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서에는 죽음을 터부시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아직 강한 것 같습니다. 장성한 자녀들은 당연히 부모의 임종을 지켜야 하고,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큰 불효라고 생각을 하지요. 문제는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입니다.
의과대학생들 (평균 나이 24세) 50여명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두 조부모 등 친지들이 임종하였지만, 직접 지켜 본 경우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돌보았던 말기 환자 중 비교적 어린 자녀를 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30대, 40대의 환자들은 자녀가 유치원생부터 중학생 정도 연령이니까요. 그런데 병실에 환자 분 자녀가 와 있는 것을 보는 일은 흔합니다만, 환자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어린 자녀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아이들은 안 데리고 오셨냐고 하면. "무슨 좋은 일이라고.."하고 고개를 흔드시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를 일찍 잃은 것이 큰 충격인데, 임종 가까이의 부모 기억이 없다는 것도 혼란을 더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녀를 키워 본 분은 아시겠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잘 분간하지 못하지요.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나이의 아이에게는 죽음의 순간에 가족 곁에 있느냐 없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치원 다닐 나이(6-7세)가 되면 어렴풋이 죽음에 대해 ‘다시 볼 수 없다는 두려움과 매우 큰 슬픔’이라는 감을 가집니다.
죽음이란 이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아이들과 청소년은 가족, 친척이 임종하는 순간에 그 자리에 같이 할 것 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이 것을 결정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 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평소에 가을의 낙엽이나, 집안에서 기르던 애완동물의 죽음 등을 통해 죽음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이 될 만한 동화책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 (노마 사이먼 저) 이 있습니다.
임종 당시에 가족의 곁에 있는가 없는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프고, 죽음을 앞둔 가족들에게 아이들 자신이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은 아픈 가족을 위해 그림을 옆에서 그려주거나, 그린 그림을 친지들이 병원으로 전달해 줄 수도 있습니다.
글을 아는 아이라면 편지나 카드를 쓸 수 있겠지요. "엄마가 아프니, 네가 동생을 잘 돌보아 주렴" "아빠가 아프셔서 엄마가 바쁘단다. 네방 청소는 네가 한다면 엄마가 쉴수 있겠구나" 하는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도 좋습니다.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해도, 죽은 가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이에 따른 적당한 비유를 해 주면서 어른이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사별한 가족에 대한 슬픔이 너무 커서, 가족 안에서 고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다시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남은 가족들이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터 놓고 대화를 하며 서로 위로할 때 마음의 병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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