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1억원, 안썼으면 돌려줘라
김대중 1억원, 안썼으면 돌려줘라
  • 지만원 박사
  • 승인 2006.06.16 10:38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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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6.15 기념 행사는 돈 긁는 행사

 
   
  ^^^▲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의 6.15 기념행사는 돈 긁는 행사

6.15 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만찬을 주관하는 김대중, 6.15를 기념하는데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돈 긁어모으는 데 마음이 있었다. 이런 자가 외치는 통일과 평화는 사기용 구호일 뿐이다.

그는 6.5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에 공문을 보내 ‘6.15 선언 기념만찬을 개최하니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들로부터 1억원을 뜯어냈다. 전경련에도 구걸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6.8일, 프라자 호텔에서 250명의 참가자에 든 돈은 초청장 발부를 포함한 모든 부대비용을 합쳐도 3천만원 이하였다 한다. 식사비는 1인당 7만원이었다 한다. 2인의 공연자도 돈을 받아가지 않았다 한다. 넉넉 잡아도 2천만원을 넘지 않는다.

김대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50명 참가자로부터 각 10만원씩을 걷었다 한다. 이것만 해도 2,500만원이다. 이 행사로 김대중은 1억 5백만원 이상을 호주머니에 챙긴 것이다. 그에게 이런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선천성 돈 밝힘 증세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도벽증이 있드시 그에게도 사기에 의한 도벽증이 있는 것이다.

김대중 돈 미국에서 춤추고 다닌다. 2조가 넘는다 한다

"밤중에도 새벽에도 전화만 오면 정장차림으로 나가 100만 달러가 든 삼소나이트 가방을 날랐다. 42개월 동안 수를 셀 수 없을만큼 날랐다. 그런 가방 나른 사람, 나 말고 또 여럿 있는 것 같았다"

뉴욕에서 3년 반 동안 김대중의 차남 김홍업의 돈 가방을 이렇게 나른 것이다. 김대중의 비자금 중에 극히 일부만이 춤을 추고 다니고 나머지는 숨어 있다. 춤추고 다니는 돈은 거래에 사용된 돈이며 거래에 사용된 돈의 극히 일부가 3,600억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김대중 성토로 지금 요란하다.

김대중에게는 이 사건이 별 것 아닌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김대중을 도둑놈이라 야단들인데 김대중은 서울에서 버젓이 사실상의 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의 사기 증세는 어려서부터 시작됐다.

27세 때, 6·25가 발발하여 목포가 공산군 수중에 들어가자 목포시 인민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부역 행위를 관리했다. 인민군이 퇴각한 후, 남로당 섭외부장 겸 민주주의 민족전선 부위원장 유재식에게 활동자금을 제공했다는 죄목으로 전남도경에 검거됐었다. 한편 50-56년 사이의 목포해운회사를 경영하던 중 선원봉급과 배를 판돈 1억 5천만원을 횡령하여 도주했다.

1956년, 33세가 된 김대중은 이 일로 해운회사 부사장인 나상수로부터 고발당해 강원도로 피신한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 1959년 6월, 36세가 된 김대중은 강원도 인제 지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빚을 지고 생활고에 허덕였다. 이때의 김대중의 처는 차용수, 현재 생존해 있는 차 모 목사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빚에 시달리고 계까지 깨지는 바람에 세상을 비관하고 음독자살을 했다.

1959년 6월, 36세가 된 김대중은 인제 지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바로 이 때 또 다른 횡령사건이 발각된다. 선거기간 중 투개표 입회원이었던 문수룡(文壽龍)이라는 사람이 돌연 급사하자, 민주당에서는 문수룡을 순직으로서 처우하고, 당중앙간부가 조의금 30만원을 모아 김대중씨를 통해 유족에게 건네주도록 했다. 그런데 김대중씨가 이중 12만원만을 유족에게 건넸을 뿐 나머지 18만원을 착복했다. 이 사실을 안 당시 민주당원 김재동, 백응기 등 네 명이 김대중씨의 파렴치한 횡령행위를 비난하고 민주당에서 탈당해 버렸다.

김대중씨의 조의금 착복사실이 널리 당내에 전해지자, 당내는 물론 선거구 전체의 비난이 집중됐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김대중씨는 반대로 탈당한 김재동, 백응기 등 네 명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고발당한 네 명은 김대중씨를 횡령과 무고(허위신고)로 대항,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지만 그 후 사건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한다.

1960년, 37가 된 김대중은 서자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이 불리함을 알고 4남매를 거느리고 있는 의부 김운식과 그의 본처 김순례에게 호적상 이혼을 강요한 다음 그의 생모 장여인을 본처로 입적시켜 자신을 김운식의 차남으로 조작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로 분가, 전적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김대중은 1961년 7월부터 민주당 선전부장이 됐다. 이 때에도 김대중은 또 다른 횡령사건을 저질렀다. 선전부장으로서 학원공작을 구실로 조달한 선거 자금 3천7백만 원 중 7백 7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어 검찰에 송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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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박살 2006-06-16 10:54:22
도독놈아 돌려줘라 개때쭝이떼들 한데 슨상넘 찬양한다고 다 갔다받쳐는데 지만 아방궁에서 잘 살고있지 늙은 폭스와 울프가 뭔 큰집이 필요하다고...

김진우 2006-06-16 14:28:42
이런자가 일국의 대통령이었다니 나도 찍었지만 모두가 사실이라면,
크나큰 죄값을 받을겁니다

개구리 2006-06-16 14:32:42
슨상넘의 수혜자 요노무자석도 똑 같은 넘이지 아마도...

사실은 2006-06-16 15:37:08
돈과 사람목숨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
박정희와 그 똘마니. 지금 한나라당의 전신 독재정권 시정의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이 얼마냐?
그것은 감추고 남의 치부만 말하는 것이 꼴통보수지? 그렇지?

사실은2 2006-06-16 15:41:54
너거들보기엔 언제나 진실뒤에 숨어있는 다른 시각에서만 보는 것이 특징이다. 목숨 일성이나 정이이 개대중이 한데 뭘어봐라 목숨이 뭔지를 왜 가만히 고히 잠들고 있는 분을 물고 늘어져 그래 꼴통들이 나라 잘지키고 있다.호로돌노무자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