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태 의원김 의원은 지난해 '불법선거자금 양심선언'과 관련한 재판에 앞서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 김근태 홈페이지 | ||
민주당 김근태 의원은 지난해 3월 3일 "2000년 8.30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 당시 5억4천만원 가량을 사용했으며, 이 중 2억4천5백만원은 선관위에 공식 등록하지 못한 사실상 '불법 선거자금'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결국 김근태 의원은 '선거가 있는 해에 6억원 이상을 쓸 수 없도록 돼 있는 후원금을 8억4천5백만원 지출했고, 이중 2억4천5백만원에 대해 중앙선관위에 신고를 하지 않은 혐의'로 지난 17일 법정에 서야했다. 김 의원은 이 일로 다음달 15일 다시 법정에 서야하고, 향후에도 수 차례 법정에 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와 일반 국민들은 김 의원의 위법행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의 사법처리보다는 '무죄선고'를 바라고 있다. 김 의원의 불구속기소 당시부터 시민단체와 정치권, 학계 등 에서는 김 의원의 '구명'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김근태 의원 "기꺼이 책임지겠다"
김근태 의원은 지난해 3월 3일 "선관위에서는 경선이 끝나는 5월까지 3억원 이상 쓰면 안 된다고 하고, 후보기탁금으로 2억5천만원을 내야 했다"며 "법을 지키자면, 5천만원으로 경선을 치러야 하는데 내 가슴속의 냉소와 다른 사람들의 야유를 견딜 수 없었다"며 양심선언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의 양심선언 이후 '불구속기소'라는 법의 잣대가 드리워졌고, 이제 '법에 따라 처벌하느냐, 아니면 국민여론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느냐'의 결정이 남아 있다.
김 의원은 17일 재판에 앞서 "후회도 많이 했다"며 양심선언으로 인한 지금의 상황에 대한 심적 고뇌를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의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며 "내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사회 각계각층 '구명' 요구
김근태 의원의 양심선언은 국민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인지 김 의원에 대한 불구속기소 이후 그의 구명을 요구하는 성명서와 탄원서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 종교계, 학계, 문인, 그리고 김 의원의 팬클럽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의 공판에 자발적으로 증인으로 나서는 의원들도 나타나고 있다. 다음달 2차 공판에는 한나라당의 홍사덕 의원과 최병렬 의원, 그리고 민주당의 장영달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해 김 의원을 도울 예정이다.
자진해서 증인으로 나서기로 한 홍사덕 의원은 "정치자금이나 정치행태의 개선 속도는 일반 국민들의 인식과는 달리 대단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개혁적 정치인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이고, 그중 김근태 의원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라고 김 의원의 개혁 노력을 추켜세웠다.
홍 의원은 또 "보편적 관행은 끊임없이 거부하면서 고쳐 나가던 사람이 그런 관행의 일부를 미처 고쳐내지 못한 채 잠시 타협했던 부분에 대해 벌을 준다면, 법조문에는 맞는 일일지는 몰라도 한국 정치행태의 개혁과 개선에는 치명적 타격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의 신철영 사무총장도 김 의원의 사법처리에 반대했다. 신 총장은 "지난해 경실련 창립 13주년 기념식에서 김근태 의원에게 '경제정의실천시민상'을 수여했다"며 수상근거로 '김 의원의 양심선언'을 들었다.
신 총장은 "(수상이유는) 많은 사람이 추정하기로는 '다들 선거법을 지키기보다는 실제로 많은 자금을 썼을 거다'"라며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했는데, 본인이 스스로 밝힘으로 인해 앞으로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총장은 "(김 의원의 양심선언이) 정치를 맑게 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며 "이번 경우에 처벌되지 않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것은) 내부고발자 보호하고도 같은 취지"라고 덧붙였다.
안 쓸 수도 없는 정치자금
김근태 의원이 실정법을 어기고, 이에 대한 양심선언까지 하게 된 근본원인은 현실에 맞지 않는 정치자금법 때문이다. 물론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조롱을 받는 정치권이기에 국민은 정치인의 씀씀이에 불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법으로 제한하는 정치자금의 규모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도 끊임없이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정치권 역시 현실적으로 개정되길 바라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의 1년 세비는 8천여 만원 정도이다. 그러나 세금을 공제하고 나면 7천만원대가 된다. 월 6백만원 정도의 세비가 국가에서 나온다. 국회의원은 여기서 지구당비와 중앙당비를 내야한다. 지구당 운영비는 의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수백만원은 기본이다. 또한 중앙당비도 선수와 직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 또한 모두에게 만만치 않은 돈이다.
의정보고서에 들어가는 돈도 정치자금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세대수를 기준으로 할 때, 서울의 경우 8만부 정도는 찍어야 하고, 다시 배포하는 데 돈이 든다. 여기에 의정보고대회라도 할라치면, '천만원 정도는 우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렇다고 이 돈을 안 쓸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선거는 여전히 조직표의 위력이 대단하다. 의원들에게 있어 평소에 지구당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의 당락이 결정된다.
지구당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고 자신의 의정활동을 홍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각종 인건비와 의정보고서 등 각종 홍보물 제작비와 배포비 등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역구 내 각종 행사와 경조사비 등 크고 작은 돈의 사용이 불가피한 게 현실이다.
지킬 수 있는 법으로 고쳐나가야
물론 정치자금은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의원들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법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도 주장한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에서도 투명성을 전제로 정치자금의 현실화를 검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정치자금은 더 투명해져야 하고, 제도는 합리적으로 보완돼야 한다"면서 "현행 정치자금 제도로는 누구도 합법적으로 정치를 할 수 없게 돼 있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홍사덕 의원도 "법과 문화 사이의 간격이 있어 충돌할 경우,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법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이라며 "김근태 의원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어 "지금의 법은 선거때는 지키기 힘들다"며 "지킬 수 있는 법으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철영 총장도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기한 제한을 늘려야 한다"며 "투명성을 전제로 적절한 정치자금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도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정치부패를 막으려면 정치자금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은 현실화·양성화하고, 정치자금 조성과정에서의 투명성은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정치자금 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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