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예속을 넘어 해방의 봄으로
분단과 예속을 넘어 해방의 봄으로
  • 석희열 기자
  • 승인 2003.04.07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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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통일을 향한 힘찬 붓놀림 '그림공장' 기획전 열려

자주와 평화로 밝아오리라 기대했던 21세기의 봄은
굴곡진 지난 세기의 야만적 침략행위들에 의해
전쟁의 포성으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야만에 발목을 붙들릴 수 없어
청년작가들은 새 세기 건설의 첫 삽을 '청산'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그림공장이 기획하고 청년작가들이 함께 만든
청산展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청년작가의 붓을
봉기하는 창끝의 날카로운 번쩍임으로
높이 들겠습니다.

- '그림공장' 기획전시회 '청산전' 초대의 글 중에서


 

 
   
  ^^^▲ 봄이 오는 길목 (이종민 작)
ⓒ 석희열^^^
 
 


그 동안 다양한 시각매체를 활용한 참신하고 꾸준한 창작활동과 기획전시로 미술을 통한 진보적 소통공간의 활로를 개척해왔던 청년세대 미술 창작단 '그림공장'의 네번째 기획전시회 '청산전(展)'이 3일부터 4일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

예속과 분단으로 일그러진 굴종의 시대를 우리 이제 청산하자고 한다. 더하여 자주통일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8천만이 함께 자주민주통일의 봄을 맞이하자고도 한다. 그래서 기획된 이번 '청산전'에서는 평면, 조형 등 20여점의 그림 전시와 함께 외세의 총칼에 처절히 쓰러져간 민중의 한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오후의 봄 햇살이 은빛으로 춤추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한 작은 농가. 이제 막 점심상을 물리고 난 50대 부부가 한가로이 마루에 앉아 있다. 순간 미군 복장을 한 병사가 집안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향해 정조준을 하여 총을 겨눈다. 총성이 울리고 두 사람이 쓰러졌다. 잠시 울부짖음이 있었지만 미군 병사는 확인사살을 끝내고 사라졌다.

 

 
   
  ^^^▲ 이번 기획전에서는 주한미군에 의한 한국 민간인 학살만행을 형상화한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 석희열^^^
 
 


동토(冬土)의 언 땅에 봄을 기다리는 이 땅 민중의 삶과 한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 '봄이 오는 길목'. 이 작품에서 작가는 우리에겐 언제나 봄을 맞이할 권리가 있노라고 외친다. 또 지난 오십여년 동안 우리에게 한번도 오지 못했던 설레이는 봄.. 그 봄을 이제는 맞이해야겠노라고 다짐한다.

굴곡 많았던 우리 현대사에서 '미군'이라는 존재를 빼놓은 채 담론이 가능할까. 역사는 얄궂다. 좋든 싫든 그들의 일상은 지난 50여년간 우리와 함께 해왔다.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굽이마다엔 늘 그들이 거기 서 있었다. 4·3항쟁으로 피맺혀 부르던 통일의 봄에도, 4·19혁명으로 처절히 부르던 민주의 봄에도, 5·18항쟁으로 분연히 부르던 자주의 봄에도 그들은 비켜서지 않았다.

 

 
   
  ^^^▲ 알고 있는가 1 (전진경 작)
ⓒ 석희열^^^
 
 

1997년 4월 3일 밤.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와 미군 속 아들 패터슨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버거킹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당시 홍익대생 조중필씨의 가슴과 목 등 9군데를 잭나이프로 찔러 과다출혈로 숨지게 했다.

에드워드 리와 패터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장실에서 걸어나오며 '피보기 게임을 했다. 재미로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태연히 주고받았다.

6번의 심리공판을 거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사형을 선고받았던 에드워드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패터슨은 다음해 8·15특사로 풀려났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분명 범인이었음에도 한국 검찰은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른 수사 한계에 부딪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 고(故) 조중필씨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이 저 길목을 돌아 집으로 달려올 것만 같아 문 앞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서 있다.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45분.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에서 미2사단 44공병대(캠프하우즈) 소속 미군 장갑차가 앞서 가던 두 중학생 심미선, 신효순양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 한(恨) (장진익 작)
ⓒ 석희열^^^
 
 


미선이 효순이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생일잔치에 가기 위해 갓길을 걸어가던 중이었고, 이들은 미군 장갑차의 오른쪽 궤도 부분에 치어 어린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다. 그러나 우리가 못난 탓일까. 지금까지 그 누구도 두 어린 학생의 죽음에 대한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 아버지의 절규가 이어졌다. 두 소녀의 한(恨)은 너무 커서 우리 모두의 한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두 손에는 촛불이 쥐어졌다. 그 촛불은 광화문에서 서면에서 충장로에서 들불이 되어 타올랐다. 한반도 이남에서 미군에 의해 죽어간 이 땅 원혼들의 눈물이 마침내 꽃비가 되어 쏟아졌다.

 

 
   
  ^^^▲ 촛불꽃비 (오치근 작)
ⓒ 석희열^^^
 
 


이 땅에 진정한 봄은 오는가. 이번 기획전에 '푸른 하늘'이라는 작품을 내놓은 작가 김성건(동양화 전공)씨는 "이 땅에서 주한미군이 떠나는 그날, 이 땅에 진정한 봄이 찾아오고 비로소 푸른 하늘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송자 '그림공장' 대표는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우리 현대사의 발목을 붙들었듯, 자주와 통일, 평화의 새 세기를 맞이하고 건설해 가는 데 있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개인과 사회, 민족의 삶 곳곳을 얼룩지게 하고 있는 예속과 분단, 억압과 부조리을 청산하는 일"이라고 이번 기획전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인 대표는 "나와 사회, 민족의 앞날을 헤쳐가자면 분단적 사고와 굴종의 습성에 젖어 있는 머리와 마음으로부터 법, 제도, 장치, 인물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짚어보고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며 "우리의 앞날, 통일 조국의 미래는 우리가 겪은 예속과 분단의 과거를 청산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모처럼의 연휴를 맞아 마로니에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기획전을 둘러보고 있다
ⓒ 석희열^^^
 
 


그 동안 '그림공장'은 2000년 8월 통일대축전 기간에 한양대에서의 '매향리전'을 시작으로 2001년 5월 종묘공원에서 미군의 학살만행을 고발한 '점령군전', 2002년 6월 마로니에공원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두돌맞이 기념 '행복한 통일전', 그리고 이번 '청산전'을 포함하여 네 차례 기획전을 가졌다.

인송자 대표는 '그림공장'의 기획전시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가슴에 담고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에 대한 지향을 화폭에 담아 야외전시라는 형태로 손을 내미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전시가 아니라 참가하여 함께 구조물을 만들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시민참여 작품들, 그리고 현장감 있는 퍼포먼스 등의 입체적이고 참여적인 전시 운영으로 멀고 어려운 그림이 아닌 가깝고 쉬운 전시, 활력 있는 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알고 있는가 2 (전진경 작)
ⓒ 석희열^^^
 
 

한편 '그림공장'은 11월까지 서울을 비롯하여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수원, 울산, 인천, 전주, 제주, 청주, 춘천 등 40여 차례의 전국 순회전을 하며 작품을 늘려가는 릴레이전을 가질 예정이다.


 

 
   
  ^^^▲ 어머니의 한 2 (김주철 작)
ⓒ 석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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