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요즘은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 다들 반감을 갖는 것 같다. 세상이 온통 미투 운동으로 난리법석인 마당에 여자 이야기도 맘대로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가령 삼십대 여성에게 호감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대학생’같다고 말해 주는 것이란다. 심지어 대학생 에게 “고등학생인줄 알았네.”라고 하면 온 얼굴에 웃음 꽃이 핀다고 한다.
겉모습이 어떤 것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 우리 시대에 ‘나이 든다.’는 것은 젊음의 소멸로서 ‘늙음’을 의미하며, 주름살로 표상되는 저물어 간다는 것과 퇴락의 이미지를 갖는 것 같다. 반면 근대 이전 시대에 적어도 동양에선 나이가 든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성숙과 지혜와 연관 시켰던 것 같다.
그저 장작을 패고 소를 뜯기는 시골의 무지랭이 노인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학식 있는 방문자가 놀라는 장면은 일종의 클리셰(상투어)같은 것이 되었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삶은 충분히 나이든 사람에겐 이렇듯 지혜와 통찰력을 준다는 의미일 게다. 나이 드는 것은 ‘나이 먹는다.’고 표현 하는 것도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 값을 해야지’라고 말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을 지나 나이 일흔 살쯤 되면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로 이어지는 공자의 유명한 문장은, 먹은 나이가 소화되어 삶의 지혜가 됨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나이 들면 지혜가 늘어난다는 말은 그다지 믿지 않는다. 지혜가 늘기는커녕 반대로 나이만큼 편협해지고 독선적이 된다는 것이다.
남의 얘기는 무시하고 자기고집만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경우가 훨씬 빈번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단지 나만의 제한된 경험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면 무언가 새로운 것, 내가 알지 못했던 것, 혹은 나와 다른 종류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수용할만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마음의 여유란 신체적 여유가 없으면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체가 힘들 때는 작은 자극조차 짜증을 내며 내치게 되지 않던가. 굳이 스피노자의 평행론을 빌리지 않아도 마음의 여유가 신체의 여유와 나란히 간다는 것은 알기 어렵지 않다. 그러기에 신체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와 나란히 마음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지 유념해야 한다. 마음의 유연성을 확장하여 신체의 유연성이 줄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계적 관점에서 보면 ‘늙는 것’은 입력장치는 정지되고, 출력장치만 작동하는 상태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의 입력은 중단되고 이미 입력된 것만 출력된다. 새로운 것이 입력되지 않으니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미 있는 것을 가공하는 패턴화 되는 뉴런만 반복하여 작동한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의 생각으로 고집스레 비난만 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은 ‘늙은이의 이데아’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수개월간 수십만 명이 외쳤던 그 거대한 소리도 그의 귀에는 입력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4대강 반대를 외쳤고, 다스니 BBK를 끈질기게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그것 또한 그에게는 입력되지 않는다. 4대강도 “다 해놓고 보면 다들 좋아 할 거야”라는 말만 반복해서 출력할 뿐이다.
늙은이의 지독한 독선과 고집만으로 이미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만 출력한다. 거의 신적인 경지의 절대적인 지존의 늙음이 플라톤의 피안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경우라 할 것이다. 그것은 입력장치, 사고 장치의 무능력에서 기인하는 늙은이의 편협한 독선과 고집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늙었음’을 무기로 막무가내의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 막강한 단체로 부상한 것은, 그 단체가 당시 전국을 돌며 종횡무진 활개를 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는 입력장치는 고장 난 채, 출력장치만 과잉되고 증폭되어 작동하는 것을 보면, ‘늙은이의 이데아’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아, 곱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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