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진행되는 공산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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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모두가 북한의 대남공작 작전

▲ ⓒ뉴스타운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모두가 북한의 대남공작 작전이었습니다. 민주화 세력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거의 다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국가는 국가의 적인 공산주의자들을 ‘민주화열사’라는 면류관을 씌워주고 이들로 하여금 사회를 통제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5⋅18(518)에 관련된 반역의 부나비들이 ‘민주화열사’의 최고봉에 서 있습니다. 이어서 과거의 간첩사건, 시국사건, 국보법 위반사건들을 일으킨 당시의 반역자들에게 차곡 차곡 ‘민주화열사’의 면류관을 씌워 주고 있습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역사를 뒤집기 위해 3개의 위원회(민보상위, 의문사위, 진실화해위)를 설치하였습니다. ‘민보상위’(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위원회)는 2000년 8월 1일에, ‘의문사위’(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0년 10월 17일에 ‘과거사위’, 즉 ‘진실화해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5년 12월 1일에 설치하였습니다.

이 3개 조직에 빨치산, 간첩 출신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 쿠데타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을 때, 북한은 노골적으로 “간첩을 조사했던 자들에 대해 3족을 멸하라”는 대남지령문을 보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해 3개의 역사뒤집기 위원회는 “간첩을 조사한 조사관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박탈하겠다”며 과거에 간첩사건을 조사한 조사관들을 마구 불러 딱딱거렸습니다. 김영삼 시절(1994)에 4년 동안 옥살이를 한, 남매간첩단 사건의 오빠 김삼석을 의문사위에 영입해 놓고 현역 국방장관, 현역 1군사령관 등을 불러다 딱딱거리며 취조를 했습니다. 참고로 김삼석의 매형은 ‘386간첩단사건’의 우두머리인 김기영입니다. 

2000년 8월 22일 김대중-임동원이 ‘영원히 전향하지 않은 간첩ᐨ빨치산 출신’ 63명을 조건 없이 북으로 보냈습니다. 2006년 1월 9일, 김정일은 이들 비전향장기수 63명에게 30~40년간 고초를 준 남한의 반동분자들과 그 자식들까지 처단하고 아울러 10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고소장을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고소장을 의문사위와 과거사위에 전달할 것을 통일부에 요구했습니다. 김정일의 지령문이 노골적으로 국가기관을 통해 이들 3개 위원회에 전달된 것입니다. 

이들 3개 위원회들은 서로 희희낙락하며 전문성에 따라 과거 사건들을 서로 분배해 맡아가면서 과거사를 모두 뒤집었습니다. 어제의 충신이 역적이 되고, 어제의 간첩과 빨치산이 충신으로 등극하면서 왕년의 빨치산과 간첩들에 1인당 수억~수십억대의 배상금을 안겨주었습니다. 사회 주도세력이 공산주의자들에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에 몇 개의 예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2002. 4. 27. 민보상위 : 동의대, 남민전, 한총련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등극시켰습니다. 386간첩단사건 2명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하고 이들 각각에 3,900만원과 890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했습니다.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인 이학영, 그는 남민전 핵심으로 혁명자금을 마련한다며 재벌집에 칼을 들고 들어가 경비를 찌르고 감옥에 갔으며 중앙정보부 해체를 목표로 하여 구성된 민청학련 사건에도 연루되어 2차례 감옥에 갔습니다. 이런 그가 애국자로 명예회복을 한 후 무려 13억 1,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5적시를 썼고 민청학련 핵심자로 6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김지하, 그는 전향했다고 했지만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결국 15억원을 받아내 부자가 되었습니다(2015.5.26). 자유당 때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간첩죄로 사형 당했지만 그는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조선에 충성한 애국자”로 모셔져 있고, 북한의 수많은 문헌들이 조봉암이 조국에 충성한 영웅이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빨갱이들이 그 가족을 앞세워 재심을 했고, 그 결과 그 가족은 2012.7.26. 29억 7천만원을 받아갔습니다. 국가에 반역한 것이 훈장이 되었고, 그 훈장에는 천문학적인 포상금이 주어진 것입니다.  

2002. 9. 12. 의문사위 : 인혁당 사건은 고문 조작된 사건이라 발표했고, 그 후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 사건을 재심에 붙여 뒤집었습니다. 2007년 1월 27일에 문용선 판사는 인혁당 사건에 무죄를 선사했고, 2009년 민사재판부는 관련자들에 28억 3천만원을 가지급해 주었습니다. 

2004. 7. 1. 의문사위(한상범 위원장) : 비전향장기수 3명(최석기, 박융서, 손윤규)을 민주화 열사로 등극시켰습니다. 이들이 “양심을 지키기 위해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한 민주인사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2004. 7. 9. 의문사위 : 경찰에 쫓기다 추락해 사망한 한총련 간부 김준배를 의문사 당한 희생자로 규정하고 그를 민주화 인사로 등극시켰습니다. 1998년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판명한 한총련을 민주화 단체로 다시 규정하였습니다. 대법원 위에 의문사위가 있는 것입니다. 

2004. 7. 5. 의문사위 : 김현희에 의한 KAL858기 폭발사고(’87.11.29)를 안기부 조작사건으로 덮어씌우려는 벼라 별 시도를 하였고, 김재규를 민주화열사로 지정하려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민 저항에 부딪치고 팩트가 없어 실패했습니다. 

2004. 7. 16. 의문사위 :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 간첩혐의로 징역을 살았던 김삼석 등 간첩출신 3명이 현역 국방장관 및 1군 사령관 등을 포함해 과거 간첩사건을 조사했던 대공수사관들을 줄줄이 소환 조사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수고하던 옛날의 대공수사관들은 80대 나이가 되어 젊은 간첩출신들에 줄줄이 불려가 하루 종일 수모를 받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2004. 10. 1. 의문사위 : 1974년, 비전향 간첩 최석기에 대한 전향공작 과정에서 당시 대공수사관 조 모씨가 최씨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혐의가 있다며, 조씨를 대검찰청에 고발했습니다. 폭행치사는 공소시효가 7년이지만 의문사위는 “간첩을 조사한 공안수사관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한다”며 이 같은 초법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2005. 12. 민보상위 : 이철, 유인태, 이해찬 등 9명의 민청학련 주동자들에 대해 민주열사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재심과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수억~수십억대의 배상을 받았습니다. 

2006. 3. 6. 민보상위 : 남민전 38명을 민주열사로 등극시켰습니다. 이들 역시 재심과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각자 10억 이상을 배상 받았습니다. 

2006. 12. 4. 민보상위 : 골수 간첩 황인욱을 ‘민주화유공자’로 지정했습니다. “황인욱은 불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에 항거함으로써 민주헌정질서 회복에 기여한 민주열사”라는 것입니다. 기타 자민통, 혁노맹, 혁명의 불꽃그룹, 반미청년회, 구국학생연맹, 임시혁명정부쟁취학생투쟁위원회 관련자들을 민주열사로 등극시켰습니다. 

2008. 4. 23. 과거사위 : “사북탄광사건은 계엄사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 침해 사건이다. 국가는 피해자들에 사과하고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주라”고 권고했습니다. 

2008. 12. 과거사위 : “유신 판사 492명의 명단을 발표하겠다” 기승을 부리다 저항에 부딪혀 포기했습니다. 기세들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2009. 7. 7. 과거사위 : 학림사건(이태복 등 26명 무기징역) 관련자들을 민주 인사로 등극시켰습니다. 

2007. 10. 과거사위 : 조봉암, 남민전, 사노맹, 동백림사건, 인혁당사건, 민청학련사건, 김대중납치사건, KAL858사건(1987), 이수근사건(1969)을 재규명하라 권고했습니다. 특히 조봉암에 대한 재심은 2010년 11월 18일, 대법원에서 대법원장 이용훈이 재판장 역할을 했습니다. 법정은 평양 법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승만은 공개적으로 성토되고 조봉암은 극존칭의 표현들로 애국자가 되었습니다. 조봉암의 가묘는 평양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있고, 역대 간첩 이현산, 성시백, 김종태, 최영도, 김달삼 등 거물급 간첩들과 나란히 ‘북한에 충성한 애국자’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이날 대법원장 이용훈은 조봉암을 애국자로 판단했고, 이어서 2012년 2월, 조봉암의 가족들에게는 24억 원이 배상되었습니다. 

2008년 이후 5년간 179건의 배상사건이 처리되었고, 그 중 26건(14.5%)이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사건들이었습니다. 금액으로는 전체가 2,502억 2,493만원, 이 중 1,222억 9,973만4,000원(48.9%)이 박정희 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 배상금은 632억 4,950만 원,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배상금은 497억 2,296만6,000원으로, 두 사건을 합하면 전체 배상금의 45.1%를 차지합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전국민주학생연맹, 제헌의회그룹 등 반국가단체 사건 관련자가 131명, 이적단체 관련 활동을 하고도 민주화 유공자가 된 사람이 또 다른 282명입니다. 특히 최근 중형이 선고된 간첩사건인 왕재산사건과 일심회사건 관련자들 모두가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각각 8,000만원, 1,000만원씩의 보상금을 받아갔습니다. 

몇 개의 예만 들었습니다만, 이처럼 국민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저들은 역사를 뒤집고 이 나라 역적들에 수억~수십억 원씩의 배상을 해주고 있습니다. 2008년 9월 당시 대법원장 이용훈은 위 3개의 역사뒤집기 위원회의 의견들을 100% 받아들여 224개 시국 사건이 불법 구금과 고문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재심의 대상이라고 지정하였습니다. 재심을 맡은 재판부들은 줄줄이 이 모든 재심사건을 무죄로 뒤집어 주었습니다. 재판장들이 국가를 대신하여 이들에게 사과를 하고 1인당 수억에서 수십억씩 배상을 했습니다.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이제까지의 배상금액은 3,500억 정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혁당재건위 사형수’의 경우 피해자 1인당 배상액이 피해자 본인 10억 원, 배우자 6억 원, 자녀 4억 원이 지급됐습니다. ‘진도간첩단 사건 사형집행자’는 피해자에 25억 원, 배우자 7억 5,000만 원, 자녀 3억 원이 지급됐습니다. 고무줄입니다. 이에 반해 국가유공자인 ‘동의대 사건 경찰 희생자’는 피해자 본인이 1억2,700만 원을 받고, 배우자와 자녀는 위로금 차원으로 국가가 300만~ 1,900만 원을 지급하는데 그쳤습니다. 

특히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경우 피해자 1인당 매 구금일수에 대해 21만 원 이상의 배상금을 지급받은 반면, 상이군경의 일인당 보훈 급여액은 1만∼7만 원에 불과합니다. 최소 2.8배에서 최대 20.1배 가량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런 전례에 따라 너도 나도 과거 독재정권으로부터 억울한 재판을 받았다며 재심을 청구합니다. 1,000여 건이 재판에 회부돼 있고, 그 소가들을 합치면 무려 1조 5천억 원이 넘는다 합니다. 

역사뒤집기의 전형적인 모델은 ‘동의대 사건’일 것입니다. “동의대 사건”은 부산의 동의대학 과격분자들이 근무중인 경찰관들을 집단 학살한 테러사건입니다. 1989년 5월 3일, 입시부정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과격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감금된 전경들을 구하려는 경찰들에 화염병을 던져 7명의 경찰이 즉사했습니다. 주동자 31명은 특수공무방해치사죄로 징역 2년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2002년 4월 민보상위는 이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 운동가로 등극시켰습니다. 가장 악랄했던 주동자에게는 당시 화폐 6억 원이 주어졌습니다. 당시의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 적’이었고, 경찰은 그 군사정권의 주구이기에 그들을 죽인 것은 민주화에 부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막무가내 행위들이 버젓이 이 땅에서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황당한 역사 반란들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2009년 2월 24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이런 반국가적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전여옥법’을 제정하겠다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그 수를 알 수 없는 좌경 여성들이 2009년 2월 27일(금) 12:30분경, 국회 본관에 집단으로 침입해 전여옥 의원에 테러를 감행했고, 눈까지 후벼파서 각막 파열로 상당기간 순천향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전여옥을 직접 공격한 사람은 이정이(당시 68), 좌경 조직인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공동대표였습니다. 이정이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통일연대”(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파괴를 기도), “평택범대위 비전향장기수 북송”, 안기부(국정원) 등 대공수사기관 폐지운동은 물론 각종 집회 및 반정부 투쟁에 앞장서 온 인물입니다. 

현역 국회의원이 잘못된 법에 손질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놓고, 백주에 붉은 여성들이 떼를 지어 감히 국회 본청에 들어가 청경들이 보는 앞에서 테러를 가하는 세상 그래서 추진하던 ‘전여옥법’이 끝내 무산되는 이 무법천지의 국가, 어느 국회의원 하나 그 법을 이어가겠다 나서지 않는 영혼 없는 국회, 이런 것들에는 관심도 고민도 없는 대부분의 이 나라 국민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로부터 나서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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