로 캔버스에 밀착한다.

언젠가부터(내 기억으로는 2017년 가을이다) 손유선은 사각 평면 안에서 혼합된 이미지와 기호이미지를 입체로 독립시켜 밖으로 분리해낸다. 꽃 이미지를 기호모양으로 재단해서 입체적으로 제작하고 평면 이미지와 병치하여 상호간 관계 맺기를 실행한다.

▲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뉴스타운

이는 자기내면에 엉켜있는 꽃들의 이미지가 분리하기 시작했음을 지시하는 동시에, 억압으로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이 점점 침전하고 기쁨과 경배의 기억들이 새로운 층을 이루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자기 내면에서 과거와 현재가 균형을 이루면서 손유선의 그림은 분화한다. 캔버스의 분화는 정돈과 혼돈, 화와 불화 등 갈등의 요소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려했던 단선적 사고에서 양자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유하고 그 다양함을 수용하려는 긍정적인 태도로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손유선의 꽃과 표지의 수는 양적으로 늘어나고, <사루비아>전(2007)에 이르러서는 생성과 소멸과 같은 삶의 양면성과 자연의 이치 같은 보편성에 접근한다(작가노트).

이번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에서 손유선은 타인을 돌아본다. 칩거에 가까운 생활 속에서 빠져나온 지 5년만의 일이다. 억압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획득하려했던 뜨거운 자신의 갈망이 내용과 형식만 다를 뿐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불상 앞에서 흔들리는 수많은 촛불을 보고 깨달았다.

▲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뉴스타운

각자의 다양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촛불을 켜고, 또 그 불꽃이 마치 염원하는 대상인 양 정성으로 모시는 것을 보고 그 행위나 염원이나 촛불이 다 내가 본 꽃과 같다고 느꼈다. 소원을 대리하는 불꽃이 타오르다 소멸하는 것이 꽃이 피어나고 지는 모습과 흡사했다(작가노트).

▲ 손유선의 ‘태양처럼, 불꽃들의 기도전’ ⓒ뉴스타운

다른 사람의 염원과 욕망을 담아보려는 손유선은 불상 앞에서 처연히 흔들리는 촛불 영상, 검은 집에 갇힌 형상화한 갈망, 1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 꽃과 표지들과 이 세상의 모든 열망을 위한 기도문 하나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이로써 긴 세월 열지 못했던 창을 열고 새 세상으로 나아가 직접 꽃과 대면하려는 손유선의 실험은 진지한 제의로 다가온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