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가 출몰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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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가 출몰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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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되 잊어먹은 것까지 까먹었다면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말년에 뉴턴의 어록 중에서 -

당(唐)나라 때 어느 절에서 있었던 일이다. 밖에 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보라, 저기 깃발이 움직이는구나.”
“아니야, 바람이 움직이는 거야.”
이때 떠돌이 차림의 웬 촌놈이 끼어들었다. 혜능(慧能), 그는 글자 앞에서 까막눈이었으나 마음만은 조명등처럼 밝았다.
“아,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이오.”

다른 사람들은 깃발이 휘날리는 닫쳐진 공간밖에 볼 수 없었지만, 혜능의 심안은 그 너머 차원의 빈 공간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초공간(hyper-space)이다. 그는 대소(大小)를 따지는 실수 위에 위상(位相)을 가리키는 허수까지 구사한 것이다. 혜능에게 이미 패러다임 이동(shift)이 완성되어 있었다. 일찍부터 그는 깨달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선사(禪師)들의 깨달음은 범인들에게 마치 해프닝처럼 보인다. 동문서답하는 것 같고, 기인(奇人)처럼 별난 체 시늉하는 것 같다. 그러나 “크다, 작다”의 판단에 고착된 사람과 여기서 해탈된 사람은 들어오는 느낌부터 달라진다. 그 결과, 고착된 사람이 직선 위에서 자기 앞가림하는 정도로 살아간다면, 해탈된 사람은 평면 위에서 사방을 내다보며 사는 격이 될 것이다.

혜능은 비로소 놀라워 마지않는 그들을 제자로 삼고, 선종 6대 조사로서 돈오(頓悟)의 법을 설파하기 시작하였다. 돈오란 깨달음이 별안간 오는 것으로 틀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다. 677년 그는 조계(曹溪) 지방에서 보림사를 세우고 입적할 때까지 그곳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설법을 베풀었다. 한국 선종과 오늘날의 조계종은 이곳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 눈으로 보니 모든 현상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20대에 벌써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던 오일러(Euler)가 이렇게 갈파했었다. 그는 허수 단위 i를 처음으로 만들어 쓴 수학자이다. 오일러는 보이는 왼 눈으로 실공간을, 보이지 않는 오른 눈으로 허공간을 탐색했을까. 60대에 이르러 왼쪽 눈마저 실명한 그는 오히려 기억력이 밝아져 연구에 더욱 정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출간된 1687년은 인류문화사에 큰 획을 긋는 해로 기념할 만하다. 뉴턴은 라틴어로 이 책을 썼는데, 과학자들에게 “단행본 가운데 사상 최고의 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뉴턴은 이 책에서 여러 이론을 발표하였으나 그중 만유인력법칙이 돋보인다. 이 공식의 핵심은 역제곱 법칙으로, 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역비례하며 약해진다는 것이다.

사과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질량이 집중된 점, 가장 짧은 거리로서의 직선, 거리의 제곱으로 확장되는 평면, 인력이 고루고루 미치는 입체, 뉴턴의 머리 속에는 이와 같이 차원이 0, 1, 2, 3 하나씩 증가하며 절대공간을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곱해서 반대로 약해지는 인력은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허수의 특성을 빼닮지 않았는가, 하.

제곱이란 두 번 거듭된 것으로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역제곱 법칙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나타난다. 너무 기뻐서 죽겠다, 악쓰며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정말로 죽기로 각오하면 살 길이 보인다, 등등. 그뿐 아니라 이중구조는 이중인격, 이중생각, 이중구속, 이중안전, 이중직업, 이중사랑, 등등 사람이 사는 곳에는 전방위적으로 널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중구조는 언어자체가 이분화(二分化)로 짜여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혜능은 이것을 타파한 것이다. 이분된 말로 하는 설법은 가능한 피하고, “미분(未分)된 마음으로 바로 가리키는(直指)”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어차피 이분화 논쟁은 끝없이 돌고 돈다.

시간차원에서 이중부정은 공(空)이다. 잊되 그마저 까맣게 잊으면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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