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파랗게 선 대못을 콩 위에 대고 돌리면 동그란 구멍이 파진다. 사이나 가루를 넣는다. 무당 집에는 항상 촛불이 켜져 있다. 촛농으로 콩 구멍을 막는다. 눈이 덮인 산으로 갔다. 공동묘지 양지 바른 곳에 잠들고 있는 사람들의 무덤으로 갔다.
제일 잘 생긴 묘지의 봉우리를 택했다. 빗자루로 약간의 눈을 치우고 솔잎을 찾아다 뿌렸다. 사이나 콩을 몇 알 뿌려놓았다. 순경은 형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자식아, '사이나'를 어디 꿩만 먹나, 금 덩어리도 먹고, 사람도 먹으면 죽지, 얼마나 훔쳤어?"
"얻었어요, 훔치긴,"
"네 친구가 훔쳤다고 하잖아,"
순경은 똑같은 물음을 반복하며, 형을 범인으로 몰려고 다그쳤다.
도깨비의 불리한 증언은 형을 곤경에 처하기에 충분했다. 자기만 빠져 나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형은 순경 앞에서 도깨비에게 눈을 부라렸다. 순경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도깨비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웃음을 웃으며 얼버무렸다. 성호는 그 때부터 도깨비를 형의 친구로 보지 않았다.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점을 형에게 강조하고 늘 조심하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형은 늘 도깨비를 용서하고 다시 어울려 다녔다.
성호는 그 것이 늘 못 마땅했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노름꾼들에게는 그런 일이 늘 있는 일이며, 그보다 더한 것도 속이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 나쁜 사람들이 속이고 사는 세상이 노름꾼들 세계였다.
성호는 광부들이 어떻게 '사이나'를 가지고 나오는지 알았다. 작업 중에 조금 남겨 두었다가 역시 사타구니 속에 가져온다. 형은 가지고 나온 사람을 바른 대로 말하면 말총과 쌀이 바뀐 것처럼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꿩 숫자와 금 덩어리 숫자를 물어보고 닦달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증인이 있다고 말하면 형은 다시 순경 앞에 서야한다. 형은 그게 싫어서 올바르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형이 훔친 '사이나'는 없지만 도둑놈이 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훔쳤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재수가 더럽게 없는 일이라고 땅에다 침을 뱉었다. 형과 도깨비는 그 사건으로 엄청나게 싸웠다. 도깨비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회개하고 사함을 받는 것처럼 형에게 얻어맞고서야 용서를 받았다. 순경한테 걸리기만 하면 형은 빠져 나오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혼자 떠맡았다.
광산촌이 있는 곳에서는 늘 '사이나'가 문제가 되었다. 순경들이 '사이나'를 문제 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것을 먹으면 사람이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부들은 그것을 몰래 훔쳐다가 꿩을 잡기도 하고 농부들에게 나누어주어 문제가 되었다.
광산이 있는 주변 마을에는 누구네 집이든 '사이나'가 조금씩 있었다. 대청마루 선반 위에 보관하고 있는 '사이나'는 화가 치밀면 언제나 먹을 수 있어 더욱 위험했다. 과부가 된 광자 누나도 사이나 때문에 남편을 잃었다.
눈이 온 다음날 눈구멍이 뚫린 산소로 갔다. 열 알의 콩이 없어졌다. 한 놈이 다 먹었는지, 열 마리가 먹었는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서 찾지?' 무덤에서 죽지 않고 어디 멀리 가서 죽은 모양이다. '몸에 불이 나서 물을 찾아갔나?' 형은 어머니가 못 먹게 하는 독주를 몰래 마시고 목구멍에서 불이 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꿩들도 엄마처럼 양지 바른 곳을 좋아했다. 사이나 콩이 없어진 것을 알고 나서 아이들은 흥분한다.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임자다. 눈 산을 헤매며 썰매를 타듯 멀리 가기를 경쟁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달이 뜬 날이면 그림자가 무섭다.
무당귀신이 뒤에서 소리 없이 따라온다. 죽은 꿩과 참새도 귀신이 되어 뒤쫓아오며 슬픈 소리를 낸다. 밝은 달과 개 짖는 소리가 입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아이들은 눈빛에 홀려서 비틀거리지만 달빛만이 죽은 꿩이 있는 곳을 안다.
늦은 저녁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고 죽은 꿩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이상한 꿈을 늘 꾸었다. 꿈속에서 꿩이 나타나 목을 부리로 물고, 바늘로 찌른다. 죽은 꿩의 부리가 바늘로 보이기도 하고, 성난 황소가 되기도 하여 얼굴을 찌르고 받았다. 순경은 또 형에게 물었다.
"우유에 조금만 넣으면 사람이 죽지, 누굴 죽이려고 훔쳤어?"
"아닙니다. 사람을 어떻게 죽입니까?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억울하면 바른 대로 말해,"
형은 항의 섞인 말을 했다.
'사이나'를 먹으면 사람이 죽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자, 순경은 주먹으로 형의 가슴을 쳤다.
도깨비는 고개를 숙이고, 수수방관자가 되어 얌전히 앉아 있기만 했다. 성호는 형이 '억' 하고 불규칙 반음소리를 내자, 오래 전에 먹었던 무당 집의 돼지머리 고기와 죽은 꿩의 시신이 목구멍에서 확 하고 쏟아져 나오려고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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