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다시한번 애국을 다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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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다시한번 애국을 다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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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20%입니까. 80%입니까!

 
   
     
 

내 아들아!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받쳤니!?

서해교전에서 순국한 故박동혁 병장의 어머니가 아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대한 절절한 심정을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글입니다.

 


    내 아들아!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받쳤니!?

    아들아 잘 지내고 있니.
    오늘도 엄마는 너의 이름을 불러 본단다.

    네가 너무나 아파 했기에 쓰리고
    저미어 오는 가슴 가눌 길이 없구나.

    중환자실에서 너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고. 성한 데라고는
    머리하고 왼손 뿐이 었어.

    22개나 되는 링거줄에 의지하고 수많은 기계들.
    3일 만에 죽었다가 심페기능
    소생 기술로 살아났다고 하더라.

    한 달 되어가면서 의식을 찾은 내 아들.
    왼쪽 다리 빼고 파편 때문에 대장은 망가졌고
    소장은 일곱 군데 꿰매고 배는 오픈 시켜 반창고로
    붙여놨고 허리는 끊어졌고
    왼쪽 척추에 큰 파편이 있고
    화상으로 인해서 푹 패어 그 밑에 인공항문.

    오른쪽 다리엔 신경이 다쳤는지 감각도 없고
    여기저기 파편 조각들이 상처를 내고
    오른쪽 어깨에 총알이 들어있다.
    뱃속에는 파편 쪼가리가 100개가 더 있다고 하더라.

    깨어나면서 찾아오는 고통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입을 벌리면 서 통증을 호소하니까, 입술이 찢어졌다.
    날마다 떨어지는 저혈압. 수없이 수혈해도 혈소판은
    떨어지고 생과 사가 왔다갔다 한다.

    교전 때 입은 충격일까.
    총알이 날아오고 죽은 대장님이 달려든다.
    환청에 시달리며 눈이 빨갛게 부어 잠 못들고 통증과
    고통에 시달리면서 힘들어 하는 아들의 모습.
    내 손을 잡고 울부짖는다.

    이 힘든 통증을 어이해야할지.
    침상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아들.
    안쓰럽고 불쌍하고 처참했다.

    다리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왼손으로 엉덩이쪽을 만지면서 흐느낀다.
    ‘엄마, 내다리 어디로 갔어. 저리고 아프다.
    ’잠에서 깨어났는데‘내 다리가 없어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
    너와 우리 가족은 피눈물을 토했다.
    네가 왜 총맞고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냐고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너는 물만 한모금 삼켜도 장출혈이 심했다.
    밤이 되면 통증은 더 무섭다고 했다.
    긴 밤을 꼼짝도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우는 아들.
    뼈에 사무치는 고통 때문에
    차라리 엄마가 아프고 싶었다.
    건강하고 씩씩한 아들이었다.

    무능력한 부모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너의 상처를 바라보며 사무쳐 오는 슬픔을 되새길 뿐.
    겨우 고개를 돌려 문쪽만 바라보는 아들.

    아빠 엄마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정말
    가슴이 아팠다.
    불쌍하기도 하고. 이런 속에서 약간 호전되더니
    점점 심해져 2002년 9월 1일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주렁주렁 매달린 약병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많은 상처에는
    도움이 별로 되지 못했다.

    엄청난 상처를 뒤로 한 채 9월 20일 새벽,
    저 멀리 하늘 나라로 가버렸다.
    그 힘든 통증 속에서도 살아준 내 아들에게 고마웠다.

    대전에 너를 묻고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엄마는 왜 이리 슬프고 초라한지 서글퍼진다.

    6월 29일 국군수도병원으로 간 우리 가족은
    가을이 되어서 피멍진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 아들에 대한 보고픔,
    웃음을 잃어버린 가족들,
    내 젊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전을 수없이 다니면서 아들이 한없이 보고싶다.
    처음엔 전사자 여섯 가족은 서먹서먹 했지만
    자주 만나다 보니 요새는 친하게 지낸다.

    2002년은 힘들고 고통을 주는 씁씁할 한 해였다.
    내 응어리진 가슴에 한을 남겼다.
    무슨 약으로도 치유가 안된다.
    평생 흘릴 눈물을 쏟아버렸다.

    새해가 밝아오지만 아들에 대한
    보고픔은 더욱 간절했다.

    「 한국주둔 미사령관이 위로의 편지를 보내왔다.
    최고의 대우와 예우를 한다던
    정부와 기관은 전화는 커녕 편지 한 통 없다.
    국방부도. 내 젊은 아들은 어느 나라,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말인가.
    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졌다.
    과연 우발 이었을까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모 신문 인터뷰에서 국정원 내정자라고 한
    서동만 교수는 서해교 전은
    김정일 책임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죽었단 말인가.」

    많은 상처를 안은 부모 마음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올라 청와대 민원실로 전화했다.
    이런 미친 인간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내정자로
    뽑으면 안된다고 항의 했다.
    국방부에도 항의 했다.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2003년 6월 11일 기다리던 아들의 제대날이다.
    대문을 열고‘나 왔어’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올 것만 같다.
    문도 열어보고 대문 밖에 나가 서성거린다.
    안절부절 못하는 어미의 심정을 누가 알까.
    해가 뉘엿뉘엿 져도 아들은 오지 않는다.
    북받쳐 오는 설움에 남편을 붙들고
    ‘왜 동혁이는 오지 않냐?’고
    미친사람처럼 목놓아 울었다.

    치가공과 나와 치공소 차려
    아빠 엄마 행복하게 해준다던 아들.
    씩씩하고 건강하게 반듯이 자라준 아들이다.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장학금 받아 공부한 아들이다.

    6월은 힘들다. 내 아들의 흔적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녀본다.
    마음이 편치가 않는다.
    여러 사람들 중에 해군이 보이면 눈이 번쩍인다.
    혹시 내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동혁아, 세상에 태어나 피어보지도 못하고
    너는 가버렸지만 엄마는 너를 너무너무,
    엄마의 분신(扮身)보다도 너를 사랑했다.
    반듯하게 잘 자라준 아들에 대한 연민일까.
    오늘도 내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해가 저문다.
    총소리, 전쟁없는 하늘 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자.

    이 글은 엄마가 하늘나라에 부친다.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로. 서해교전 부상자를
    치료해준 수도병원 모든분들께, 성금을 내주신
    국민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서해교전당시 중상을 입고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받다

    같은해 2002년9월20일 숨진

    고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 씀

     


 
   
  ⓒ 월남전과 한국 www.vietvet.co.kr  
 
이 사람들은 누구이고,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오늘 당신들은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까?

오늘도 '애국정보입니다. 알아야 애국할 것 아닙니까' 외쳤습니다. 80%는 고개를 돌리고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20%입니까. 80%입니까!

여기에 누워있는 이 사람들, 당신에게 무슨 도움을 주기나 한 것인가요?

월남전 51묘역 맹호10포병 육군대위 함창관의 묘 비석앞에는 추모의 글이 적힌 대리석이 있다. 그 글자들을 더듬어 읽어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동기에게 남긴 글들이 월남전 그 시절의 그리움이 그대로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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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애 2006-06-12 14:35:06
6월 호국보원의 달 입니다.
다시 한 번 가슴속에 이날의 슬픔을 새겨야 합니다.

익명 2006-06-18 07:26:57
끝나지 않은 아픔… 29일 ‘서해교전 4주기’

[문화일보] 2006년 06월 17일(토) 오후 12:06

(::전사 장병 어머니 수기 큰 반향::)온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4년전 2002 한·일 월드컵때 발생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어머니가 쓴 수기가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2일 누군가가 당시 숨진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씨가 작성한 수기를 포털사이트에 올린 뒤 싸이월드와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사이트 카페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것. 수기를 접한 수만명의 네티즌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옮겨 싣거나 “월드컵에 빠져 그들을 잊고 있다.

죄 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편지에는 2002년 6월29일 교전중 부상당한 박 병장이 9월20일 새벽 숨질 때까지 3개월 가량의 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던 어머니의 아픔과 아들을 잃은 뒤의 상실감이 절절히 배어있다.

이씨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힘들어하는 아들의 모습… 다리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엉덩이쪽을 만지면서 흐느낀다.

뼈에 사무치는 고통 때문에 차라리 엄마가 아프고 싶었다”고 썼다.

또 “주한미군 사령관이 위로의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 정부와 기관에서는 전화는 커녕 편지 한 통도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2003년 6월11일 기다리던 아들의 제대날이다.

대문 밖에 나가 서성거린다.

해가 뉘엿뉘엿 져도 아들은 오지 않는다.

남편을 붙들고 왜 동혁이는 오지 않느냐고 미친 사람처럼 목놓아 울었다”고 아픈 마음을 적었다.

특히 “국정원 간부 내 정자라는 한 교수가 서해교전은 김정일 책임이 없다고 했다.

그 러면 우리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 죽었단 말인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초 박 병장 어머니의 수기는 2003년 7월 한 주간지가 최초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서해교전을 기리는 충남 삽교호 함상공원에도 전시돼 있다.

인터넷을 통해 수기를 접한 네티즌들은 “6월은 호국의 달인데 나라가 있어야 월드컵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응원전에 1분이라도 묵념을 하자”는 등의 반응을보였다.

서해교전은 2002년 6월29일 오전 10시25분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 에 갑자기 포탄을 쏘면서 발생했다.

이날은 한국과 터키가 3, 4 위전을 벌였던 날이다.

당시 교전에서 고속정 정장이던 윤영하 소령은 포탄을 맞고 바로 절명했으며 20㎜ 벌컨포를 쏜 조천형 중사는 불길에 휩싸여, 다른 벌컨포를 쏘던 황도현 중사는 머리에 직격탄을 맞아 전사했지만 두사람의 손가락은 끝까지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순식간에 손가락 4개가 잘린 권기현 상병은 왼쪽 팔뚝 위에 총을 올리고 실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대응 사격을 하는 등 치열한 교전을 벌 인 끝에 6명의 장병이 전사했다.

고 박 병장은 2000년 원광대 치과기공과 1학년을 마치고 해군에 입대해 교전 당시 의무병으로 근무했다.


교전이 발생하자 자신 의 몸을 돌보지 않고 함장에게 인공호흡을 시키는 등 부상자를 치료하다 포격에 노출되면서 온 몸에 파편이 박히고 왼쪽 다리를 잘라내는 등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숨 졌다.

애독자 2006-06-18 07:33:44
12일 이라면 역시 뉴스타운에서 올린 포토뉴스 였습니다.
진작에 알았지만 뉴스타운의 파워가 이렇게 클줄이야....

지금 인터넷은 이 수기로 잔잔한 파동이 일고 있다.
뉴스타운에 감사드린다.


참전용사 2006-06-18 07:58:02
뉴스타운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자료를 만들어 올려 주신 뉴스타운에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 수기로 많은 국민들은 애국애족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수홍 2006-06-18 08:01:10
이 수기가 최초로 올라와 퍼트린 곳이 뉴스타운 이였군요.
정말 가슴뭉클한 글과 음악입니다.

우리들을 반성케하는 내용입니다.
전 국민모두가 보아야할 내용 같습니다.
뉴스타운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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