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설의 형국론은 마을 이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 선대들이 얼마나 풍수지리설을 신봉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우선 임진왜란 당시 배수진 전술로 승리한 신입 장군의 얘기로 유명한 충북 중원군 가금면 창동리 갈마(渴馬)마을에 얽힌 얘기는 주인을 위한 말의 충정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갈마마을은 가금면에서 충주시 탄금대(대문산)을 향해 2킬로미터쯤 가면 나오는 창곡마을에서 다시 남쪽으로 오른쪽의 남한강을 안고 돌다 속칭 쇠꼬치 광산을 지나 합수나루터가 있는 달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임진왜란때 당시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신입 장군이 내습하는 적과 싸울 때 그의 애마(愛馬)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싸움이 끝난 뒤 합수나루터를 건너 말 한 마리가 이 마을로 들어왔다. 말은 마을 어귀에 있는 옹달샘에서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이 말을 잡으려고 뒤를 쫒아갔다. 말은 양지바르고 경치 좋은 자리에 네 다리를 뻗고 누워 있었는데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사람들이 말을 묻어 주려고 삽질을 했지만 밑에 바위가 있어 한 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밑 지질이 부드러운 곳에 무덤을 파 놓고 말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죽은 말이 바위처럼 꿈적도 안했다. 할 수 없이 죽은 자리에 그대로 두었는데 사흘째 되던 날 가 보니 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주민들은 그 말이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입 장군의 애마였음을 알았다. 말이 신입 장군의 시신을 찿아서 그 자리에 묻어 달라는 의미로 해석, 시신을 찿았지만 끝내 찿지 못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목마른 말이 들어와 물을 마신 곳’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갈마’라 부르고 말이 죽은 자리를 진혈로 여겨 찿고 있으나 아직도 못 찿았다고 한다.
이런 혈장을 갈마음수지혈(渴馬飮水之穴)이라고 부르며 말이 아닌 사슴이 물을 마신 곳이면 갈록음수형이 된다. 갈마음수형은 전북 김제와 충남 은진에도 있다고 전해진다. 이런 형국에는 꼭 혈장 앞쪽에 연못이나 옹달샘이 있어야 한다. 동물들은 성질이 급해 물을 급하게 먹듯 이런 곳에 자리하면 복(福)도 급발한다고 믿었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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