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사랑법 - 6
불의 사랑법 - 6
  • 이영철 소설가
  • 승인 2006.01.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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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형사와 불독은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발견된 나리라의 사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발가벗겨진 채 버려진 그녀의 사체는 한눈에 보아도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지독한 놈들!”

최 형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랜 강력반 형사 생활로 벼라별 끔찍한 사건 현장을 보아왔지만, 음모까지 새까맣게 끄슬린 나리라의 여자에 붙어서 고물거리는 몇 마리의 불개미를 보자 속이 메스꺼워졌다. 불에 타 없어진 눈썹과 부풀어 오른 눈두덩이,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불에 덴 유두도 밤톨만하게 물집이 잡혀 부풀어 있었다.

“이건 완전히 불고기를 만들었구만.”

불독은 나리라의 샅을 유심히 살피다, 비위가 상하는지 연방 침을 뱉었다. 그러면서도 샅에 붙어서 고물거리는 불개미 몇 마리를 핀셋으로 집어 비닐 봉지에 담았다.

최 형사가 그에게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나리라의 몸에 난 상처도 이 회장이나 민철국 때와는 다르고,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나리라의 거기에 묻혀 개미들을 유인한 것도 꿀이 아닌 것 같고, 장미를 접은 종이와 모양도 지난 번 거와는 다르잖아요.”
“맞아요. 나도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혹시…….”
“혹시 뭡니까?”
“이번 나리라 살해 사건은 다른 놈들의 짓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모방 범죄라고나 할까요.”
“그래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군요.”

불독은 최 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나리라의 사체는 부검을 위해 차에 실렸다. 어느 새 냄새를 맡고 달려온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방송국 기자들 서너 명이 두 사람을 향해 질문을 던졌지만,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꾹 다물고 차에 올랐다. 차는 빠른 속도로 고수부지에서 빠져나갔다.

핸들을 잡은 불독이 말했다.

“범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제 범행 대상을 여자에게까지 뻗쳤으니, 그동안 못된 짓을 한 연놈들은 간이 콩알만해졌을 겁니다. 죽은 사람들에겐 좀 안된 얘기지만, 그들 때문에 지금 전국적으로 성범죄율이 뚝 떨어졌다는 거 아닙니까. 도덕적으로 타락해가는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고나 할까요. 나 같아도 어디 마음놓고 바람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범행 대상이 한결같이 부도덕하고 타락한 성과 연관된 사람들이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솔직한 제 심정은 이런 범행을 저지른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측면도 있다고요. 매스컴 보도를 보더라도 지금 내 심정과 똑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면이 있잖아요.”
“모방 범죄 같은 냄새가 나긴 하지만, 이번에도 매스컴에 비디오 테이프가 전달됐겠지요?”
“그랬겠지요.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지도 모르죠.”
“이번에는 또 어떤 얼빠진 사내들이 나리라와 잠자리를 해서 된서리를 맞을지. 한 마디로 전 국민 앞에서 망신살이 뻗치는 거죠. 보도가 되면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닐 겁니다. 차라리 이민을 가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를걸요.”

두 사람은 나리라의 부검을 지켜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 날 오후.

각 방송과 신문은 나리라의 죽음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 했다. 몇 번 이런 사건을 접하자,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에서는 지난번과는 달리 비디오 테이프를 비밀스러운 부분만 흐릿하게 처리한 후 여과 없이 몇 컷씩 내보냈다. 사람들은 나리라가 벌거벗겨져 쇠고랑에 매달린 채 눈썹과 여자까지 끄슬리고 몸의 살갗이 터져 피가 낭자한 모습을 보고 혀를 차기도 했다.

뉴스가 나간 직후 방송국은, 나리라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의 충격적인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항의와 반대로 좀더 자세히 보여달라는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최 형사와 불독은 비디오 테이프 보면서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리라가 매달려 있는 쇠고랑과 배경이었다. 지난번 이 회장과 민철국이 매달려 있던 쇠고랑이 아니었고, 비디오 테이프에 찍힌 배경도 많이 달랐다. 그리고 방송 전문가에게 의뢰해 본 결과, 비디오 카메라가 잡은 각도도 지난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불독이 말했다.

“종이 장미의 재질과 모양도 다르고, 살해당한 장소도 다르고, 카메라 위치도 다르고…… 일이 점점 복잡해지는데요.”
“글쎄 말입니다. 방송국과 일간지에 보낸 비디오 테이프도 지난번 거와는 상표가 다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테러를
하겠다고 보내온 메모의 컴퓨터 서체도 다르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모방 범행이 틀림없습니다.”
“갈수록 태산이군요. 민소영의 주변 인물들도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하다는 보고가 있으니, 그렇다면 민소영이 달고 다니는 종이 장미와는 관련이 없다는 얘긴데…….”
“결국 다시 원점이 아닙니까? 주변 인물들에게 상당한 혐의를 두었는데 모두 범행이 발생한 시간에 알리바이가 확실하다니, 더 이상 미행을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도 나리라의 몸에 난 상처가 지난번 채찍에 맞은 상처와는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거,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 겁니까?”

답답해진 두 사람은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두 사람 모두 상부로부터 매일 시달림을 받고 있었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희대의 살인 사건에 쏠리면 쏠릴수록, 두 사람이 받는 압력은 그만큼 가중됐다. 나리라의 입을 통해 밝혀진, 섹스 파티를 벌였다는 인물들이, 이 회장이나 민철국이 상대한 그렇고 그런 상대들이 아닌, 거물들이었기에 그만큼 파장도 컸다.

불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벌써 청계천 세운상가에서는 나리라의 테이프가 돌고 있답니다.”
“하여튼 장사꾼들의 빠른 발은 당할 수가 없다니까요. 값이 얼마나 한답니까?”
“우리 요원이 십만 원을 주고 사왔답니다. 없어서 못 판다며, 안 사려면 말라고 배짱을 부리더라지 뭡니까. 이 기회에 이 더러운 직업을 때려치우고 최 형사님과 저도 장사에 뛰어들까요?”

불독은 웃지도 않고 말했다. 최 형사는 불독의 말과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지금 농담을 하는지 진담으로 그러는지 구별이 되지 않아 잠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막가파 사건 때도 국민들의 관심이 이보다는 덜 했어요. 요즘 경찰 꼴이 말이 아니라니까요. 정말이지 나도 옷을 벗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정말 내가 장사에 동업하면 잘 할 자신은 있습니까?”

최 형사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제야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최 형사도 따라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직접 민소영을 만나보는 게 어떨까요?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이제 더 이상 방법도 없고. 혹시 압니까. 민소영을 만나보면 뭔가 꼬투리라도 잡을 수 있을지.”
“그럽시다. 무식하게 막고 품어 볼밖에요.”

최 형사는 동의했다.

“왜 종이 장미를 달고 다니는지, 그 종이 장미를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아니면 누가 만들어 주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본인이 직접 만들었는지 알아도 볼 겸.”
“지금까지의 조사로는 민소영과 주변 인물들이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뒷맛이 개운찮은 점도 있긴해요.”
“그럼 얘기 나온 김에 지금 민소영을 찾아갈까요?”
“그럴까요?”

최 형사는 수첩을 꺼내, 방송국에서 알아낸 민소영의 핸드폰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자 ‘여보세요’하는 소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 형사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의아한 목소리로,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느냐고 물었다. 최 형사는 요즘 세간의 화젯거리인 살인 사건에 관한 일로 몇 가지 물어 볼 것이 있다며 협조를 부탁했다. 몹시 언짢은 듯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두 시간 뒤 강남에 있는 한 카페를 약속 장소로 정했다.

두 사람은 시간에 맞춰 강남으로 갔다.

“민소영 씨를 찾아왔는데요.”

최 형사는 카페 카운터에서 그녀를 찾았다. 그녀가 이곳 단골인듯, 젊은 여주인은 두 사람을 구석에 있는 룸으로 안내했다. 민소영은 미리 와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두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

“됐습니다. 앉으시지요.”

최 형사는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그녀의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아름다웠다. 얼굴도 몸매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텔레비전 화면이나 잡지 광고 등을 통해서만 본 민소영을 바로 코앞에 두고 보니 정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향긋한 향수 냄새도 더없이 좋았다. 정말이지 이런 여자하고 단 한번이라도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아시겠지만 전 몹시 바쁘거든요. 용건만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그녀는 도도한 자세로 두 사람을 빤히 보며 말했다.

“아, 네. 우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밖에 알려지면 민소영 씨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래서 이렇게 조용히 만나자고 한 겁니다. 한 가지만 참고적으로 말하면, 저의 안식구가 민소영 씨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군요.”
“그래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녀는 그제야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약간 고개를 숙여보였다. 두 사람도 커피를 시켰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시는 짧은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녀가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어, 담배 한 대 피워도 실례가 안 되겠지요?”
“편한 대로 하세요.”

불독이 말했다.

그녀는 익숙한 폼으로 뒤퐁 금장 라이터로 불을 붙여 담배 연기를 허공에 길게 내뿜었다.

“그 사건들과 제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거죠?”

그녀가 오른쪽 다리를 왼쪽다리 위에 얹으며 말했다.

최 형사는 아찔했다. 바로 코앞, 짧은 미니 스커트 사이로 한창 물이 오른 빙어처럼 미끈하고 통통한 그녀의 육감적인 허벅지와 꽃무늬 팬티가 아슬아슬하게 보이기 때문이었다. 자세를 조금만 낮추면 그녀의 속살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최 형사는 애써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시켰다.

불독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긴 말은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지금 민소영 씨가 가슴에 달고 있는 검정색 종이 장미는 어디서 난 겁니까?”
“이거요? 저를 만나자고 한 게 이것 때문인가요?”

민소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방송국 편성국장에게서 이미 이들이 찾아왔었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 종이 장미 때문입니다.”
“이 종이 장미하고 일련의 사건들하고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죠?"

민소영은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지금까지 살해된 대한그룹 이만덕 회장, 민소영 씨도 잘 알겠지만 탤런트 민철국씨, 이번에 살해된 패션 디자이너 나리라 씨의 몸에서 지금 민소영 씨가 가슴에 달고 있는 종이 장미와 똑같거나 비슷한 것이 발견됐습니다.”
“네에?”

그녀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리라만 빼고는 그 내용도 방송국 편성국장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흰 민소영 씨 모르게 혹시나 해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혐의가 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을 참고로 말하고 싶군요.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모든 걸 우연이라고 보기엔 뭔가 개운찮은 점이 있어서, 그래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

불독은 말하면서, 예리하게 그녀의 순간적인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몹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불독과 최 형사는 한 가지 속고 있는 게 있었다. 그녀가 지금 고도의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이 나라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탤런트라는 점을 깜박 잊고 있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종이 장미는 어떻게 구한 겁니까?”

최 형사는 틈을 주지 않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건 제가 만든 거예요. 전 꽃 중에서 흑장미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렇다면 혹시 누군가에게 민소영씨가 접은 종이 장미를 준 적은 없습니까?”
“그런 일 없어요.”

최 형사와 불독은 그나마 한 가닥 가졌던 희망의 불씨마저 일시에 사그라지는 기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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