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사랑법 - 5
불의 사랑법 - 5
  • 이영철 소설가
  • 승인 2005.12.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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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형사와 불독은 바빴다.

수사 요원들을 풀어 민소영의 주변 인물들을 샅샅이 조사시키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인물들은 미행을 붙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이태진도 용의선상에 올라 있었다. 어쨌든 그는 민소영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이태진이 만나는 사람들도 뒷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수사 요원들에게, 미행 대상 인물들의 행적을 30분 단위로, 머문 장소와 만나는 사람 등에 대해 체크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과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들의 행적도 꼼꼼히 체크했다. 아직까지는 유일한 생존자인 김상수 PD를 비롯해 한국그룹 이만덕 회장, 탤런트 민철국으로 이어지는 살인 사건은 어쩜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할지 몰랐다.

태진은 미행당하고 있었다. 미행자는 두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미 소영이를 통해 경찰의 미행이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쉽게 미행자를 알아보았다. 경찰들은 번갈아가면서 태진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했다. 태진 역시도 그들이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며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또한 그들을 헷갈리게 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바쁜 체했다. 그리고 그들을 피곤하게 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밤 늦도록 바쁘게 쏘다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날은 일부러 바람처럼 양수리나 장흥, 멀리는 속초 바닷가까지 할 일도 없이 바람을 쐬러 갔다 오곤 했다. 자신을 미행하는 친구들은 땀깨나 흘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건 진희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그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며칠 동안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만날 필요가 있을 때는 공중전화로 상대방의 휴대폰에 5636번 또는 7364번 등 네 자리 숫자를 합해 20이 되는 숫자를 찍기로 약속했다. 그러면 그날 밤 진희가 그들의 미행을 따돌리고 정릉 태진의 집 후문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진희에게서 숫자로 찍힌 호출이 왔다.

태진은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미행하는 경찰에게 자신이 집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거실의 불을 환하게 밝히고 베란다 창가에 오래 서 있었다.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마시며, 밤 10시쯤 되자 그들은 철수했다.

자정 무렵에야 진희가 지하실을 통해 거실로 들어왔다. 며칠 만에 보는 진희였다.

“미행한 놈들은 없지?”
“아직까진 그런 낌새를 못 느끼겠어요. 난 아직 그들 그물에 걸려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조심해야 돼.”
“알았어요.”
“왜 만나자고 한 거야?”
“나리라를 내일 납치하려고요.”
“내일?”
“시간이 없어요. 사흘 후에 미국으로 떠난대요.”
“그래? 하지만 지금은 위험하지 않을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난 아직 미행당하지 않는 게 분명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집에 계세요. 내가 알아서 납치해 올 테니까.”
“어떻게 그런 위험한 일을 혼자서 한다는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 생각이란 게 뭐냐고?”
“나리라를 선생님 집에 초대하려고요.”
“초대? 초대라니? 그게 무슨 말야?”
“제 발로 이 집에 오게 하겠다고요.”
“어떻게?”
“선생님이 전화 한 통만 해주면 돼요.”
“뭐라고?”

태진은 진희의 꿍꿍이 속을 알 수 없었다.

“선생님 집에서 파티가 있는 것처럼 꾸미는 거예요. 그냥 초대하면 선생님과는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서 사양할 수도 있으니까, 나리라가 좋아할 만한 인물들을 미끼로 쓰는 거예요. 젊은 연예인들과 유명 인사들이 이번 모임을 계기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 모임을 가진다고. 그리고 이 모임은 절대 비밀이니까 말이 새나가면 멤버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 내일 몇 시에 데리러 갈 사람을 보내겠다는 것도 알려주고요. 그럼 나리라는 의심 없이 절 따라 나설 거예요. 나리라가 이 모임에 꼭 참석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하는 건, 선생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고요.”

태진은 진희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하지만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경찰의 눈은 어떡하지? 경찰은 내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면, 내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대문을 주시할 텐데.”
“후문을 이용하는 거죠. 집 안에까지 끌어들인 다음엔 제가 알아서 지하실로 끌고 들어가면 되고요.”
그렇다면 문제가 될 게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을 미행하는 경찰은, 자신이 집에 있으니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리라를 지하실에 끌어다 놓고 진희가 일을 진행시키는 동안, 자신은 미행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원 손질이나 하면서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면 확실한 알리바이가 성립될 수 있었다.
“오케이. 작전을 좀 치밀하게 구상해서 내일 아침 일찍 전화를 걸지.”
“아 참,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장미를 접을 때 쓰는 종이
는 잘 숨겨 두세요. 만일에 대비해서.”
“그래야겠지.”

태진은 진희의 말에 공감했다. 만의 하나 경찰이 집을 수색할 경우, 장미를 접을 때 쓴 종이가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하지만 지하실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더 있고 싶지만, 내일을 위해서 이만 갈게요.”
“그래, 조심하고.”
“알았어요.”

태진은 미행자들이 철수한 걸 알지만, 만약을 대비해 지하실을 통해 후문으로 갔다. 태진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진희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거부할 틈도 주지 않고 와락 끌어안고 입술을 덮쳤다. 거부하는 몸짓도 잠시, 진희는 태진의 입술과 혀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오래도록 그렇게 꼭 붙은 채 서 있었다.

잠시 후. 태진은 어둠 속에서 멀어져 가는 진희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까지 입술에 남아있는 그녀의 체취와 온기를 느끼며, 가슴 한 구석에 바람처럼 밀려드는 애잔함을 느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소영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진희를 향한 마음의 또 다른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다음 날.

태진은 미행하는 경찰이 볼 수 있도록 정원의 꽃들과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0분쯤 있으면 진희가 나리라를 차에 태우고 나타날 시간이었다. 몇 시간이나 들고 있던 전지 가위를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서도 밖에서 잘 보이는 이층 베란다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경찰의 눈에 띄도록.

건너편 골목길로 접어드는 계단의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경찰은 무료한지 연방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이따금 팔을 빙빙 돌리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몇 시간이나 정원을 손질하는 자신을 지켜보는 것도 지겨울 것이다. 오전에 본 경찰이 아니었다. 교대한 것 같았다.

태진은 커피를 다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 정장으로 갈아 입고 지하실을 통해 후문으로 갔다. 밖은 어느 새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눈길이 자꾸만 시계로 갔다. 나리가 도착할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때였다. 저만큼 길 모퉁이를 돌아오는 낯익은 차가 보였다. 진희 차였다. 뒷좌석에 앉은 나리라가 보였다. 진희가 태진을 보고 라이트를 깜빡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차가 후문 앞에 멈추었다.
태진은 나리라가 내리기 쉽도록 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오세요, 나리라 씨.”
“안녕하세요? 손님들은 모두 왔나요?”

그녀는 잠시 후 자신에게 닥칠 일을 까마득히 모른 채 얼굴 가득 요염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럼요. 모두 나리라 씨가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진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한눈에 보아도 자신을 튀어 보이게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정성을 들여 치장한 흔적이 역력했다.

“왜 후문으로 들어가죠?”

나리라는 태진을 따라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참, 분명히 아무도 리라 씨가 이곳에 온 걸 모르죠?”
“그럼요.”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오늘 모인 사람들이 워낙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 눈을 피해 후문으로 모시는 걸 양해해 주십시오.”

나리라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희는 나리라 뒤에 바짝 붙어섰다. 눈길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의미있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나리라는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태진의 뒤를 따랐다. 쪽문을 열었다. 이제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납치는 백 퍼센트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들어오시죠.”

나리라는 아무런 의심 없이 쪽문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온 진희가 '‘꽝!’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 거칠게 닫는 문 소리에 놀란 나리라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진희의 재빠른 주먹이 정확하게 그녀의 명치끝에 걸쳤다. 단 한 방의 주먹에 그녀는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하고 맥없이 고꾸라졌다.

“됐어! 빨리 차를 치우고 와!”

진희가 튀어나갔다.

태진은 빠른 손놀림으로 나리라의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손과 발을 묶었다. 그때까지도 나리라는 축 늘어진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혹시나 해서 그녀의 코에 귀를 대보았다. 숨은 쉬고 있었다. 그녀를 어깨에 둘러메고 서둘러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늘어진 몸을 추스려 팔목을 쇠고랑에 매달았다. 안심이었다. 이제는 소리를 질러도 괜찮았으므로, 입에 붙인 테이프는 뗐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니건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태진은 정장의 윗도리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넥타이도 풀어제꼇다.

태진은 의자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앉아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깊이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허공에 길게 내뿜었다. 이제 또 하나의 먹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담배를 비벼 끄고, 늘어져 있는 나리라에게 다가가 상아 손잡이 나이프로 그녀가 걸치고 있는 옷들을 찢어 벗겼다. 그녀의 겉옷이 모두 벗겨지고 속옷을 찢을 때, 나리라는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놀란 토끼눈을 뜨고 잠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게 무, 무슨 짓이에요!”

그녀는 공포에 질려 쇠고랑에 매달려 있는 팔을 빼내려 발버둥을 쳤다.

태진은 천천이 일어나서 나이프의 날카로운 끝을 그녀의 목에 댔다. 그리고 약간 힘을 주었다. 그녀의 하얀 목에 피 한 방울이 맺혔다.

“조용히 해, 이 갈보 같은 년!”

태진은 그녀를 보며 히죽 웃었다.

태진의 손에 들린 나이프와 말투에 놀란 그녀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며 하얗게 질렸다.
태진은 나이프 끝을 그녀의 이미에 대며 이죽거렸다.

“이 나이프는 면도날보다 더 잘 드는 거니까 움직이고 싶거든 움직여 봐. 네 얼굴의 가죽만 벗겨질 테니까.”

이미 피 맛을 본, 상아로 손잡이를 만든 나이프는 양미간을 지나 코 끝, 입술, 목까지 천천히 스쳐내려갔다. 그녀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얼음처럼 굳었다. 나이프로 속옷을 쫙 찢었다. 이제 그녀가 걸친 것은 브래지어와 팬티뿐이었다. 나이프로 브래지어 끈을 끊었다. 브래지어가 힘없이 발 밑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크고 탐스러운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커다란 메론 두 개가 가슴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이, 이태진 씨,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지금 이 순간부터 찍 소리만 내도 네 얼굴의 가죽이 성하지 못할 줄 알아. 내 말 알아들었어? 알았으면 고개를 끄덕여봐!”

태진은 나이프 끝으로 그녀의 유두를 건드리며 말했다. 그녀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핑크빛 유두가 긴장되어 닭살이 돋은 채 오똑 솟아 있었다. 나이프 끝을 팬티 밴드에 대고 힘을 주었다. 팬티의 밴드가 서서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태진은 서두르지 않고 손바닥만한 팬티마저 찢었다. 이제 그녀의 몸을 가린 마지막 허물마저 벗겨지자 무성한 숲과 언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공포와 수치심에 몸을 발정난 뱀처럼 비비꽜다.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숲과 언덕을 가리기 위해 허벅지를 최대한 오므리려고 애를 썼다.

“몸매는 죽여주는군.”

진심이었다.

그녀의 몸매는 잘 빚은 조선 백자처럼 아름다웠다.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이 아주 유연하고 미끈하게 빠져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의 알몸을 보면서도 남자로서의 욕정이 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푸줏간에 걸려있는 고깃덩어리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걸레 같은 년이라는 선입감 때문일까. 태진은 뚫어지게 그녀의 알몸을 쏘아보았다. 그러다 나이프 끝을 그녀의 여자에 천천히 밀어넣었다. 다치지 않을 만큼만. 그녀는 지레 겁먹고 움추렸던 허벅지를 황급히 벌렸다.

“으으!”

그녀는 이를 악물고, 터져나오는 신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이 더러운 것으로 숱한 사내들을 농락했겠지.”

태진은 밀어 넣던 나이프를 멈추고, 한 손으로 그녀의 커다란 젖가슴을 꽉 움켜잡았다.

“으윽!”

그녀는 자신의 여자에 꽂혀있는 나이프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입만 크게 벌린 채 신음을 토해냈다. 태진은 젖가슴을 잡은 손에 점점 힘을 가했다.

“사, 살려주세요, 이태진 씨.”
“개 같은 년!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

태진은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잡았던 손으로 유두를 잡아 힘껏 비틀었다.

“으악!”

급기야 그녀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의 여자에 꽂았던 나이프를 뽑고, 두 손으로 양쪽 유두를 잡고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마치 두 개의 작은 포도알을 으깨어 버리듯이. 그녀는 비명과 함께 몸부림을 쳤다.

“그래, 더 소리를 질러. 어차피 넌 이보다 몇백 배 더한 고통 속에 죽어갈 테니까. 비명을 지를 힘이라도 남아 있을 때 마음껏 지르라고!”

그녀는 고통에 겨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얼굴이 붉게 물들다가 하얗게 질려갔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우아함을 자아내며 고상한 체하던 평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유두 끝에 핏방울이 맺혔다. 태진은 그쯤에서 멈추었다.

태진이 담배를 물고 잠시 쉬는 사이에 진희가 들어섰다. 진희는 벌써 발가벗져진 그녀의 알몸과 태진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진희의 수고를 좀 덜어줬지.”

그는 진희를 보며 싱긋 웃었다.

“먹이 감상은 잘 했어요?”
“응.”
“질투가 날 정도로 잘 빠졌군. 그냥 죽이기엔 정말 아까운 몸매야.”

진희도 나리라의 알몸을 눈부신듯 바라보았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도 인정할 만큼 나리라의 몸매는 육감적이었을까.

“시작할까?”

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진은 의자에 앉았다. 진희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먹이를 다루는 것은 진희가 자신보다 한 수 위이기 때문이었다. 진희는 주머니에서 일회용 가스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리라는 진희를 보고 더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되었다. 불과 얼마 전에 자신을 태우고 여기까지 온 여자라는 사실이 더 두려움을 주는지도 몰랐다. 진희가 천천히 나리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대체 저에게 원하는 게 뭐예요?”

그러나 진희는 말이 없었다.

“제, 제발 살려만 주세요. 당신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주겠어요.”

나리라는 애원을 했다.

진희는 나리라 앞에서 가스 라이터의 불꽃을 '‘쉬익’ 소리가 나도록 세게 했다. 그리고 그 불꽃을 피가 흐르고 있는 나리라의 유두에 천천히 갖다 댔다.

“으아악!”

나리라는 경악하여, 산소 용접기에서 뿜어나오는 듯한 세찬 불길을 피하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피할 방법은 없었다. 태진은 나리라의 비명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진희의 손에 들린 가스 라이터는 집요하게 나리라의 온몸을 샅샅이 핥고 지나다녔다. 아주 천천히, 슬로 모션으로 유두에서 배로, 배꼽으로, 허벅지로, 다시 위로 올라갔다. 하얗게 질렸던 나리라의 얼굴이 금세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갛게 되고, 얼마나 비명을 질러댔는지 목에 정맥과 힘줄이 지렁이처럼 솟아 꿈틀거렸다.

진희가 라이터를 껐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나리라는 뜨거움의 고통과 공포에 질린 채 눈물을 철철 흘리며, 한겨울에 물벼락을 맞은 개처럼 떨었다. 불꽃이 지나간 자리마다 살갗이 벌겋게 자국이 났다. 쇠고랑을 채운 그녀의 연약한 팔목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까져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태진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졌다. 마치 자신이 가스 라이터 불꽃에 고문을 당하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통증이 느껴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진희가 다시 라이터를 켰다.

‘쉬익’ 소리를 내는 불꽃을 본 나리라의 얼굴은, 구겨진 맥주 캔처럼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진희의 손에 들린 라이터는, 이번에는 나리라의 여자로 향했다. 나리라의 숲이 타는 소리가 나며, 털실을 태울 때 나는 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리라의 무성했던 숲은 잠시 후 개털처럼 새까맣게 끄슬렸다. 그녀의 숲이 타면서 낸 역겨운 냄새가 지하실에 가득찼다. 뜨거움과 공포에 오줌을 싸, 끄슬린 음모가 허벅지와 종아리를 타고 내려와 바닥을 적시었다. 태진은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개보다 못한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방법으로 죽여주겠어. 너의 이 더러운 욕정의 덩어리를 영원히 침몰시켜 주겠어. 넌 사람이 아냐. 개야, 개. 그것도 이놈 저놈 마구 붙어 먹는 똥개! 어서 짖어! 똥개 소리를 내며 짖어!”

망설이던 나리라는 진희에게 세차게 뺨을 몇 대 맞고는 마지못해 짖기 시작했다.

“…… 멍, 멍멍…….”
“더 크게!”

꺼졌던 라이터의 불꽃이 다시 나리라의 여자에서 작열했다.

“멍! 멍! 멍멍!”
“계속 짖어! 더 크게!”

진희의 손에 들린 라이터가 나리라의 숲을 완전히 태우고, 얼굴로 향했다. 나리라의 공포에 찬 눈이, 이른 새벽에 피어나는 나팔꽃처럼 활짝 벌어졌다.

“눈을 감는 게 신상에 좋을걸.”

진희는 냉소를 지으며 라이터 불꽃을 나리라의 눈썹에 댕겼다. 순식간에 나리라의 양쪽 눈썹도 쥐불놀이를 한 언덕빼기처럼 새까맣게 타버렸다. 나리라의 몸에선, 사우나탕에 들어간 것처럼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계속해서 오줌을 질금질금 지려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진희는 라이터를 껐다.

“불어. 지금까지 네년의 배 위를 스쳐간 남자들과 어디서 만나 몇 번 개 같은 짓을 했는지 불어. 한 명이라도 빠뜨리면 지금 당한 고통보다 백 배, 아니 천 배 더 고통스럽게 죽어갈 거야. 내 말 알아들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게 아냐, 이 더러운 년아!”

진희의 주먹이 정확하게 나리라의 아랫배에 꽂혔다.

“으헉!”

나리라의 몸이 크게 출렁이는가 싶더니, 잠시 후 연방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오랜 기간 무공으로 단련된 진희가 마음먹고 가격했으니, 그녀가 당하는 고통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한참만에 겨우 기침을 멈춘 그녀는 보통 사람들도 알 만한 남자들 이름과 만난 장소, 횟수를 줄줄이 쏟아냈다.

태진은 기가 막혔다.

나리라의 입에서 나온 남자들의 수는, 열 손가락을 세 번이나 접고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대부분이 사회에서 얼굴깨나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더 있을 텐데?”
“…….”

진희는, 한동안 남자들의 이름과 장소를 말하다 멈춘 나리라를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다그쳤다.

“넌 지금 내가 뻔히 알고 있는 인물을 말하지 않았어. 내 분명히 말했지? 단 한 명만 누락돼도 그만한 고통을 당할 거라고.”

진희의 주먹이 다시 나리라의 아랫배에 비수처럼 꽂혔다.

“헉!”

나리라는 사지를 바르르 떨며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눈이 흰자위를 한껏 드러낸 채 뒤집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모습이었다. 태진은 그런 나리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더러운 오물을 닦아낸 걸레 뭉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진희의 판단은 정확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나리라의 입에서 거물급 인물들의 이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태진은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썩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는 썩을대로 썩어 있었다. 마치 시체 위에 뿌려진 석회처럼 겉만 깨끗한 듯이 보일 뿐, 썩지 않은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나리라는 어쩜 그렇게 철저하게 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모두 오염시킨 것일까. 그녀는 이제 인간으로서 마지막 남은 수치심마저 포기한 듯 했다. 더 다그쳐 본들 그 이상의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제발 더이상의 인물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우릴 원망하지 마라. 인과응보니까.”

진희는 진하게 녹인 설탕물을 그녀의 여자와 유두에 묻혔다. 그리고 준비한 불개미 떼를 풀어놓았다. 오랫동안 굶주린 개미들은 무서운 기세로 나리라의 여자와 유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금세 그녀의 여자 깊숙이 파고드는 개미도 있었다. 두 사람은 처절한 비명을 뒤로 하고 거실로 올라갔다.

거실의 커튼을 치고, 태진은 커피를 놓고 진희와 마주 앉았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태진은 태진대로, 진희는 진희대로 생각에 잠겼다.

태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현실이 아닌 꿈처럼 느껴졌다.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한 여자에게 그 많은 남자들이 그렇게도 철저하게 유린 당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부도덕한 일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인물들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 정말 의외였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남자란 모두 늑대일까. 인물이 반반한 여자가 꼬리를 치면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허약한 존재들이란 말인가.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진희였다.

“점점 세상이 역겨워져요.”
“…….”

태진은 할 말이 없었다. 동감이었다. 더러운 세상.

“나리라를 보면, 우리가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얼마나 버틸까요?”
“글쎄.”

태진은 솔직히, 나리라가 개미들에게 뜯기면서 얼마나 버틸 것인가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진희의 말처럼 산다는 것에 대한 허탈감에 가슴이 무너질 뿐이었다. 이제 사람의 죽음 앞에서조차 마음이 무디어진 것일까.

“나리라가 죽은 채 발견되면 또 한바탕 시끄럽겠지요?”
“그렇겠지.”

태진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무거운 거실의 공기가 두 사람의 어깨를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렀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 진희가 보여준 잔인한 행동들도 자꾸만 뇌리에 걸렸다. 어쩌면 태진 자신은 진희의 무자비하고 광적인 행동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태진은 연거푸 두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

허공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 속에, 성 불구로 만든 김상수의 얼굴이, 한국그룹 이만덕 회장과 탤런트 민철국의 얼굴이 차례로 오버랩됐다. 특히, 개미들에 뜯겨 고통 속에서 눈을 허옇게 뜬 채 죽어 간 이 회장과 민철국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태진은 회의가 일었다.

나리라를 포함한 그들이 비록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무슨 권리로 그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냉정히 보면 그들도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나아가서는 자기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는 전문가였다. 이 회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는 엄연히 한 여자의 남편이요, 자식들의 아버지이며, 어쨌든 수많은 봉급쟁이들을 먹여살리는 총수이자, 이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불경스러운 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 역시 흠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태진은 급체를 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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