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츠페터는 간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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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츠페터는 간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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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게릴라 작전과 정치공작 작전이 배합된 적화통일 폭동이었다

▲ ⓒ뉴스타운

힌츠페터는 1975년에 김대중 추종자였다

힌츠페터는 1973년부터 89년까지 일본 도쿄특파원이었다. 조총련의 포섭 대상범위에 속해 있었다는 뜻이다. 최근 힌츠페터와 김사복이 담긴 사진이 발견돼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1975년 10월 3일, 포천 약사봉 장준하 추락지점 부근에서 점심을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고, 점심을 끝내고 산을 내려오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다. 촬영일자가 1975년이 맞다면 그는 5.18음모에 가담한 간첩이다. 이 사진에는 힌츠페터와 김사복, 함석헌 계훈제의 얼굴이 있다. 함석헌과 계훈제는 ‘국민연합’(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1979.3. 김대중이 결성)의 핵심이다.

김대중의 국민연합은 남한의 한민통

 참고로 ‘국민연합’은 1980년 5월 7일 제1차 ‘민주화촉진선언’을 발표했고, 이어서 5월 16일 제2차 민주화촉진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감히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여기에 동참한 21명 명단이 있다.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고 은 김병걸 안병무 김용식 문익환 김승호 오태순 예춘호 서남도 김종완 김택암 한완상 이태 함세웅 계훈제 이태 장덕필 한승헌 

힌츠페터 2015. 노동당 창건 제70주년 행사에 초대됐다

​2015년 10월 10일은 노동당창건 제70주년이었다. 성대하게 치러진 그 행사에 힌츠페터의 얼굴이 나왔다. 총알이 빗발치는 광주에 힌츠페터와 김사복은 2회씩이나 갔다. 5월 20일에 갔고 23일에 갔다. 취재차원이 아니라 공작차원인 것이다. 5월 20일, 그는 아주 짧은 시간만 광주에 머물다 동경으로 날아갔다. 북한이 촬영한 5월 18일의 사진(곤봉으로 때리는 사진)을 포함해 공수부대가 시위꾼들을 무섭게 진압하는 광경을 독일로 송고한 것이다 그리고 또 23일 다시 김사복과 함께 광주 외곽으로 갔다.

김사복-힌츠페터에 광주는 위험한 곳이 아니라 안전한 곳이었다

5월 23일, 김사복의 택시에서 내린 힌츠페터는 접선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한특수요원(태권도 7단, 통역자 등)들의 차를 타고 샛길을 통해 광주로 들어갔다. 도청에 도착하자마자 북한정치공작조가 마련한 무대를 정신 없이 찍었다. 이에 더해 북한 공작팀이 5월 21일의 화려한 특공작전을 담아놓은 영상들을 받아가지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 “푸른눈의 목격자” 이름으로 방영된 대부분의 영상들은 5월 18일과 21일 상황이었다, 이 영상들은 힌츠페터가 찍을 수 없었던 영상들이다.

김사복도 김대중 추종자

KBS, 동아일보, 월간조선 보도들에 의하면 김사복은 최고급 승용차를 3대 굴리는 운수사업자였고, 그 중 한 대를 자기가 몰았다, 1974년 문세광을 조선호텔에서 장충동 국립극장 8.15 행사장에까지 문세광을 태워준 차량도 김사복 차량이었다. 김사복은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그는 5월 19일 김포공항에 미리 나가 있다가 힌츠페터를 태웠다. 그리고 그 다음날 광주로 갔다. 그는 부자였다. 구태여 총알이 빗발치는 위험한 광주를 갈 이유가 없었다. 힌츠페터 역시 목숨을 건 도박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광주에 간 것은 광주에서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장치가 마련돼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간 것이다. 아래는 최근 보도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최근 보도내용 발췌

* 위르겐 힌츠피터의 회고록에는 "우리를 안내할 차를 운전하기 위해 김사복이라는 한국사람이 우리가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공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썼다.

* 영화에서는 서울 번호판을 단 초록색 브리사(기아자동차) 개인택시가 등장하지만, 실제 김사복 씨는 개인택시 운전사가 아니라 자기 소유의 고급차 3대를 가지고 서울 팔레스호텔(회현동) 소속 호텔 택시를 운전하던 운수사업자였다.1969년 처음 생긴 호텔 택시는 호텔 투숙객을 상대로 영업하던 택시로, 별도의 택시 표시가 없으며 차종도 검은색 세단이다.

* 김 씨는 '푸른 눈의 목격자'로 알려진 독일 언론인 힌츠페터를 태우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서울과 광주를 두 차례 왕복한 택시기사다.

결 론

5.18은 게릴라작전과 정치공작작전이 배합된 적화통일 폭동이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김대중이 이끄는 국민연합 요원들은 이미 오래 전 힌츠페터를 포섭하여 5.18 정치공작작전에 대비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박정희의 생명을 노린 문세광도 한민통 소속이다,

아래 사진의 촬영 날짜가 1975년이라면 남한의 한민통 조직인 ‘국민연합’은 박정희 대통령이 곧 시해될 것이라는 사실도 미리 알고 있었고, 5.18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추론을 더욱 짙게 하는 것은 ‘국민연합’이 1980.5.16.일 감히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는 사실이다. 정당도 아닌 한 재야단체가 감히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5.18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데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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