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에는 아픔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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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에는 아픔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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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부정과 이중긍정 너머에서 길쌈하기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 반야심경에서 -

7세기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상스님은 유학길을 포기한 원효스님에게 자기의 화엄학(華嚴學) 통달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화엄경에 대하여 오히려 실천으로 앞서 있었다. 화랑도에게 화엄의 원융무애(圓融無㝵)한 기상을 불어넣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던 것이다. 이에 놀란 의상은 문무왕 17년(677년) 태백산 부석사에서 지리산 화엄사로 옮겼다고 한다.

의상은 화엄사에서 삼국인이 한 민족임을 실현하는 정신적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즉 백두산의 혈맥 아래 화엄의 세계를 펼칠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 법당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장육이란 부처님의 몸(16자)을 일컬는다. 그는 이곳에서 2층4면7칸의 사방 벽에 돌에 새긴 화엄경과 함께 황금장육불상(黃金丈六佛像)을 모셨다고 한다.

불교는 크게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으로 나뉜다. 교종은 배움을 통하여 서서히 깨달음에 이르는 길(漸修)이며, 선종은 명상으로 별안간 해탈한다는 길(頓悟)이다. 화엄사는 신라 말 화엄종 남악파의 본부였고, 화엄종은 화엄경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는 교종의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고려 어느 때 선종으로 바뀌었고, 이후 화엄경은 선(禪)의 바탕을 뒷받침하였다.

선종 사찰의 중심은 대웅전으로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다. 그런데 화엄사는 처음부터 화엄석경을 모신 장육전이 그 중심이었다. 어쩌면 당시 화엄종 북악파의 본산인 부석사처럼 비로자나불을 모신 적멸보궁이 장육전의 옆 자리에 있었을는지 모른다. 화엄사의 대웅전은 비로자나 법불(法佛)이 중앙에, 석가모니 화불(化佛)과 노사나 보불(報佛)이 그 좌우를 지키고 있다.

화엄사 경내에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목조건물인 대웅전(보물 제299호)이 있다. 그 아래 마당에는 통일신라 때의 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과 고려 때의 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이 세워져있다. 동탑과 서탑은 분명 쌍탑이나, 대웅전 앞에서 어설픈 듯 서로 가지런하지가 않다. 두 탑이 같이 있는데 따로 있는 것 같다. 하나도 아닌 둘도 아닌(非一非異). 제3의 상태이다. 그 원인은 대웅전과 각황전이 각각 다른 믿음으로 봉축됐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화엄사는 현재 각황전과 대웅전이 서로 직각으로 어긋나 있다. 화엄사가 처음 교종이었을 때는 각황전을 주축으로 가람을 배치했고, 나중 선종으로 통합됐을 때는 대웅전을 주축으로 전체를 재배열하였다. 일주문을 통과한 손님은 마침내 대웅전 마당 오른쪽 운고각 앞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보면, 동탑은 대웅전에 또 서탑은 각황전에 각각 맞서있음을 알게 된다.

버렸다, 그리고 버렸다는 것조차 버렸다. 고로 이중부정의 공(空)이다.
잊었다, 그리고 잊었다는 것조차 잊었다. 고로 이중부정의 공이다.
비웠다, 그리고 비웠다는 것조차 비웠다. 고로 이중부정의 공이다.
공은 나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고유(固有)의 세계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우주가 공이다.

내가 너를 낳고, 뒤집어 네가 나를 낳았다. 고로 이중긍정의 색(色)이다.
양이 음을 낳고, 뒤집어 음이 양을 낳았다. 고로 이중긍정의 색이다.
유가 무를 낳고, 뒤집어 무가 유를 낳았다. 고로 이중긍정의 색이다.
색은 나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시(一時)의 세계이다.
만물이 서로 얽힘(緣起)으로 서로가 구별된 세상이 색이다.

바다가 공이라면 파도는 곧 색과 같다. 색은 공의 바탕 위에 주름잡힌 무늬이다. 이처럼 공과 색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 즉 하나가 아닌데 둘도 아닌 “안팎의 일치”를 맺고 있다. 통풍과 방수의 두 가지 서로 다른 기능이 교차하는 고어텍스(Gore Tex)처럼 공과 색은 저 너머에서 길쌈하고 있다. 깨달음의 상징 卍(만)자가 바로 길쌈작용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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