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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교회로부터 파문되기까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태복음 6장 33절 -

세계에서 제일 추운 곳, 베르호얀스크, 지리 수업시간에 이렇게 무작정 외웠던 옛날이 있었다. 이곳은 시베리아의 어딘가 있는 한 마을일 것이고, 그때까지 측정된 온도로서 세계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아마 영하 70도쯤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그 기록이 다른 곳에서 깨뜨렸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영하 30도, 이것도 사실 대단했다. 강원도 대성산 벙커에서 보초 섰을 때 새벽에 이 온도를 경험했었다. 오줌 누니까 그 자리에서 고드름이 쌓일 정도였다. 5센치 정도 높이로 얼어붙더라고.

한 국가의 파워는 군사력과 경제력 외에 문화가 뒤를 받쳐줘야 강력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지난 20세기 러시아 주축의 옛 소련이 최강 미국과 함께 쌍벽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저력은 시베리아의 추위가 한 몫을 담당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푸슈킨,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등의 대문호들은 수용소의 극한 체험을 통하여 문예창작의 밑그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고희(古稀) 때 발표한 “부활(1899년)”에서 창녀 카츄샤를 통하여 시베리아 유형의 참혹상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은 당시 지배층의 부패와 거짓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했고, 권력의 시녀로 타락한 교회의 위선을 거침없이 꼬집었다. 원로작가 톨스토이에 대하여 러시아 당국의 처벌은 정교회(Orthodoxy church 正敎會)에서 파문(破門 1901년)을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당한 이런 부조리에 그가 용기 있게 대들었음은 물론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당시 국교였다. 따라서 교회는 권력기관이며, 교회의 수장은 바로 관할구역의 집행관을 겸하고 있었다. 톨스토이가 당한 파문은 사회적 격리와 냉대로 나타났고, 현실은 처참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그의 고통은 통속적 취향을 가진 아내의 몰이해였다. 1910년 82세의 나이로 가출한 그는 결국 객사했다. 그 후 1917년 볼셰비키의 회오리바람은 마침내 부패한 쌍두체제 귀족과 교회의 몰락을 부르고 말았다.

러시아 정교회의 시작은 러시아 제국의 기원과 함께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9세기 말경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분할했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세 부류의 바이킹들이 각기 배를 타고 남하하여 약탈을 일삼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그들 중 스웨덴 계열의 바이킹 류리크에 의하여 건국되었다.

류리크 일족은 고급모피를 대량생산하고 실크로드의 황금시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점차 그 세력을 넓히다가 흑해 가까이 키예프에서 거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0세기 중엽에 이르러 우랄산맥 서쪽 지역에 분산되어 있던 슬라브 족들을 끌어 모아 러시아제국의 원시적 틀을 갖추었다. 이때의 당면 과제는 야만성을 극복하고 제국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세 가지 갈래 길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첫째, 흑해 건너 비잔틴 정통교회(Orthodoxy)였다. 둘째, 서쪽의 로마 보편교회(Catholic)였다. 셋째, 동쪽의 이슬람이었다. 988년 당시 키예프 통치자 블라디미르가 콘스탄티노플의 소피아 성당을 방문했을 때 그만 넋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바로 비잔틴제국 황제의 여동생과 정략결혼하면서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드렸다.

12세기 무렵 모스크바는 하나의 요새로서 크렘린을 구축하였다. 13세기 몽골의 강점 이후 모스크바는 그들의 위탁통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15세기가 경과하면서 공수세력이 역전된다. 외세를 몰아내고 뒤집어 타타르를 정벌함으로써 러시아의 영토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 크게 확장되었다.

크렘린 성안에는 그때의 승승장구를 기념한 3대 성당(cathedral)을 비롯하여 예배당과 수도원, 탑으로 꽉 차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터키에 의해 멸망하자 모스크바는 “세 번째 로마”로 격상되고, 러시아 정교회는 동방정교회를 대표하게 되었다. 크렘린은 전체가 하나의 성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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