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읍내 등의 형국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 행주형(行舟形)이다. 배형태의 지세가 길지라는 논리는 현대식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옛날 배는 우마차보다 빠르게 많은 재물과 사람을 운반했던 문명의 이기라고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그래서 배에는 사람(군사)들은 물론 재화가 모인다고 하는 뜻에서 배모양의 땅에 묘를 쓰거나 집을 지으면 동네는 물론 집안이 번창한다고 믿었다. 배는 물과 연관된 탓인지 행주형국으로 유명한 곳은 모두 강을 낀 곳이 많다.
연화부수형과 겹친 하회마을도 행주형이지만 제일 잘 알려진 곳은 대동강 변에 자리한 평양이다. 그리고 청주와 공주는 물론 전북 무주도 행주형으로 알려져 있다.
배의 특성이 그러하듯 행주형의 지세는 닻과 돛으로 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주형국에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을 뚫는 이치와 같아서 배가 침몰한다고 생각했으며, 너무 무거운 짐을 실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북 고창군 흥덕읍 내에는 뒷산이 행주형인 탓에 집을 잘 짓고도 고래등 같은 기와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짚으로 덮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는 떠다니는 특성 때문에 배를 잡아 두지 않으면 그 발복도 달아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평양은 배를 잡아 두기 위해 연광정 앞 깊은 물에 닻을 내려 놓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런데 1923년 물이 줄어든 강에서 뱃놀이를 하던 사람들이 물속에서 큰 쇳덩이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동원되어 그 쇳덩이를 건져 냈으나 그 연유와 용도는 알 수가 없었다. 더러는 개화초기 대동강에 왔다가 소각당한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 호의 파편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 쇳덩이가 강가에 버려진 지 얼마 지나서였다. 그해 가뭄은 장마로 변하여 평양이 생긴 이래 가장 큰 홍수가 났다. 대동강이 범람, 평양이 거의 침수되는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때서야 사람들이 연광정 앞에서 꺼낸 그 쇳덩이가 풍수지리설의 비방으로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행주형국의 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함부로 꺼냈기 때문에 홍수가 난 것이라고 생각, 빗속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그 쇳덩이를 연광정 앞에 넣어 지금까지 내려온다는 것이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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